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3일 화요일

[낙수] 斷想(단상)과 祈願(기원) - 께보는 마음 께보이는 마음

께보는 마음 께보이는 마음


신학지남163, 1934. 5.
장공김재준저작전집(5)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 5, 21~22.
김재준전집(18)한신대학출판부, 1992, 1, 102~103.

 

道人(도인)의 마음이란 白玉(백옥)같이 맑어야 하겠다. 거기에 物慾(물욕)이 덮이는 날은 道人生活(도인생활)의 끝장보는 날이다. 그 때에는 眞理(진리) 대신 땅문서가 보이고 ()대신에 돈닢만이 크다랐게 보인다. 二重(2) 三重(3)으로 비게가 낀다. 趨勢(추세)[1] 趨利(추리)[2]卑陋(비루)해진다. 累累(누누)[3]하여 喪家(상가)()를 본뜨면서도 口逆(구역)나는 줄 모른다. 그리고 그 反面(반면)에 있어서 不遇(불우)한 사람에게는 驕慢(교만)하고 눌린 이에게는 殘忍(잔인)해진다. 結局(결국)은 하늘의 밝은 빛이 막혀버리고 그 속에는 구덱이가 우물거리게 된다. 어두운 데 쫓겨나 이를 갈고 통곡할運命(운명)이 그 앞에 닥처오는 것이다. 맑은 마음, 맑아서 께보이는 마음의 所有者(소유자)()있는 자이다.

께보이는 마음의 所有者(소유자)는 께보는 마음의 所有者(소유자)이다. 그는 現象(현상)背後(배후)에 움즉이는 本體(본체)를 보는 ()이다. 아모스의 눈앞에서는 繁榮(번영)의 사마리아가 그 罪狀(죄상)을 가리울 수 없었다.

이사야의 心眼(심안)에는 祈禱(기도)하는 祭司(사제)의 손에 묻은 歷歷(역력)[4]히 보였으며 미가의 눈에 비최인 榮譽(영예)都市(도시) 예루살넴은 피로 쌋코 ()로 지은 骸骨(해골)紀念塔(기념탑)으로 밖에 나타나지 못했던 것이다.

榮譽(영예)背後(배후)에 움직이는 魔手(마수)를 보는 마음, 寢牀(침상), 食卓(식탁), 趣味(취미)에서 어려운 兄弟(형제)淋漓(임리)[5]한 피를 보는 마음, 이것을 나는 께보는 마음이라 부르며 이 마음의 所有者(소유자)가 곧 새 世界(세계)主人公(주인공)이라고 말하는 바이다. 옛날 아씨시의 () 푸랜씨스[6]褐衣繩帶(걸의승대)一丈一瓢(일장일표)一生(일생)漂泊(표박)[7]하시면서도 가난한 兄弟(형제)糧食(양식)을 빼았는가 하여 재를 무릅쓰고 悔改(회개)를 거듭했었다. 그리고 쫀 웨슬레[8]도 그와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그 日記(일기)一節(일절)에 나타나 있다.

몇해 ()에 내가 옥스포드에 있을 때 어느 추운 겨울날 한 젊은 處子(처자)가 찾아 왔었다. 너 밥 굶은 모양이구나! 너 그 엷은 베옷(布衣(포의))[9]밖에는 몸에 걸칠 것 없늬?하고 나는 그 處子(처자)에게 물었다.

네 저 가진 것은 이것뿐입니다하고 그 處子(처자)는 대답하였다.

나는 곧 洋服(양복)주머니를 뒤저 보았으나 돈이라곤 한 푼도 없었다.

瞬間(순간) 내 마음에 ()살같이 와 꼿치는 것은 네가 이 불상한 어린것에게 잎여줄 수 있는 돈을 갔다가 네 담벽을 꿈여놓았지! 그래도 ()께서 착하고 신실한 종아 하고 너를 불르실 줄 아느냐? 正義(정의)! 仁慈(인자)여 저 담벼락에 발린 그림조히는 이 가난한 處女(처녀)로 산 것이 아니냐? 무어나 네가 크리스찬으로서의 本分(본분)에 지내치는 것을 所有(소유)한 것 있다면 그것은 가난한 이에게서 짜낸 피인줄 알어라하는 소리였다.

자긔집 바람벽에 붙인 그림조히에서 가난한 女子(여자)의 피를 보는 良心(양심), 이것이 께보는 마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少數(소수)이지만 朝鮮(조선)에 있는 크리스찬이 돈 쓰는데 ()하여 쫀ㆍ웨슬레와 같은 良心(양심)을 가진다면 굶고 헐벗어 街路(가로)에 걱구러지는 이를 일부러 찾아볼래 볼 수 없을 것이다.

普通(보통) 크리스찬같으면 이런 때 , 돈을 다 써버렸꾼 이 애를 좀 도아줬드면 좋을걸 안됐는데!하고서는 그대로 씻은 듯이 잊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普通(보통) 크리스찬은 아니였다.

世界(세계)支配(지배)할 새 양심의 所有者(소유자)이였다. 그런 까닭에 그는 現象(현상)背後(배후)에까지 께뚤러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가난한 ()의 피다웨슬레의 말이 얼마나 날카롭게 우리 良心(양심)을 찔르는가?

우리가 조금만 誠意(성의)를 쓴다면 무럭무럭 자라날 靈魂(영혼)들이 世上(세상)에는 얼마던지 있는 데 이것을 하지는 않고 거저[10] 안됐는데!하며 거짓 한숨을 내쉬는 크리스찬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은 어물어물 하고 지낼 世代(세대)가 아니다. 우리가 돈을 宗敎化(종교화)하지 못하면 宗敎(종교)를 돈에 팔지 않고는 견듸지 못할 世代(세대)이다. 아마게돈이 눈앞에 닥처온 것이다.

一般信者(일반신자)도 이제 거름을 멈추고 다시 態度(태도)決定(결정)必要(필요)가 있거니와 敎職(교직)에 있는 이도 다시 態度(태도)決定(결정)해야 할 것이다.

敎職(교직)이란 假面(가면)罪惡(죄악)掩蔽物(엄폐물)이나 僞善(위선)避難處(피난처)가 되지 않었는가?

()를 섬기노라면서 事實(사실)은 마몬을 섬기지나 안는가? ()를 믿노라면서 事實(사실)은 마몬을 믿지나 않는가? 내 마음에 비게가 끼지 않었는가? 그리하여 事物(사물)의 것만 보고 幻影(환영)만 따라 滅絶(멸절)로 발을 옴기지나 않는가? 마음과 뜻과 性品(성품)을 다하여 ()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 하는가?

物慾(물욕)交蔽(교폐)되지 않은 맑은 良心(양심)所有者(소유자)인가? 께보이는 마음, 께보는 마음의 所有者(소유자)인가. 아니라면 지금 다시 自己(자기) 淸算(청산)을 하여 가지고 再出發(재출발)할 것이다. 지금 내 손으로 淸算(청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면 ()께서 淸算(청산)할 것이니 그때에는 毫厘(호리)라도 갚지 않고는 노이지 못할 것이다. 예수 믿지 안는 것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지만 예수 믿는 것도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각주]

  1. 趨勢(추세) - 세력 있는 사람에게 붙좇아서 따름
  2. 趨利(추리) - 영리에 마음을 기울임
  3. 累累(누누) - 여려 겹으로
  4. 歷歷(역력)하다 훤히 알 수 있게 분명하고 또렷하다.
  5. 淋漓(임리)하다 많이 흘러 흥건하다, 넘칠 듯 힘차다
  6.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anctus Franciscus Assisiensis, 1181/1182~1226)
  7. 漂泊(표박) - 풍랑을 만나 배가 정처없이 떠돌아다님, 정처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삶
  8.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영국 국교회에서 감리교를 창설한 인물
  9. 布衣(포이) - 베로 지은 옷, 예전에 벼슬이 없는 선비를 이르던 말
  10. 거저 - ‘그저의 방언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