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7일 일요일

[범용기 제3권] (232) 北美留記 第六年 1979 - 이태영 박사 만나고

이태영 박사 만나고

 

725() - N.Y.의 김상호 박사가 전화했다. 서울에서 이태영[1] 박사가 왔다는 것이다.

밤에 N.Y.에 들린 이태영 박사가 내게 전화했다. 나의 해외 활동을 과대하게 격찬한다.


[각주]

  1. 이태영(李兌榮, 1914~1998) - 대한민국 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 호는 백인당(百人堂). 한국 최초의 여성 변화이며,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세우고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가정폭력 상담 해결, 유교적 인습에 저항하였다. 1932년 이화여전 가사과에 입학하여 4년 후 수석으로 나왔다. 194633세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1949년에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52년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으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로 판사에 임용되지 못하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당시 증인으로 김대중을 변호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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