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9일 화요일

[범용기 제2권] (79) 캐나다연합교회 예방과 그 후유증 - “짠 리”(John Lee)라는 젊은 친구

짠 리”(John Lee)라는 젊은 친구

 

그 당시 토론토에는 한국 교포가 없었다. 있다면 전충림[1] 가정이었을 것인데 나는 그를 몰랐고 그도 내가 있는 줄 몰랐다.

YMCA 가까이에 유대인 경영 종합병원인 Mount Sinai Hospital이 있다. 거기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John Lee가 유일한 한국 청년이었다.

그는 대구 출신으로서 아버님도 의사여서 넉넉한 가정의 출신이다. 싹싹하고 곱상스런 미남이었다. 그도 동족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어쩌다가 YMCA 숙고에 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얘기 꽃을 피운다. 그는 거의 매일 찾아온다. 내가 그의 처소로 가는 일도 잦았다. 차로 교외에 같이 나가기도 했다.


[각주]

  1. 전충림(1923~1995) - 중국 용정 출신, 해방 이후 1962년에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토론토에서 한인연합교회를 시작하였고, 1973년부터 뉴코리아타임스’(The New Korea Times)라는 신문을 발행하며 해외에 흩어진 동포들에게 조국의 소식을 전했다. 1979년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해외언론인 대표로 참가하게 되었다. 당시 교회 내에서 의견이 분분했을 때, 김재준 목사는 누군가가 먼저 가야 한다. 그래야 문이 열리지 않겠는가. 공개적으로 정정당당히 가라. 내 나라 내 고향이 아닌가!”라고 격려했다. 평양 방문 이후 교회에 폐를 끼칠까봐 장로직을 내놓았으며, 캐나다에서 선우학원 박사, 김재준 목사, 이승만 목사 등과 상의해서 해외이산가족찾기를 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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