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2일 월요일

장공 김재준의 「낙수」(落穗)를 복원하며

 장공 김재준의 낙수(落穗)를 복원하며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책



 

80년 전에 발간된 낙수

 

長空 김재준 목사(1901~1987)1920년대 중반에서 1930년대 초반까지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이후 1930년대 초반에 신학지남의 편집 실무를 맡아보기도 하였다. 이때 김재준 목사는 신학적 글과 함께 짧은 단상들을 신학지남에 다수 발표하였다. 그런데 당시 한국의 신학계의 상황은 선교사들이 가르쳐준 신학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시대였다. 새로운 신학적 사고를 하고 있던 장공은 결국 신학지남의 편집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교육에 남달리 관심이 많았던 김재준 목사는 1930년대 중반 이후에 평양과 간도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다. 특별히 간도 용정의 은진중학교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은 이후 한국기독교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강원룡, 안병무, 문익환, 문동환 등). 1937년부터 1938년까지 장공은 개인 잡지로 월간 십자군을 창간해서 많은 글들을 발표하였다.

1939년에 조선신학원 설립을 위한 실무를 맡게 되어 간도를 떠나 서울로 자리를 옮겼을 때, 마침 교문사를 창간한 최인화 씨가 김재준 목사를 찾아왔다. 그는 신학지남십자군에 실렸던 김재준 목사의 글을 단행본으로 출간할 것을 권고하였고, 그 결과 1940년에 낙수라는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시대를 초월하여 새로움을 전해주는 책

 

1940년대 일제강점기의 말기, 해방, 그리고 혼란 속에서의 격동기에 김재준 목사의 낙수는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강조하고, 신학을 바탕으로 한 성서를 보는 시각을 폭넓게 제시한 책이었다. 특히 해방 전후와 625를 거치는 격동의 시기를 지내면서 시대의 우울함 속에 방황하던 청년들에게 기독교적 가치관과 올바른 역사 의식을 제시해 주었다. 한신에서 신학을 공부하거나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에 속한 목회자들 중에는 이 낙수를 접하고 신학과 목회를 결심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낙수에 실린 글은 80년이 지난 오늘에 읽어도 새롭게 다가오는 글들이 많다. 그 중에서 주일학교 교사에 대한 몇 가지 제언이라는 글은 오늘의 교회 현장에서 다시 읽어도 손색이 없는 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교회학교의 상황이 8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변함없고 오히려 후퇴했다는 느낌을 전해주기에 서글픈 생각이 들 정도다.

 

낙수는 예언자들 중에서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등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도와주며, 교회 역사를 통해서 신앙을 지켜낸 순교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성서와 신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었다.

 

장공의 필체를 복원하는 작업

 

아쉽게도 1940년에 발행된 낙수의 원본은 쉽게 구할 수 없다. 대학교의 도서관에서도 고문서로 취급이 되어서 열람이나 대여가 제한되고 있는 실정이다. 낙수에 실린 글들이 1971년에 편집 출간된 장공전집(5)1992년에 편집 출간된 장공전집(18)에 대부분 수록이 되어 있지만, 옮기는 과정에서 오탈자가 생겼고 시대적 상황(맞춤법 등) 속에서 수정(?)이 가해져서 변형되었다. 그래서 낙수에 실렸던 글들은 글의 전체적인 주제에는 변함이 없지만, 부분적으로 애초에 장공의 필체가 변형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예를 들어 1940년판 낙수의 본문 중에 潑溂(발자)라는 어휘가 있다. 이것은 인터넷을 검색해도 쉽게 그 뜻을 알 수 없을 것이다. 필자도 이것이 비슷한 한자를 잘못 쓴 것인줄 알고 있었다. 潑刺라는 한자어가 발랄함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로 잘못 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1971년판 장공전집에는 潑溂로 그대로 표기하고 있지만, 1992년판 장공전집에서는 해당 어휘를 潑刺로 변경 표기했다)

 

그렇다면 潑溂潑刺의 오기인가?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우연하게 해당 어휘를 일본군의 애국행진곡의 가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天地正氣潑溂” (천지의 정기 발랄하게도)

 

이것을 보면, 潑溂발랄함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일제강점기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일본군의 애국행진곡을 자주 접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익숙했던 어휘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장공은 애초에 潑溂라는 어휘를 사용했을 것이다.

 

장공은 가끔 옛말과 방언을 즐겨 사용했다. ‘스사로스스로의 방언이고, ‘거저그저의 방언이며, ‘도모지도무지의 옛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장공의 글을 읽다보면 남다른 맛을 느낄 것이다. 또한 장공이 즐겨 사용한 한자어를 있는 그대로 읽다보면 독자들이 장공 자신도 느끼지 못했던 장공만의 독특함을 새롭게 느낄수도 있다고 본다.

 

낙수의 원문을 최대한 살려야 하는 이유

 

장공기념사업회에서는 장공의 글에 대해서 최대한 원문을 살리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누군가는 장공을 앞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지속되는 한, 한신대학교가 지속되는 한 장공이라는 이름과 장공의 글은 다양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의 신학을 형성하지는 않았지만 장공이 남긴 글은 다양한 신학의 분야에서 언급되고 검토되기에 충분한 내용들을 갖고 있다.

장공의 글의 원문을 복원하는 작업은, 나중에 장공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1차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공의 글은 1990년대의 어휘나 1970년대의 어휘가 아닌 1940년대의 어휘로 접해야 제 맛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장공기념사업회에서는 작년부터 1940년판 낙수의 원문을 복원하는 작업을 해왔다. 되도록 오탈자까지도 동일하게 복원하려고 노력했으며,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를 위한 서비스로 음역을 달아놓았고 낯선 용어와 어휘는 각주로 설명을 추가하는 작업을 병행하였다.

80년 전의 문서이기 때문에 인쇄상태가 좋지 못해서 알아보지 못하는 글자가 있고, 마지막 몇 페이지는 누락되어서 할 수 없이 1971년판 장공전집을 참고했음을 미리 밝힌다.

 

20202

장공김재준목사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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