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5일 금요일

[범용기 제2권] (7) 해방 직전 “일제”의 발악상 - 감리교의 반정운동

감리교의 반정운동

 

이동욱 총무, 변홍규 통리 아래에서 감리교는 보재기[1]채로 혁신교단에 넘어가고 전필순은 감리교 신학교 안에 보좌를 꾸몄다.

그러나 감리교 안에서 반정(反正) 즉 원상회복 운동이 일어났다. 이충무공[2] 직손으로 일제시대에 상해 임시정부에도 관여했다는 이규갑[3] 목사와 그의 동료들이 감리교 원상회복 운동을 일으켰다. 그 뜻을 총독부에도 통고했다 한다. 그들은 과격파였던 것 같다. 오물(汚物)통을 끌고 감리교 본부에 급습하여 이동욱 등에게 마구 오물을 퍼부었다. 물론 통리의 보좌도 오염됐을 것이다. 본부로서는 이만저만한 망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총독부에는 이제부터 감리교 본래의 헌장에 따라 재조직 한다고 통고했다.

총독부에서도 당황했다. 당국으로서의 체면유지라도 해야할 판이었다. 그들은 타협안을 내놓았다. “원상회복의 원칙은 인정한다. 그러나 당분간은 이동욱 등 감리교 출신 현진영은 그대로 둬달라는 것이었다 한다. 이규갑 일파는 승낙하고 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한 것이었다고 들었다. 이것은 이규갑 씨가 내게 말한 대로 적는 것임을 양해하기 바란다.

어쨌든 감리교도 혁신교단에서 탈출했고 전필순의 ‘3일천하는 끝났다.


[각주]

  1. 보재기 - ‘보자기의 방언
  2. 충무공 이순신(1545~1598)
  3. 이규갑(李奎甲, 1887~1970) - 일제강점기 대한청년단원,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원들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목사, 정치인. 본관은 덕수(德水), 호는 운호(雲湖). 1906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29년 신간회 경동지회 설립을 주도하였고, 돈암교회, 월곡교회, 우이동교회, 창동교회, 광희문교회, 의정부교회 등에 부임하였다. 해방 이후 감리교회 재건운동을 선도하였고 정계에 투신하여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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