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일 월요일

[범용기 제3권] (59) 北美留記 第一年 1974 - 상항에로

상항에로

 

이번 기회에 상항에도 와야 한다고 신유길 군이 일부러 여비를 보내왔다.

1974921에 상항[1] 이정근 목사 사택에서 유했고 그날 밤 거기에 좌담회가 있었지만 인원도 얼마 안됐고 분위기도 맹숭맹숭했다. 이튿날은 주일이기에 이정근 목사가 목회하는 상항한인연합장로교회에서 설교했다.

1974924에는 장희진[2] 목사 맏따님 만찬 초대를 받았고 그날 밤에 송성근 집에서 송군 또래 젊은이들의 좌담회가 있었으나 대체로 산만한 분위기였고 나 자신도 김이 빠졌다.

1974925에는 버클리의 최봉윤[3]이 이정근 목사로부터 나를 맡아 갔다. 우선 그는 차로 Golden Gate Bridge를 건너 상항 전반을 관광시켜 준다. 저녁 때에는 태평양 신학교 객실에 유숙하도록 하고 신유길 군이 나를 맡아 갔다. 객실은 조용하고 좋았다. 신유길 군은 존. C. 베넷 교수의 선택받은 제자여서 신 군 숙사에서 베넷 교수와 점심식사를 나눴다. 베넷의 저서 몇 권을 내가 한국 말로 번역해서 CLS에서 출판했던 관계로서 통하는 데가 있었다. 그의 주저랄 수 있는 “Christianity and the State”도 내가 우리말로 번역 출판했다. (초판은 문교부 출판)

최봉윤은 태평양 사장 뚝 위에서 시원한 바닷 바람을 쏘여 주기로 했다. “정치낭인이지만, 어느 백인 할머니의 무조건 후원으로 서반아식 이층양옥에서 걱정없이 살고 있었다.

이번 나의 S.F. 순강에 든 일체의 비용도 최봉윤 박사가 전담했다고 들었다. 학생인 신유길에게 재정부담까지 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각주]

  1. 상항(桑港) -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앙부에 있는 항구 도시. 미국 태평양 해안의 최대 무역항이며 대륙 횡단 철도의 기점이다. 19세기 금광을 발견하면서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식품 가공, 전기 기기, 화학, 기계 등의 공업이 성하다.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의 음역어이다.
  2. 장희진 목사는 조선신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1949년 한일교회, 1963년 한남교회(2대 목사) 등을 시무하였으며 1975년 은퇴하였다. 이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였으며(상항장로교회), 1983년 북한을 방문 후 미주에 돌아와 통일 문제 등을 강연하기도 했다.
  3. 최봉윤(1914~2005) - 평안북도 의주 출생으로 일본 청산학원을 졸업한 뒤 도미하여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 조직됐던 맹호단에서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1941년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했다. 해방 후 일시 귀국하여 미군정 공보부 차장으로 일했으며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창설하고 초대 과장을 역임하였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월드 유니버시티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버클리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던 중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였다. 1995년 한국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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