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3일 수요일

[범용기 제3권] (128) 北美留記 第三年 1976 - TORONTO에

TORONTO

 

425() - 오늘 토론토로 떠난다.

차상달 선생 댁에서 차 선생 사회로 퀘이커식 묵상과 기도의 모임이 있었다.

조용히 부른 한 장의 찬송, 그리고 나와 함께 한 한주일의 사귐과 사명에 대한 총평과 치사의 말씀이 있었다.

다음으로 약 10분간의 내 인사와 부탁말씀, 노의선[1] 목사의 감화(感話), 김상돈과 김성락[2]의 통곡섞인 기도……

Farewell Party로 차상달이 마련한 Coffee와 도너츠를 나누고 홍윤호 여사 드라이브로 공항에 갔다.

노의선, 김상돈, 최옥명 등이 비행장까지 나와 작별했다.

노의선 목사는 범상(凡常)을 탈출한 기인(奇人)이랄까? 그 생각이 비약(飛躍)하며 새롭다.

오전 9시반에 떠나 네 시간 날아 오후 5:38P.M.에 토론토에 내렸다.

상하(常夏)에서 설원(雪原)에로, 그러나 김운하 사장의 캘리포니아 과일상자가 남국의 향기를 품고 따라왔다.


[각주]

  1. 노의선(盧義善) 목사는 평안북도 철산 출생으로 경기고등학교, 연희전문, 평양장로교 신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79년 북한을 방무하였다.
  2. 김성락(金聖樂, 1904~1989) - 장로교 목사. 교육가. 신학자. 평남 평양에서 김선두 목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1924년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수료(21)했다. 그동안 평양 숭의여자중학교 교원에 재직한 바 있는 그는 1927년 미국에 유학하여 미주리주 파크빌에 있는 파크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28년 뉴저지주의 프린스턴신학원을 수료했다. 이어 예일대학에서 수학하고 1930년에 텍사스의 달라스복음신학교에서 신학박사(Th.D.) 학위 그리고 1931년 켄터키주 루이스빌신학교에서 철학박사(Ph.D.)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귀국 후 평양신학교 교수, 평양 신암(新岩)교회 목사 그리고 숭실대학 교목과 교수로 봉직했다. 1937년에 다시 도미한 그는 로스앤젤레스교회(예장)에 부임하여 20여년간 담임하였다. 그동안 1944년 사우스 캐롤라이나대학교 강사와 1957년 미국주재 한국인교회연합회장직을 역임했으며 1958년 귀국하여 숭실대학장으로 봉직했다. 1981년과 1982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에게 북한에 교회를 세울 것을 권고하였다. 1980년대 김일성은 그의 아버지 김형직이 김성락 목사와 평양 숭실학교 동문이라는 점에서 그를 자주 초청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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