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1일 목요일

[범용기 제4권] (35) 내 백성 내 민족 - 民草

民草

 

동양 고전에서 백성을 풀과 같다고 했다. 공자도 그렇게 말했단다. 풀은 바람이 부는 대로 쓰러진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밀려 누워 버린다. 역행은 못한다. 여기서 은 물론 민중이겠고 바람은 권력자 또는 관료배라 하겠다. 이건 지금도 비슷하다. 독일 민족은 똘똘이로 자타가 공인했지만, 히틀러의 광풍에 밀려 히틀러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자유국가들과 죽어라고 싸우다가 기진맥진해서 항복했다. 일본 민족도 그리했다. 다만 소수의 사회정의파 크리스천 지도자가 있어 독일에는 니이믈러[1]를 비롯한 3천 단위의 교직자들이 투옥되었고 그중 본회퍼[2] 같은 천재 신학자는 히틀러 암살을 음모했다가 실패하여 해방 직전에 사형됐다.

일본에서는 소수 무교회주의 크리스천과 좌익지도자 몇 사람이 침략 군벌에 항의하다가 투옥되어 해방된 날에 나왔다. 그러나 조직 교회 인사들은 바람 앞에 풀처럼 춤췄다. 일본 신학의 대변자라는 무라까미교수는 기독교, 다시 말해서 호국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이론화한다면서 그걸 선전하기 위해 한국(그때에는 조선)에까지 출장했었다. 그때 필자는 조선 신학을 안고 몸부림치던 무렵이었다. 물론 필자도 그를 만나서 한 시간쯤 얘기했다. 그 이튿날이던가 종로 YMCA회관 앞에는 그가 일본적 기독교를 강연한다는 광고판이 섰다. 그런데 그가 YMCA 문 앞까지 와서 졸도했다가 겨우 소생해서 그 길로 귀국했다.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는 일본적 기독교와 졸도도라는 속담까지 돌았다. 그때 일본의 어느 신학 교수는 창세기를 일본 신화에 맞춰 다시 쓴다장담하기도 했다. 그들은 히틀러 바람에 춤추던 German Church파를 쳐다보면서 원숭이 곱새치기[3]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민초였다면 죄가 덜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바람 노릇을 했으니만큼 죄 없다 할 수 없겠다.

지금 한국에서는 전두환이란 마녀가 뿜어대는 독까스 바람에 민초는 그대로 나부끼다 시든다. 전두환 바람에 춤추며 제 바람 피우는 교회 지도자가 있다면 그건 히틀러 교회 목사나 일본 군벌 교회 지도자보다 더 치사한 서커스 원숭이가 아닐까?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도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풀의 끈기때문이다. 나무는 광풍에 꺾어지고 뿌리째 뽑히는 일이 있어도 풀이 바람에 뽑혔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박정희가 즐겨 쓰던 두 가지 언어가 있다. 하나는 일부 몰지각한 인사 운운하는 말이었고 또 하나는 뿌리째 뽑는다는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뿌리째 뽑힌 인사가 있을까? 특히 이라는 은 결코 어느 폭군에서도 뿌리째 뽑히는 일은 없다. 다만 잎들이 순응하는 체 했을 뿐이다. “적응하면서 항거한다는 것이었다. 신사참배가 강요된다. 안하면 어른들은 실직하고 아이들은 퇴학된다. 교회는 문 닫힌다. 남산신궁에 집단으로 간다. 가서 소위 배례시간에 무얼 기원하라는 건가? “천황만수무강, 황군무운장구를 빌라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 빌었느냐고 물어보면 거의 전부가 입속말로 이 우상의 제단을 허물어 주님 교회 서게 해 주소서”, “일본이 패하고 조선이 독립되게 해 주소서 하고 우리 하나님께 기도했지!” 한다. 그게 이라는 의 전략이다. 적응하는 체 하지만 뿌리는 5천년 역사의 흙 속에 깊다. 전두환 따위가 민초를 이길 수는 없다. 뽑을 수도 없다.


[각주]

  1. 마르틴 니묄러(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öller, 1892~1984) - 독일의 루터교 목사이자 반나치 운동가이다. 애초 니묄러는 민족보수주의적인 성향을 가졌고, 아돌프 히틀러의 지지자였다. 하지만 성향을 바꿔 나치에 반대하는 고백교회의 설립자 중 한 명이 됐고, 나치에 물든 독일의 개신교를 비판했다. 또한 니묄러는 아리아인 조항과 같은 나치의 인종주의를 격렬히 반대했고 이런 활동 덕에 그는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서 1937년부터 1945년까지 갇혀 있었다. 나치 독일이 패전한 이후 그는 평화주의자자 반전주의자로 활동했다. 1966년부터 1972년까지는 국제전쟁저항자모임(War Resisters' International)의 부회장을 역임했고, 베트남 전쟁기간에는 호치민을 만나기도 했다. 또한 비핵화 운동에도 앞장섰다.
  2.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 독일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이며, 반 나치운동가이다. 고백교회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외국 첩보국(독일어: Abwehr)의 구성원에 의해 진행된 계획에 가담하였다. 그는 19433월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고, 결국 독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19454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3. 곱새치기하다 - (노름에서) 곱으로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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