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7일 수요일

[범용기 제4권] (82) 野花園餘錄(야화원여록) - 잠 안오는 밤

잠 안오는 밤

 

잠 못 자는 밤이 많아진다. 방이 추워서도 아니고 너무 더워서도 아니다. 외계의 영향은 아닌 것 같다.

자리에 눕기는 했지만 새로[1] 네 시 다섯 시까지 엎치락 뒷치락이다. 한쪽 팔을 깔고 모제비[2]로 누우면 십분도 못가서 팔이 저린다. ‘펌핑이 시원찮아서 그런갑다고 제나름의 진단을 내려보기도 한다. 무슨 깊은 곳에 생각의 굴착 파이프를 내리박고 원유 뽑듯 생각을 끌어 올리노라고 잠들 사이 없어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생각이 아주 없달 수는 없겠지만 초두부같아서 틀이 잡히지 않는다.

본국 소식이 너무 암담해서 애국충정 때문에 잠 못 이루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거리가 좁혀졌다해도 지구의 저쪽 켠, 바다도 구름도 이어지지 않고 태양빛마저도 절반으로 꺾어서야 겨우 비취는 아득한 먼 고장, 거깃 사건들을 자리에 누운채 카메라 눈알에 그려 넣기에는 내 상상이 너무 허술하다.

써 낼 글을 구상하는 것일까? 어떤 경우에서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주 반짝 빛나고 신묘한 글이 떠오르는 것으로 자부한다. 그래서 그놈을 솜틀듯 고루 펴고 을 만들어 쌓아 놓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깨 났을 때에는 거의 전부가 망각의 심연에 가라앉고 만다. 간혹 생각나는 것이 있어도 그야말로 꿈 같은 얘기어서 씨 먹지 않은 그대로다.

본국의 수난동지들 생각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다. 잠 못 이룰 정도로 그들의 고난에 나를 일치시킬 성자가 된 나는 아니다. 생각하면 분노도 솟구치고 가학자에 대한 욕설도 늘고 웨이 아웉(way out)’이 똑똑잖아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 농도가 잠 못 이룰 정도로 짙으지는 않다.

사실, 1974년 겨울 - ‘알라스카를 연상할 정도로 눈이 쌓이고 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 날, 나는 스카아보로계곡 언덕바지를 내려오고 있었다. 가벼운 체중이라, ‘차도에 날려 떨어질뻔도 했다. 무던히 뚱뚱한 한 백인 할아버지는 길가 전신주를 얼싸안고 서 있었다. 다리가 바람에 들먹여 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면서라도 걸어야 합니다하고 나는 그에게 충고했다.

나는 눈보라 속에서 감옥 속 동지와 후배들을 생각했다. 세멘 바닥에서 생발이 얼어 퉁퉁 붓고 터져서 진물이 흐르고, 그러면서 기쁨의 신학을 구상하고 시와 노래의 영감에 잠기고 그런데 나는 해외에 공동전선을 편답시고 여기와 있다. 본국에 있었댔자 나 같은 늙은이를 감옥에 쳐 넣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떨어져 있는 것이 주님 앞에 죄스럽다. ‘길트 콘센트같은 게 맘둘레를 순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짐짓 그들의 고난을 나눠 보자.” 그래서 길까지 묻혀버린 눈 사태를 귀가림도 없이 마구 텀벙댔다. 집에 왔을 때, 귀도 반쯤 얼고 손도 설 얼었다. 몇 해 두고 가을이면 귀와 손이 가렵고 아렸다. 그러나 그건 자학이외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수난동지의 고난에 몸으로 동참한다는 것도 애매한 소아병 따위랄까. 잠 못 이룰 정도의 진실일 수가 없다.

내게 있어서 잠 안오는 밤은 정신과 의미의 세계에 닿는 고뇌는 아닌 것 같다. ‘이유 없는 불면이다. 아예 무시해 버리자! 언제부터 잤는지, 아침 아홉시에사 깨났다.


[각주]

  1. 새로 12시를 넘긴 시각 앞에 쓰여, 시각이 다시 시작됨을 이르는 말
  2. 모제비 - ‘모퉁이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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