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일 화요일

[범용기 제3권] (68) 北美留記 第一年 1974 - OTTAWA에

OTTAWA

 

111() - 이우정 선생과 함께 Ottawa에 간다. 나는 여권 기한 연장을 위해서, 이 선생은 귀국할 때 일본에 들러 마쳐야 할 잔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들리려면 우선 한국대사관에서 발급한 여권에 일본경유라는 조항이 적혀 있어야 일본대사관에서 도장 찍어 준다는 것이었다.

9:30AM에 기차 편으로 토론토를 떠나 6시간 만에 Ottawa 정거장에 내렸다. 정대위[1] 박사가 역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정거장에서 한국대사관에 직행하여 이 선생의 일본 경유 허가를 얻었다. 나의 귀국허가도 물어봤으나 자기들 말단 직원들은 그런 분의 거취에 관여할 수 없으니 본국 상부에 문의해 봐야 하겠다고 한다. 그것은 불허라는 말의 외교적 제스추어라고 다들 일러준다. 그래서 2년간의 여권 연장 허가로 만족할 밖에 없었다.

밤에 나는 혼자 DavidApt. 객실에서 유했다.

112() - 점심 후에 나의 귀국에 대한 정 박사의 의견을 물었다. 100% 반대라고 잘라 말한다.

2:00PM에 버스로 토론토에 간다. 연도의 풍경이 볼만했다. 단풍은 늦었으나 황야의 갈대와 마른 풀의 소슬이 객수[2]를 건드린다.

8:30PM에 토론토 Bus Terminal에 다 왔다. 경용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선생 동행 경용 집에 갔다. 이 선생도 거기서 유숙하고 이튿날 이 목사 집에 옮겼다.

113() - 2:00PM 연합교회 예배에서 이우정 선생의 보고 설교가 있었다. “어머니의 기도문을 읽을 때 모두 울며 들었다.

114()부터 이우정은 이상철 목사 집에 유숙한다. 일본 대사관에 가 봤으나 일본 경유 Visa는 안줄 방침이었다.


[각주]

  1. 정대위(鄭大爲, 1917~2003) - 북간도 용정에서 독립운동가 정재면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5년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일본 동지사대학 신학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예천교회 전도사, 김천교회, 영주교회를 시무하였다. 당시에 송창근 목사가 담임하던 김천의 황금정교회를 공덕귀, 조선출, 김정준 등과 함께 협동 목회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에 조선신학교 교수, 초동교회 담임목사(1950~1953), 1953년부터 1954년까지 프랑스 소재 세계 유네스코 본부에 한국대표 연락원으로 파견근무를 하였다. 1956년에 토론토대학을 거쳐 예일대학으로 유학하여 1959년에 종교학과 인류학으로 최초로 미국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이후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건국대학교 총장(1961~1968), 토론토 한인연합교회(1968~1969), 칼튼대학(Carleton University) 교수(1969~1983), 한국신학대학 학장(1983~1987) 등을 역임하고 캐나다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2003).
  2. 객수(客愁) - 객지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나 그리움 따위의 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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