2021년 2월 16일 화요일

[범용기 제2권] (126) WCC 회의에 가다 - 일본 구경

일본 구경

 

나온 김에 일본도 구경하고 싶었다.

동경 한인교회 이인하[1] 목사에게 안내를 청했다. 그는 이도오(伊東半島) 반도의 아다미 온천지대에서 며칠 휴양하도록 순서를 짰다. 온천 뒷산을 저켠에서부터 넘어 계곡의 온천여관에서 자고 쉬고 했다. 산 골짜기지만 간 데마다 온천이다. 여관마다 온천 풀과 독탕이 풍요하다. 식사 땐 일본 의상의 젊은 하녀가 옆에 꿇어 앉아 밥을 떠 준다.

무슨 중세기 영주 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격에 맞지 않는다. “우리끼리 떠 먹을테니 나갔다가 부르거든 오라고 했다.

오소레이리마스[2](죄송합니다)하고 두손 집고 이마가 다다미에 닿도록 절하고서 종종걸음으로 나간다. 잘 때에는 두툼한 이부자리를 곱게 펴 놓고 오야스미나사이마세[3] 하며 또 절하고 나간다. “안녕히 주무십시오하는 인사다.

 

여하튼[4], 일본 하녀의 써비스는 그만이랄 수 있겠다. 거리에는 진짜 미국식 관광 버스와 관광 기차도 다닌다. 관광 호텔도 하늘 높이 치솟았다.

여로에 잘 쉬었다. 이인하 목사댁에서 벽에 거는 작은 벽걸이 판대기에 미숙한 휘호를 숱해 썼다. 젊은 교회 청년들이 제각기 써 달라기에 마다할 수 없어서였다.

 

그리고서는 교오도’(京都)의 옛 도읍 거리와 히에이잔(比叡山), 그리고 그 밑에 갇힌 비와꼬(瑟琶湖)[5]를 보았다. 그것은 오오미 형제단’(近江兄弟團)의 발상지라는 인연 때문이다. 그리고서는 아무데도 들리지 않고 도꾜에 돌아와 김포비행장에로 날았다.

 

일본은 정리된 나라라는 인상이 남는다. 제 살림은 제 손으로 깔끔하게 꾸려가는 족속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의 점진적인 교화(敎化) 정치 프로그램 중에서 치국(治國)까지는 해낸 셈이다. 그러나 평천하의 자격은 아직 미달인 것 같다. 너무 자기중심이어서 평천하의 큰 덕()이 길러지기 어려운 탓이 아닐까? 무력과 경제의 억지 통치로서는 평천하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차대전 후에 이만큼한 진리는 경험으로 알았어야 할 텐데 아직도 깨닫는 것 같지 않다.


[각주]

  1. 이인하(李仁夏, 1925~2008) - 경북 구미 출생. 1941년 혼자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하였다. 캐나다 유학을 다녀온 후 1959년 가나가와현(神奈川縣) 가와사키시(川崎市)의 한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재일대한기독교회총회,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일본기독교협의회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0년 재일한국인 2세가 일본 국적을 갖지 않아싸는 이유로 취업을 취소당한 히타치(日立) 취업 차별 사건을 시작으로 재일 한인의 취업 차별 반대 운동을 벌였고, 1980년대에는 일본 내 외국인 지문 날인 철폐 운동에 앞장섰으며, 1990년대에는 재일 한인과 북한인에 대한 전후 보상 운동을 이끄는 등 평생 인권 운동에 앞장섰다.
  2. おそれいる [·] - 황송해하다, 송구스러워하다, 죄송합니다
  3. おやすみ なさいませ。(御休 なさいませ오야스미 나사이마세) - 안녕히 주무세요. (“오야스미 나사이의 높임말.)
  4. 여하튼 앞 내용을 막론하고 뒤 내용을 말할 때 쓰여 앞뒤 문장을 이어주는 말. 어떤 사실의 있고 없음이나 그러함과 그렇지 않음에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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