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6일 화요일

[범용기 제2권] (137) 잠시 “런던” 가 바람쐬고 다시 투위에 - 삼선개헌안 날치기 통과와 국민투표

삼선개헌안 날치기 통과와 국민투표

 

3선개헌안이 국회에 제출되더라도 통과될 가망은 없었다. 박정희의 바지저고리라는 이효상[1] 국회의장이 또 무슨 날치기 지령에 놀아날지 몰라서 국회의원들은 밤낮 의사당에 농성하는 것이었다.

 

토요일 밤 열두시 -

이제부터는 일요일인데 일요일은 의사 일정도 없으니 다들 돌아가 쉬시지요하고 이효상 의장은 말했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의장은-

그럼 나는 집에 가겠소하며 뒷문으로 나간다. 몇 사람의 공화당 의원이 따라 나갔다.

자정이 지났으니 통금 시간이라 길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의사당 뒷골목은 어두컴컴했다. 길 건너에 3별관이 있다.

물론 앞문이 닫혀 있다. 이 의장과 몇 사람 위원은 뒤로 돌아 판자로 된 뒷문을 뜯고 들어가 제3별관 어두컴컴한 뒷방에 촛불을 켜고서 삼선개헌안 통과라고 속삭이고 방망이를 두들겼다. 그리고 각 신문사에 통고한 다음에 생쥐처럼 도망쳤다. 박정희는 새벽 세시에 싸인하고 기자들에게 발표했다. 신문은 대문짝 같은 호외를 돌렸다. ‘날치기라는 내용을 폭로한 것이다.

이효상은 물론 박정희의 지령대로 한 것뿐이다.

국회의원들은 닭 쫓던 개가 울타리 쳐다보는 식이 되었고 시민들은 울분이 곤두 솟아 불신자들까지도 교회당에 마구 모여 들었다.

덤덤한 설교하는 목사는 없다고 수군거리더라는 것이다. 특히 경동교회는 초만원이었는데 강원용 목사의 설교는 울분의 분화구였다 할까. 모두들 통쾌하다고 했단다. 나는 주일날 아무데도 나가지 않았다.

 

나는 곧 삼선개헌반대투쟁위원회 실행부를 모이고 대책을 강구했다. 이제 국민투표 절차가 남았는데 끝까지 투쟁해 보자는 것이었다.[2]

투표 자체를 보이콧하느냐 투표를 하면서 부투표를 던지느냐 하는 문제로 격론이 벌어졌다. 김상돈은 전적으로 보이콧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투표 거부란 시골에서는 불가능한 얘기였다. 동반장 책임으로 트럭을 동원하여 전 주민 유권자를 투표장까지 실어가는 판국에 거부가 성립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투표를 하든, 안하든,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니 부표던질 기회라도 국민에게 허용하는 것이 옳다는 것으로 낙착됐다.

이 판국에 부정선거아닌 공정선거를 기대할 수는 물론 없는 것이었다.


[각주]

  1. 이효상(李孝祥, 1906~1989) - 호는 한솔. 대구 출생.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일본 동경제국대학 독문과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교직생활을 하였다. 해방 후 경상북도 학무국장을 지냈으며, 1954년 벨기에의 루뱅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수학하고 귀국한 뒤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초대 학장이 되었다. 419 혁명 이후 무소속으로 당선, 516 이후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여 정치활동을 계속하였다. 삼선개헌안 통과 시 국회의장이었다(1969914).
  2. 삼선개헌안이 통과된 직후 1969916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김재준 목사 기사
    三選改憲(삼선개헌)반대 汎國民鬪委(범국민투위) 金在俊(김재준) 위원장은 十六日(십육일) “改憲案(개헌안)國會變則(국회변칙) 처리사건은 國會議決(국회의결) 사항으로 간주할 수 없고 전적으로 無效(무효)”라고 주장하고 汎國民鬪委(범국민투위)는 앞으로 國民主權(국민주권)守護(수호)伸張(신장)을 위해 正權(정권) 타도운동에 전력을 집중하겠다고 역설했다.
    ()위원장은 이날 記者會見(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히고 앞으로 國民投票(국민투표)政府(정부)信任(신임)을 묻겠다는 ()정권의 방침에 맞서 ()정권 不信任(불신임) 打倒(타도) 운동으로 삼아, 싸울것이며 公定(공정)한 분위기만 보장된다면 현政府(정부)를 불신할 것으로 믿는다고 주장, “汎國民鬪委(범국민투위)는 필요에 따라 機構(기구)를 확장 개편하여 투쟁대열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재건되는 新民黨(시민당)鬪委(투위)가 참여할 생각은 없으나 앞으로 新民黨(신민당)共同目標(공동목표)아래 ()이 재건 되는대로 협조 제휴하여 전국적인 유세에 나설 계획이며 폭력 이외의 방
    법으로 一體兩面(일체양면)의 투쟁을 강화할 것이라 다짐하고 新民會(신민회) 의원들은 改憲案(개헌안)院內(원내)저지투쟁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면서 野黨議員(야당의원)들이 議員職(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은 소극적인 극한투쟁이므로 끝까지 議員職(의원직)은 지키면서 싸우는 게 보다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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