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가지 생각의 오솔길
1월 4일(목) - 하늘과 땅이 눈으로 찼다.
N.Y.의 이승만 박사가 전화했다.
내용은 나의 귀국설에 대한 만류다. 국내, 서독, 미국 등의 동지들이 모두 반대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의 건설작업을 추진시키는 데는 국외가 국내 못지않게 중요한 Locus[1]라고 한다.
요컨대 내가 국외를 떠나서는 안된다는 충고다.
희망의 소리 방송 녹음했다.
우리가 아무리 “디아스포라” 즉 흩어진 백성이라 해도 6천년래 대하(大河)처럼 줄기차게 우리 혈맥을 흐르고 있는 한국(조선) 민족의 혈연을 벗어날 수는 없다.
부디 up-rooted Mentality에 들뜨지 말자고 권했다.
눈과 눈보라로 교통이 엉망이다.
1월 5일(금) - 새해잡아 벌써 닷새가 됐는데 나는 아직도 따수한[2] 방에 두더지처럼 누워있다.
바깥은 몹시 춥다는데 나는 온실 안 화초랄까?
추운 줄도 모르고 먹고 눕고 자고 그리고 심심하면 읽고 쓰고 뭔가를 생각하곤 한다.
지난 12월 27일에 김대중 씨가 감옥에서 나왔다는 기사가 서울의 신문들 제1면을 메꿨다.
“하늘이 그리워…”라는 김대중 씨 옥중수기도 연재된다.
박정희는 옆에서 빙그레 웃고 있을 것이다.
“김대중! 당신 목숨은 내 손바닥 안에 있소. 당신이 살고 죽고 하는 ‘운명’이 내 손에 쥐어있단 말이오!”…
예수의 광야시험에서와 비슷한 악마의 너털 웃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1월 12일(금) - 독일의 Bonhoeffer가 미국에서의 교수직을 사면하고 귀국할 때에 R. Niebuhr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지금 귀국해서 고난을 분담하지 않는다면 전후 독일을 재건할 때에 아무 발언권도 없게 된다.”
그 “발언권”의 실질적인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민주체제 확립인가? 정권잡는 것인가? 게르만 민족의 정화(淨化)된 “혼”인가? 그렇잖으면 전세계 역사가 하늘의 영광으로 빛나게 하는 신학자다운 “비전”의 실현인가?
지금 한국의 수난동지들은 이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에서 싸우고 있다.
그들은 언제 싹틀지, 자랄지, 안자랄지도 모르면서 씨만 뿌리는 농부다.
자기들이 목숨을 뿌린 씨가 맺은 열매를 자기 손으로 거둘지 못 거둘지 알지도 못한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딴 세대가 거두어도 좋다. 우리는 다만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함으로서 족하다.
다음 일은 하느님이 맡아 하신다. 우리는 믿음으로 노래하며 간다….
“발언권”은 “지금”, “여기서”만 우리의 것이오 “전후 독일”이나 “자유한국”에서는 “그 때”, “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발언권”일 것이다.
1월 14일(일) - “본국에서 오셔야 한다고 간청하는 때 가셔야 한다. 가서 가만이 앉아만 계셔도 힘이 되겠다는데 안가시면 삶의 마감기록이 애매해지고 ‘광명’이 ‘무명’(無名)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진언(進言)이다.
옳은 말이다.
지금 이 목사는 보스톤에 갔다. 돌아오면 나의 귀국 수속을 진행시켜 보기로 맘먹었다.
옆구리가 아직도 좀 아프지만, 미국에서의 여러 가지 임무를 정리하고 귀국을 서두를 심산이다.
이 목사가 Boston, N.Y.등지를 다녀왔다.
몹시 피곤해 한다.
1월 16일(화) - 라오스는 통일전선군이 점령했단다. 소련산하에 들어간 셈이다.
“중공”은 “라오스” 때문에 소련과 전쟁할 생각이 없고 또 그럴 실력도 없다.
이 목사가 N.Y.에 갔다 왔지만, 아직 정확한 “정세분석”도, “행동프로”도 되있지 않아서 20일쯤에 다시 모이기로 하고 돌아왔다.
그때에는 나도 동석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1월 19일(금) - 토론토 민건 총회가 이 목사 집에서 열려 새로[3] 세시까지 사업계획을 토의했다.
[각주]
- Locus – 장소, 위치, 궤적
- 따숩다 – 쾌적한 느낌이 들 만큼 온도가 알맞게 높다
- 새로 – 12시를 넘긴 시각 앞에 쓰여, 시각이 다시 시작됨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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