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3일 수요일

[범용기 제1권] (91) 간도 3년 - 차운수 사건

차운수 사건

 

중학교 선생이란 출세할 여백이 없다. 극상[1] 올라갔자 평교사에서 교무주임이면 큰 벼슬이다. 교무주임은 독방에 큼직한 제 책상 회전의자까지 타고 삐걱댈 수 있다. 은진중학에 교무주임 자리가 비었다는 것은 그만큼 노리는 선생도 많았으리라는 걸 암시한다. 부루스 교장은 캐나다 선교사로서 교육대학을 나온 평신도다. 나와는 목사와 장로 관계로 대하려 했다. 장로가 목사에게 협조하듯 그는 내게 협력했다. 대소사를 나와 의논했다. 그는 나에게 교무주임될 사람을 추천하라고 했다. 사실 현직 교사들 중에서는 고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데서 새 사람을 데려오자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내가 평양 숭인상업에 있을 때 기독학생회장으로 있던 차운수란 청년이 그후에 일본 동경에서 어느 대학 사년제 고등사범을 졸업하고 방금 귀국하련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그가 숭상 때 기독학생 회장으로 지도력을 보였던 것과 숭상, 숭실, 광명 등 여러 기독학생회 연합회 간부로서도 비범했었다는 걸 기억하고 그 후 4년 대학교육에서 상당히 성숙했을 것을 믿었다. 때묻지 않은 젊은 사람을 본다는 의미에서 그를 교무주임으로 청빙하게 되었다. 그는 동경에서 직접 용정으로 왔다. 졸업장, 교사자격증 등등도 내 보였다. 그는 무난히 등용되어 자리에 앉았다.

 

한두 달도 못되어 소문이 퍼진다. 헌병대에 매수되어 끄나풀 노릇한다는 것이다. 일본어 가르치는 일본인 노인교사가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노교사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어서 아주 양심적이었고 신경질적인 정의파기도 했다.

어느 날 교사기도회 석상에서 차운수에게 마구 호령하는 것이었다. 여우같은 놈, 네가 크리스찬이냐? 가룟 유다보다 더 나쁜 녀석이다. 사탄아 물러가라했다. 차운수는 부루스 교장을 스파이로 몰고 헌병대 등()에 업혀 학교를 뺏으려는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걸 그 영감이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건 후일담이지만 내가 은진 떠난 후 그는 노골적인 일본 헌병대 스파이로 활약했단다. 선교사들을 스파이로 몰고 그 사업들을 몰수하는 데도 앞잡이 구실을 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세상은 하루아침에 뒤집혀 일본이 항복하고 간도에는 공산당이 들이닥쳤다. 그는 가장 충실한 공산당으로 변신해서 공산당 앞잡이로 출몰했다고 전해진다. 간도 공산당들은 그를 그의 고향인 평양으로 추방(?)했다. 그는 평양에서 성분조사에 걸려 숙청되었다 한다. 총살되었다는 말이다. 변절자 배신자의 좋은 쌤풀이다. 이런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따져보지 못했지만 그의 성격으로 보아 그랬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그를 용정에 데려왔을 때 회령의 실업가 이용석 씨는 내게 말했었다.

김 목사, 사람 볼 줄 알아야 해요. 사람이란 눈알을 보면 속이지 못한다고 하지 않소! 그의 눈동자는 눈 중간에 똑바루 머물지 못하고 사람을 볼 때 위로 둔갑하고 흰눈자위가 눈의 삼분지 이를 차지하는 걸 김 목사가 눈여겨보지 못한 것 같소. 그런 눈 가진 사람은 잠재적인 배신자로 경계해야 한다오했다.

그 말 듣고 눈여겨보니 사실 그의 눈동자는 그 부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물은 땅에 쏟아진 것. 후회막급이랄까.


[각주]

  1. 극상(極上) - 더할 수 없이 위이거나 제일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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