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1일 목요일

[범용기 제4권] (29)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損之又損(손지우손)

損之又損(손지우손)

 

한동안 목회하는 목사님들도 본국의 반독재 민주회복 운동에 적극 가담했을 뿐 아니라, 제일가는 열성부대의 앞장을 서온 일이 있었다.

그러나 요새 들려오는 소문에는 나는 민주운동에서 손해만 봤다하고 후퇴하는 분도 있다고 한다. “손해봤다는 것은 교인을 잃기도 하고 교회 일에 등한하대서 말썽이 생기기도 해서 꿩 쫓다가 집엣 닭 잃는 식의 손해란 말이겠다. “인제 그런 어리석은 일은 안한다하고 아주 도도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본국에는 아직도 임순만 박사가 3백호 기념 논문에 쓴 대로 바보 족속들이 있어서 연방 감옥에 가고, 학생들은 짐승처럼 두들겨 맞고, 동료 동지들 중에는 60대의 몸으로 종신형 15년형 등등 장기 옥살이를 그대로 계속한다. 문익환[1]은 종신 징역인데 거기서 시를 쓴다. 맘을 정하고 너무 외로우면 이부자리를 구석장이에 고이 앉혀놓고 찾아온 친구인양, 얘기하며 를 읽는다. ‘어딘가 돌았어!’로 끝내기에는 너무 몰인간적이 아닐까? 한국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군국주의가 되버렸고 또 세계정세로 보아 그렇게 될 운명에 있어! 안될 일에 왜 투자하나! 나는 손 뗐어! 그게 상식이겠지! 그러나 그게 진리는 아닐 거다. 목사란 현실에서 손해 봐도 진리에서 이기는 인간이 아닌가? 예수 이미지가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물론 바보같겠지만 그건 좋은 의미에서 하는 말이지, 진짜 바보란 말은 아니잖는가? 말하자면 진리를 위해 손해 보는 바보란 말이다.

노자손지우손을 말한다. 손해 보고 또 손해 보고, 그래서 아무것도 없어서 이제는 손해 볼건더구니가 없게 된 때, 진공가 찾아든다고 했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다. 십자가에 달려 자기 몸 죽고 제자들 흩어지고 하나님 잃어버릴 때 그는 다 이루었다고 외쳤다.

목사가 진리 때문에 뭔가 손해 봤다면 그건 손해가 아니라 소득이다. 그리스도의 없음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손해 봤다면 교회 이기주의에 손해 봤다는 것이겠고 교회주의 즉 Churchism에 손해 봤다는 것이겠다. 그래서 서울 영락교회처럼 성공하지 못했다는 유감일 것이다.

목사로서 자기 교인 하나라도 잃는다는 것이 마음 아픈 일이다. 그러나 교회가 예수의 교회요 어느 개인 목사의 직장이 아닌 다음에는 내가 곧 진리다한 예수와 함께 진리증거자부터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제일차적인 의무다.

 

[1981. 3]


[각주]

  1. 문익환(文益煥, 1918~1994) - 목사, 신학자, 시인, 사회운동가. 호는 늦봄. 만주 북간도 출생. 목사인 아버지 문재린과 어머니 김신묵의 32녀 중 장남이다. 31운동을 전후하여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던 북간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만주의 한인들이 세운 명동소학교와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 북간동의 용정광명학교를 다녔다. 일본의 동경신학교로 유학을 갔으나 학병 거부로 퇴교되어 만주의 봉천신학교로 전학하였고 그 뒤 한인교회 전도사로 일하였다. 1947년에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미국 프린스톤신학교에 유학, 신학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한국신학대학과 연세대학교에서 구약을 강의하기 시작하였다. 개신교와 천주교가 공동으로 번역한 성서의 구약 번역 책임자로 8년 동안 일하였다. 1976년 명동 ‘31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면서 민주화투쟁에 나섰으며, 1980년 내란예비음모죄로 다시 복역하였다. 출옥후 민주ㆍ통일국민회의 의장(1984)과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1985), 전국 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고문(1989), 범민련 남측본부결성준비위원회 위원장(1991), 4차 범민족대회 대회장(1993)을 역임하면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매진하였다. 1989년 방북하여 김일성을 면담하고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며, 같은 해 3‘4월혁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