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7일 수요일

[범용기 제4권] (72) 자연은 인간의 큰 집 - 생명의 푸른 계절

생명의 푸른 계절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1]라는 고 시조가 있지만 산도 물도 절로[2] 되어 절로 있고 절로 살다 오랜 후에는 절로 죽는다는 뜻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건 자연이고 인공이 아니라는 것도 되고 자연 자체가 자존물이란 뜻도 된다. 어쨌든 동양인으로서는 기독교 신학의 창조주 신앙에까지 밀고 올라갈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창조주 신앙에까지 밀고 올라갈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이런 데까지 신학을 들고 좌충우돌할 동키호테[3]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건 의 세계기 때문이다.

여기도 이제 몇 주일 후면 우선 밟히던 잔디가 파랗게 치밀고 개나리가 노랗고 진달래가 연분홍 입술로 웃고 연록색 애숭이 싹들이 억억만개 다 같이 봄볕을 쬐려 들 것이다. 어느 폭군이 이 생명의 샘줄을 막을 수 있겠는가? 꽃샘바람이 며칠 동안 거셀지 몰라. 그렇지만 그게 꽃을 못피게 하고 잔디밭에서 푸름을 약탈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은 죽은 물건인 줄 안다. 그래서 별 생각도 없이, 반드시 그래야 할 것도 아닌데 파고 부수고 헐고 뭉개고 한다. 있는 그대로 미화하고 그 속에 집을 지어도 충분히 아름다울텐데도 기어코 깔아뭉개고 석축을 높인다. 한국에 군정이 실시된 첫 무렵에 그들은 서울 거리에서, 그리 자라지도 못한 가로수를 문들어진 문둥이 손처럼 만들어 놓는다. 나는 어느 감독하는 군인에게 물었다.

그건 왜 그렇게 지독하게 잘르시오? 가로수하고 무슨 원수라도 지었소?” 그는 거침없이 뇌까린다.

그건 으레 그래야 합니더. 이유 붙일 필요도 없습니더!”

나는 어이 없었다. 가로수도 생명인데, 어쩌다 서울 시내 세멘바닥에 박힌 것도 일텐데 애숭이 자식새끼마저 쏭당쏭당[4] 학살당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다른 나라에서는 가로수가 큼직하게 자라도 좋기만 허던데! 군인이란 생명을 무지르는 쾌감에 사는 부족인지 몰라도 가로수만이 아닌 인간 생명도 그들 앞에서 연행, 고문, 행방불명되는 일이 많았다. 자연생명도 존엄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생명은 온 천하와도 바꿀 수 없이 존엄하단다.

 

[80. 4. 12]


[각주]

  1. 송시열의 시조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 절로절로 수() 절로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절로
    그 중()에 절로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2. 절로 작위적인 노력 없이 자연적으로(저절로)
  3. 돈키호테 에스파냐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지은 풍자소설. 또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 현실을 무시하고 망상적인 이상을 향해 돌진하는, 무모하면서도 정의감이 강한 좌충우돌형의 인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4. 쏭당쏭당 물건을 조금 작고 매우 거칠게 자꾸 빨리 써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바늘땀을 조금 성기고 매우 거칠게 자꾸 빨리 꿰매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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