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8일 월요일

[범용기 제2권] (31) 통일에의 갈망 – 6ㆍ25와 9ㆍ28 - 도농에서

도농에서

 

학우는 큰 형과 둘째 형이 모두 인민군의 숙청대상자에 해당되느니만큼, 집을 보존하고 부모와 동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철저한 변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는 충성을 보였다. 그래서 동책인가 됐다. 밤낮 지시가 온다. 동민을 자기 집 뜰 앞에 모여 놓고 지시사항을 결의시킨다. 미군 폭격 때문에 다리는 연방 부서진다. 그러면 동민은 새벽까지 수선해야 한다. 이북 군수품 수송로기 때문이다. ‘눈감고 아웅하는 식의 지시대로의 결의’, 당장 보내야 할 부역반(賦役班) 편성 등으로 새벽 세시쯤에야 헤어진다. 말하자면 들볶아서 딴 생각 못하게 하는 시책인 것 같았다.

 

동네에 소 몇 마린가 조사하러 나온다는 날에는 온 동네에 소를 숨기라고 미리 알린다.

나는 문간방[1]에 있길래 들창[2]너머로 그 광경을 목격한다. 그러나 어느 모임에는 나를 참여시키는 일은 없었다. 철저하게 숨겨주는 것이었다.

호구조사 나온다는 날이면, 나와 우리 식구에게 미리 통고한다. “멀찌감치 가서 어느 옥수수 밭에 숨어 계십시오

 

도농에 피란해 있는 우리 식구는 절량[3]상태에 들어간다.

아내는 서울 동자동 집에 차근차근 쌓아 놓는 장작을 시장에서 쌀로 바꿀 수 없을까 싶어 들어갔다. 신자가 같이 갔다.

 

장작으로 쌀을 바꾼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망상이었다. 아내는 혼자서 도농에 돌아왔다. “신자는 어디 있느냐고 나는 물었다. 경기도 시골에 옷가지를 가지고 쌀 바꾸러 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새파랗게 질렸다.

폭탄이 장마철에 비 오듯 하는 데 어쩌자고 아이를 혼자 보낸단 말이냐?”

박봉랑 박사랑 니하까[4]를 끌고 그리로 간다길래 부탁해 보냈다는 것이다.

며칠 후에 신자는 쌀 두 말을 이고 지고하면서 도농에 왔다. 그 얘기가 희안하다.[5]

쌀 실은 구루마[6]가 수백 대 줄지어 어느 언덕 신작로를 가는데 갑자기 미군기가 저공 기총소사[7]를 퍼붓더란다. 급히 언덕을 굴러 몸을 숨긴 곳을 콩밭이었단다. 요란하던 기총소사 소리도 멈칫한[8] 것 같아 정신을 차리고 언덕을 기어 올라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고 길가는 수라장[9]이었다 한다. 나무바퀴가 달린 장난감 같은 니하까는 이미 바퀴가 물러앉아 쓸 수가 없게 되어 거기서부터 도농까지 이고 지고 안고 하면서 쌀 두말을 가져왔노라는 것이다.

나는 다윗의 망명 때 얘기를 연상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블레셋 지방 동굴 속에 피신했을 때, 광야라 마실 물이 없었다.

아 내 고향 맑은 샘물을 한 모금 마셔보고 싶구나!” 하고 탄식한다.

부하 한 사람이 몰래 듣고 블레셋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 샘물 한 통 떠갖고 왔다.

다윗은 감격했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이것은 물이 아니라 네 피다. 내가 어찌 네 피를 마시겠느냐?” 하고 여호와의 제단에 관제물로 부었다.

쌀 두말을 앞에 놓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이 아니라 신자의 이다. 내가 어찌 네 살을 먹겠느냐?”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나는 다윗 같은 영웅도 아니고 그런 드라마를 연출할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목숨 걸고 가져온 신자의 성의에도 찬바람을 불어넣는 것이 될 것이었다. 이럭저럭[10] 우리 식구는 그것으로 한 달 가까이 연명했다.

 

하루는 내 큰 조카 이용이 이북에서 서울에 출장 와서 우리 식구를 만나자고 기별해 왔다. 맏딸 정자네 위층에 오겠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40리를 걸어 그리고 갔다. 그는 노동당의 노동부장 직책을 갖고 있노라 했다. 그는 중학 2년 때부터 좌경이었고 동경법정 대학 정경과 재학 중에는 사회주의 교수들의 강의를 치우 듣고 친교를 갖고 있었다.

일제 말기에는 철저한 변장으로 시종하여 하얼빈 금융 합작사 간부로 있었다. 그러나 이북이 공산화되자, 그는 내 세상이 왔다고 데뷰해서 노동당 노동국장까지 치솟았다. 그는 연안파[11]였다.

 

그를 만났을 때, 신 의사는 수원에 피신 중이었고 정자가 맏딸 혜림과 같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가족끼리 모이니 창꼴집에서 자랄 때의 그와 다른 티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역시 피가 물보다 진하단 말이 옳구나!’ 하고 혼자 생각했다.

그때 다섯 살 된 혜림에게 노래를 시킨다. 혜림은 어린이 찬송가를 불렀다.

조카는 손뼉을 치면서도 무슨 그런 노래를 하니!” 하고 혼잣말 같이 뇌였다.[12] 신 의사가 인민군의 의사 징발을 피하여 수원에 숨었을 때다. 조카는 이런 난리 속에 아내와 어린 자식을 두고 저만 피신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나무람[13]도 한다. “사내자식이 비겁하다는 뜻일 것이다.

나더러는 아재씨[14]도 이북 오시면 극진한 우대를 받게 됩니다.” 하고 은근히 월북을 권하기도 한다.

그는 내 조카들 중에서도 머리 좋고 센스가 빠르고 재치 있는 좌익 지성인이었다. 그러나 후에사 알았지만, 그는 연안파 숙청 때 희생된 것으로 듣고 있다.

 

아내와 나는 서울 갔다가 도농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왕천 다리 바로 못미처 길가 버드나무 밑에 앉아 쉬고 있었다.

대왕천은 꽤 큰 시내다. 다리 둘이 나란히 서 있다. 기차 다리와 인도교다. 철교도 터널 바로 입구에 있다.

미군기가 날아와서 터널 속에 폭탄을 쏴 넣는다. 그리고 철교 위에 까만 폭탄 알을 낳아 팽개친다. 폭격기 배때기[15]가 철교에 닿을락 말락 낮게 내려와 알은 낳는데도 하나도 바로 맞지 않는다. 인도교와 철교 사이 물속에 떨어져서 모래를 태산 같이 인도교 위에 퍼 올린다. 우리는 아름드리 버드나무에 등을 대고 구경한다. 파편이 여기저기 날아온다. 바로 우리 밭 앞 논두렁에도 날아온다. 그래도 우리는 무사했다.

그런 판국에 파편이 우리 살에는 박히지 말하는 법이 없다. 폭격기가 멀리 달아나자 우리는 인도교 젖은 모래 위를 걸어 도농 길에 나갔다.

나는 역시 하느님이 보우하사를 되새기며 집에 왔다.


[각주]

  1. 문간방(門間房) - 대문간의 바로 옆에 있는 방
  2. 들창 벽의 위쪽에, 위로 들어올려 열도록 만든 작은 창문
  3. 절량(絶糧) - 양식이 다 떨어지는 것
  4. 리어카
  5. 희안하다 - ‘희한하다’(보기에 매우 드물거나 신기하다)의 비표준어
  6. 구루마 - ‘수레’(사람이 타거나 짐을 실어나르는 용도로 바퀴를 달아 굴러가게 만든 운송수단)의 비표준어
  7. 기총소사(機銃掃射) - 항공기에서 땅 위로 표적을 비로 쓸어 내듯이 기관총으로 쏨
  8. 멈칫하다 하던 일이나 동작을 갑자기 멈추다
  9. 수라장(修羅場) - 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운 마당, 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곳. 또는 그러한 상태
  10. 이럭저럭 정한 바 없이 되어 가는 대로 이러저러하게, 알지 못하는 동안에 어느덧
  11. 연안파 중국 연안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하다가 해방 후 입북한 조선의용군 출신의 정치집단으로 김두봉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김일성의 빨치산파와 대립하다가 한국전쟁과 ‘8월 종파사건으로 축출되었다.
  12. 뇌다 조그만 소리로 거듭해서 말하다
  13. 나무람 어떤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야단처 꾸중함
  14. 아재씨 - ‘아저씨의 방언
  15. 배때기 - ‘를 속되게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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