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을 숨쉰다
며칠 전에 서울 다녀온 젊은 친구를 만나 서울 인상을 물어봤다.
“서울은 마치 자기 허벅다리 젖가슴 살점을 뜯어 얼굴에 붙이고 인두질[1]한 여인의 얼굴 같더군요.”
“얼굴은 그럴싸하니까, 긴 치마로 하느작거릴 땐 제법 미인 같은데 해수욕장에는 못갈 팔자던데요.”
아닌 게 아니라, 복판에서 키 크기 경쟁에 아귀다툼[2]하는 고층 건물은 그럴싸하다. 그러나 땅에 평토장[3]으로 앉은 종로 바닥, 청계천 좌우, 특히 그 하류 서민촌은 엉망이다. 여름철에 그 언저리를 다니려면 숨이 절반쯤 밖에 마셔지지 않는다. 코로 청계천 개굴창[4]을 마시는 느낌이다. 눈이 아리고 코에 염증이 생기고 기관지염이 기침과 담을 들쑤신다.
서울이란 원래가 옴폭한[5] 가마 속 같은 고장이다. 무악재[6], 인왕산[7], 백운대[8], 남산, 불암산[9] 등등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그러니만큼 거기에 공장이 섞여 앉으면 “스모그”가 그 속에서 맴돌기 마련이다.
서울은 주택지로만 써야 할 곳이다. 그런데, 남산 변두리, 삼각지, 용산, 동대문 안팎 할 것 없이 별에별[10] 공장이 뒤섞여 앉아 그 안령한 “독까스”(?)를 뱉는다.
필자가 살던 수유리만 해도 아침에 6, 7년 전에는 북창을 열면 백운대와 그 기슭이 갓 목욕한 선녀같이 예쁘고 빛스러웠다. 거기에 보드럽고 얇은 흰 구름이 살짝 아랫도리를 가리기나 하며는 진짜 선녀라도 하강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년쯤 후부터는 늙은이 눈동자처럼 뿌옇기만 하고 생기도 아름다움도 증발해 버렸다. 그게 “스모그”라고 한다.
이제는 우이동까지도 그 영역에 들었고 의정부도 마찬가지가 됐다.
공장은 한강 건너 영등포에서 인천까지의 공기가 잘 빠지는 평야나 서해안 아산만 지대에 국한시켜도 나무랄 사람이 없을 것 – 오히려 현명한 위정자라고 칭찬할지 모른다.
“청”과 “탁”을 가릴 줄 모르면 맑던 것이 더러워지고 더러워지면 썩는다. 그러면 시민 모두가 코로 구정물을 마셔야 한다.
[1980. 4. 7.]
[각주]
- 인두질 – 인두로 구김살을 펴거나 꺾은 솔기를 누르는 일
- 아귀다툼 – 서로 악과 기를 쓰며 헐뜯고 사납게 다툼
- 평토장(平土葬) - 봉분을 만들지 않고 평평하게 매장함
- 개굴창 - ‘개울’(골짜기나 들에 흐르는 작은 물줄기)의 방언
- 옴폭하다 – 가운데가 오목하게 속으로 폭 들어가 있다.
- 무악재(毋岳재) -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과 홍제동을 잇는 서울시의 고개이다. 인근에 지하철 3호선의 역인 무악재역이 있으며 인근 일대는 한때 조선의 수도 후보지인 무악 지역으로 각광받기도 하였다. 인왕산과 안산 사이의 고개이다. 구 한양의 북서쪽 지대에 위치한 고개이며, 명나라와 청나라 사신이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고개 밑 인근에 독립문이 있다.
- 인왕산 - 서울시 종로구와 서대문구에 걸쳐있는 높이 338.2m의 바위산이다. 진경산수화의 대표격으로 흔히 언급되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가 바로 인왕산을 그린 산수화.
- 백운대(白雲臺) - 서울시 도봉구와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 있는 북한산(北漢山)의 최고봉. 높이 836m. 인수봉(仁壽峰, 810.5m)ㆍ노적봉(露積峰, 716m) 등과 함께 북한산의 고봉을 이룬다.
- 불암산(佛巖山) - 서울시 노원구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509.7m. 원래 ‘필암산(筆巖山)’이라 하여 먹골[墨洞]ㆍ벼루말[硯村]과 함께 필(筆)ㆍ묵(墨)ㆍ현(硯)으로 지기(地氣)를 꺾는다는 풍수지명(風水地名)이었다.
- 별의별 – 보통과는 다른 갖가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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