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2일 월요일

[낙수] 學窓餘祿(학창여록) - 이사야의 「임마누엘」 豫言(예언) 硏究(연구)

이사야의 임마누엘豫言(예언) 硏究(연구)


신학지남161, 1934. 1.
장공김재준저작전집(5)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 1, 33~38.
김재준전집(18)한신대학출판부, 1992, 2, 67~75.


묺어저 가는 北王國(북왕국)最後(최후)를 꾸민 호세아의 눈물겨운 活動(활동)에 이어 南王國(남왕국)의 예루살넴에 前古(전고) 未曾有(미증유)大豫言者(대예언자) 이사야가 出現(출현)하였다. 語法(어법)豪華(호화), 想像(상상)豊富(풍부), 表現樣式(표현양식)多方面(다방면), 때에 雄渾剛毅(웅혼강의)하야 壓倒(압도)()을 보이며 때에 優雅多情(우아다정)하야 고요한 눈물의 숨여들믈 느끼게 하는 文章(문장)! 그는 참으로 히브리 豫言史(예언사)王位(왕위)()()이였다. 그러나 그의 말 그의 글보다도 그 自身(자신)은 더욱 큰 ()이였다. 이는 그가 그 自身(자신)보다 ()없이 더 크신 하나님을 體驗(체험)()인 까닭이다.

主前(주전) 740(), 우시아[1] ()이 죽은 해 어느 날 그가 聖殿(성전)에 들어가 깊은 冥想(명상)에 잠기였을 때, 그는 忽然(홀연)히 여호와의 臨在(임재)를 보았다.

 

거륵[2] 거륵 거륵하신 萬軍(만군)의 여호와

그의 榮光(영광)은 왼땅에 가득하도다[3]

 

하는 세랍들의 노래에 문턱은 흘들리고 집안은 煙氣(연기)로 가득 찼다.

 

거륵한 여호와 그의 오시는 때는


이리하야 그는 거륵한 狎近(압근)[4]할 수 없는, 그리고 全能(전능)한 하나님을 보았다. 그는 全能王(전능왕) 萬軍(만군)의 여호와시였다. 그의 寶座(보좌)는 높이 높이 들리였으며 그의 榮光(영광)은 왼땅에 넘쳤다. 그는 聖性(성성)으로 超越(초월)하시고 榮光(영광)으로 內在(내재)하신 하나님이시였다.

이 무서운 하나님 앞에서는 人間(인간)은 오직 스스로 나추어 그를 絶對(절대) 信賴(신뢰)할 것뿐이다. 人間生活(인간생활)의 가장 根本(근본)되는 原理(원리)는 곧 믿음이다. 信賴(신뢰)()이 없는 北王國(북왕국) 사람들이 自高(자고) 傲慢(오만)하매(9:10) 그는 嚴然(엄연)宣告(선고)를 나리여 앞에 아람 사람, 뒤에 불레셋 사람이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5]고 말한 것이다.

 

豫言(예언)宣布(선포)歷史的(역사적) 背景(배경)

 

主前(주전) 734() 스리아[6]와 이스라엘의 聯合軍(연합군)이 예루살렘을 包圍(포위)한 때, 愴惶罔極(창황망극)하여 떨고 있는 아하즈 왕에 ()해서도 그는 이 原理(원리)우에 서서 ()激勵(격려)하였다, 임로-태애미-누 키 로 테아메-- 네가 믿지 아니하면 ()코 네가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7:9). 그러나 이 말은 이미 士氣(사기)를 잃은 아하즈 ()에게는 너무나 理解(이해)할 수 없는 큰 말이였다. 아하즈 ()의 생각에는 하나님을 믿는다느니보다도 앗시리아 () 티글나드필네사[7] 앞에 엎데여 請援(청원)하는 것이 더 現實的(현실적)이요, 實際的(실제적)인 것 같이 생각되였던 것이다. 이사야는 아하즈 ()의 믿음을 喚起(환기)하기 ()하야 무에나(표적)()할진대 여호와가 ()히 보여 주시리라고 하였으나 아하즈 ()婉曲(완곡)히 이를 辭絶(사절)하였다. 不信(불신)態度(태도)激憤(격분)한 이사야는 들으라 오 따윗의 집아, 네가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을 적은 일로 여기고 또 내 하나님까지 괴롭게 하느냐?(7:13)[8]語調(어조)를 높인 다음에 이어서 저 有名(유명)임마누엘豫言(예언)宣布(선포)하게 된 것이다.

 

豫言(예언)本文(본문) 批評(비평)

 

그런고로 ()께서 ()히 너에게 표적을 주시리라.

보아라 童貞女(동정녀)가 잉태하야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르리라(714)[9]

 

표적이라는 글자 -는 반드시 異蹟的(이적적)意味(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어던지 하나님의 權能(권능)立證(입증)할 수 있는 것이면 아하즈에게 대하야 표적이 될 것이다.

童貞女(동정녀)란 글자 앨마-芳年(방년)의 젊은 女子(여자)를 이름인 까닭에 普通(보통) 童貞女(동정녀)를 말함이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여기에 冠詞(관사) -를 붙여서 -앨마-라 한 것이 問題(문제)이다. 文法上(문법상)으로 보아서는 -定冠詞(정관사)도 되고 不定冠詞(부정관사)도 될 수 있는 까닭에 이것이 어느 特殊(특수)個人(개인) 그 젊은 女子(여자)指稱(지칭)함인지 그저 一般的(일반적) 意味(의미)에서 어떤 젊은 女子(여자)를 이름인지가 學者(학자)들 사이에 異論(이론) 紛紛(분분)問題(문제)이다. 그러나 이 앨마-라는 글자에 冠詞(관사) 붙이고 안 붙인 關係(관계)舊約(구약) 全篇(전편)()하야 調査(조사)하여 보면 아주 綿密(면밀)하게 그 使用法(사용법)區別(구별)되여 있다. ()를 들면 () 13, 68, () 6826, () 3019절에 나타난 것은 다 一般的(일반적) 意味(의미)에서 씨여진 것임과 同時(동시)()冠詞(관사)를 붙이지 않었다. 그러나 () 2443, () 28절에서는 冠詞(관사)를 붙여서 어떤 特殊(특수)個人(개인)指摘(지적)하였으니 곧 前者(전자)는 리베까[10], 後者(후자)는 바로의 딸을 가르친 것이다. 그런고로 여기에서도 冠詞(관사)가 붙여있는 以上(이상) 特殊(특수)個人(개인)指目(지목)한 것임이 確實(확실)한줄 안다.

그러면 이 特殊(특수)個人(개인)젊은 女子(여자)는 누구를 가르친 것일가 學者(학자)들 사이에 異說(이설)이 너무 많어서 거은 收拾(수습)할 수 없을 만치 되여있다. 1) 이사야의 ()라는 學者(학자)相當(상당)히 많으나 當時(당시) 이사야의 ()芳年(방년)의 젊은 女子(여자)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늙었을 것이며, 2) 이스라엘의 民族(민족) 團體(단체)人格化(인격화) 한 것이라 하는 ()도 있으나 그것은 이라는 글자 빼트表明(표명)하는 것 이 常例(상례)이오(시온의 딸 등), 젊은 女子(여자)」 「앨마-表明(표명)한 데는 없다. 3) 當時(당시) ()後宮(후궁)에 있던, 이사야가 잘 아는 어느 女子(여자)였다는 ()도 있으며, 4) 當時(당시) 民間(민간)流行(유행)하던 메시아 豫言(예언)關係(관계)된 한 特殊人物(특수인물)이라고 主張(주장)하는 學者(학자)도 있으며, 5) 세가리아[11]의 딸, 헤세기아[12]의 어머니를 指稱(지칭)한 것이라는 이도 있고, 6)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가르쳐 豫言(예언)한 것이라는 이도 있다. 이런 모든 提示(제시)各各(각각) 一面(일면)可能性(가능성)을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다 너무 思索(사색)에 치우친 解釋(해석)이 아닐가 한다. 女子(여자)가 메시아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漠然(막연)하게 어떤女子(여자)라는 말로 表現(표현)하지 않고 女子(여자)라고 한 것이라 생각하면 ()한 줄로 안다.

잉태하야라는 글자 --狀態動詞(상태동사)(Stative Verb) --分詞(분사)앨마-()形容詞(형용사)役割(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보아라하는 將次(장차) 나타날 표적指示(지시)하는 첫 타개 말은 그 主力(주력)잉태한다는 事實(사실)()한 것이 아니라 아들을 낳으리라()()한 것이다. () 文脈上(문맥상)으로 보더래도 표적임마누엘誕生(탄생)에 있는 것이오 잉태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창세기 1611절에 있는 이쉬마엘[13]誕生(탄생)()豫告(예고)를 읽어 보면 自然(자연)首肯(수긍)할 것인줄 안다.

그러면 이 豫言(예언)主人公(주인공)임마누엘은 누구인가? 1) 神的(신적) 人格(인격)을 가진 메시아에 ()象徵的(상징적) 名稱(명칭)인가? 2) 이스라엘의 남은 子孫(자손)들을 人格化(인격화)象徵的(상징적) 名稱(명칭)인가? 3) 예수 그리스도를 指稱(지칭)한 것인가? 그러고 이 이름으로 불는 理由(이유)는 어디 있는가? 1) 出生(출생)한 아이는 普通(보통)아이와 다름없으나 그 아이 날 때에 國內(국내) 環境(환경)祝福(축복) ()에 있음으로 그 어머니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感謝(감사)와 기쁨을 나타내는 이름을 그 出生(출생)한 아이에게 붙이리란 말인가? 2) 誕生(탄생)할 아이가 神的(신적) 人格(인격)인 까닭에 이렇게 命名(명명)할 것인가? 이 모든 問題(문제)에 대하여 學者(학자)()에 그 ()이 퍽으나 區區(구구)하며, 많은 枝葉(지엽) 問題(문제)로 나간 것을 遺憾(유감)으로 생각한다. 當時(당시) 이사야의 心中(심중)에 비취여진 默示(묵시)中心點(중심점)理想的(이상적) 王者(왕자)誕生(탄생)에 있었음이 確實(확실)하매 임마누엘은 그 王者(왕자)性格(성격)()象徵的(상징적) 名稱(명칭)이라고 생각하면 ()할 줄 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게시다가 그의 이름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이 理想的(이상적) 王者(왕자)는 아하즈와 같이 믿음 없는 ()가 아니라 하나님께 ()偉大(위대)信仰(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生活(생활), 그의 事業(사업)은 두말없이 하나님 自身(자신)顯現(현현)임을 表徵(표징)한다는 豫言(예언)일 것이다.

그러면 이제 다시 표적은 어디 있는가 하는 問題(문제)闡明(천명)하려 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 표적所在(소재)童貞女(동정녀)의 잉태에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그것은 童貞女(동정녀)라는 글자가 반드시 童貞女(동정녀)意味(의미)한 것이 아니매 구태여 異蹟的(이적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우며 잉태하야童貞女(동정녀)形容(형용)分詞(분사)이매 그 自體(자체)重要性(중요성)이 없는 까닭이다. 다음 誕生時(탄생시)環境(환경)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사야가 極度(극도)蔑視(멸시)하는 煙氣(연기) 나는 두 부디깽이 끝으머리같은 () 王國(왕국)侵略(침략)에서 버서난 것이 무어 그다지 놀라워서 아이 낳은 어머니가 임마누엘이라는 그렇게 큰 이름을 아이에게 붙이기까지 할 것인가 하는 不自然(부자연)()이 있는 까닭이다. 그런고로 不信(불신)의 아하즈 ()을 놀라게 할 理想王(이상왕)出現(출현)이 이 豫言(예언)中心(중심) 理想(이상)임과 同時(동시)에 또 표적所在點(소재점)인 줄 確信(확신)한다. () 표적임마누엘誕生(탄생)에 있는 것이다.

 

이사야는 ()人格(인격)所有者(소유자)였다. 그러나 그 所以然(소이연)[14]은 그 自身(자신)에 있는 것이 아니오 그의 여호와께 ()信仰(신앙)이 그를 그렇게 한 것이다. 當時(당시) 유다의 姉妹國(자매국)인 스리아와 이스라엘이 無謀(무모)하게도 예루살넴에 ()하야 侵略(침략)()한 때 豪氣(호기)로운 이사야는 侮蔑(모멸)의 나머지에 고요하야 두려워하지마라 다메섹의 머리는 레진이오 사마리아의 머리는 레말니아의 아들이라[15]하고 ()激勵(격려)하였다. 이 말 가운데에는 그렇지마는 유다의 머리는 萬軍(만군)의 여호와다하는 말이 隱然中(은연중)에 첨가된 것이였다. 그러므로 네가 萬一(만일) 여호와에 ()한 믿음이 確立(확립)하였을진대 두려울 것이 하나 없으나, 그렇지 못하면 ()코 서지 못하리라고 戰慄(전율)하는 ()士氣(사기)鼓舞(고무)한 것이였다.

이때 이사야의 마음속에 가득 찬 생각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게시다는 것이었다. 한데 아하즈 ()不信(불신)이 그의 潛在意識(잠재의식)激動(격동)시켜서 그 뜨겁기가 焦點(초점)에까지 이르게 한 때 永遠(영원)聖神(성신)靈火(영화)가 이에 불붙어 自然(자연)具體的(구체적) 豫言(예언)으로 ()하야 宣布(선포)된 것인 줄 안다. 다시 말하면 지극히 가까운 將來(장래)임마누엘誕生(탄생)할 것이니, 이것이 여호와의 權能(권능)表徵(표징)이 되여 믿지 않는 아하즈 ()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임마누엘誕生(탄생)時期(시기)環境(환경)

 

그가 언짢은 것을 마다하고

좋은 것을 가릴 줄 알 때

젖기름과 꿀을 그가 먹으리라

이는 그 아이가 언짢은 것을 마다하고

좋은 것을 가릴 줄 알기 ()

네 미워하는 두 ()의 땅이

버림받을 것임이니라(715~16)[16]

 

언짢고 좋은 것을 가리는 때는 아이가 () 2, 3() 되여서 事物(사물)()選擇(선택)()이 생기는 때를 이름이다. 그러므로 가까운 將來(장래) () 이 아이가 두 살도 될가 말가할 때 벌서 스리아와 北王國(북왕국)()하리라는 豫言(예언)이다. 이로 보면 이사야는 이 두 王國(왕국)滅亡(멸망)함과 () 同時代(동시대)임마누엘誕生(탄생)할 것을 믿은 것이 確實(확실)하다. 그러나 여기에 가로막힌 難題(난제)는 이 두 王國(왕국)()한다고 웨 이 아이가 젖기름과 꿀을 먹을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大多數(대다수)學者(학자)는 이 豫言(예언)721~22절에 있는 豫言(예언) () 그때에 한 사람이 한 암송아지와 두 ()을 기를 제 저들이 내는 젓이 많음으로 젓기름을 먹으리니 무릇 이 땅 가운데 남어 있는 ()는 다 젓기름과 꿀을 먹을 것임이니라[17]고 한 것과를 聯結(연결)시켜서 解釋(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721~22절의 豫言(예언) 自體(자체)亦是(역시) 같은 程度(정도)難解(난해)()이니 웨 송아지 한 마리와 () 두 마리에게서 나는 젓을 가지고 젓기름을 먹게까지 넉넉하게 될 것인가. 어떤 學者(학자)審判(심판) ()荒廢(황폐)()하야 消費(소비)()가 적어진 까닭이라고 하고 어떤 學者(학자)審判(심판) () 남은 子孫(자손)에게 대한 여호와의 祝福(축복) 때문에 生産過剩(생산과잉)이 되여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何如間(하여간) 여기 나타난 것으로 본다면 임마누엘이 어린 ()로 있을 때는 나라가 이미 荒廢(황폐)한 때라는 것만은 公通(공통)事實(사실)이다. 젓기름과 꿀을 먹을 것이라는 것은 아무렇게 해석한대도 이 豫言(예언)本質(본질)에 큰 影響(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 줄 안다. 勿論(물론) 遇意的(우의적) 解釋(해석)을 좇는다면 限定(한정)이 없는 것이지마는.

 

임마누엘豫言(예언)展開(전개)

 

主前(주전) 733() 티글나드필네서[18]의 말발굽이 北王國(북왕국)을 짓밝음과 同時(동시)에 첫 번 捕虜(포로)()많은 사람이 잡혀갔다. 여호와의 大豫言者(대예언자)인 이사야가 이 일을 對岸(대안)[19]火災視(화재시) 하였을 ()萬無(만무)한 것이다. 이사야의 默想(묵상)은 늘 이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때부터 多事(다사)10()을 지나 사마리아는 다시 包圍(포위)()하야 722() 王業(왕업)은 마침내 終幕(종막)()하였다. 國土(국토)荒廢(황폐), 捕虜(포로), 奴役(노역), 賤待(천대) 이런 것이 그 百姓(백성)運命(운명)이였다. 여호와의 審判(심판)()한 것이다. 그러나 이 審判(심판)이 지난 ()에는 어찌될가 그는 이스라엘의 東北(동북) 邊境(변경)에 비최어 오는 偉大(위대)黎明(여명)을 보았다. (우리말 聖經(성경)옛적스불논 云云(운운)옛적전번() 첫번으로 ()할 것이오 이후에榮華(영화)롭게 云云(운운)냉종번에榮華(영화)롭게로 ()하면 어떨가 한다.) 그리하야 어두운데 있어서 壓迫(압박)落望(낙망)에 시들었던 百姓(백성)에게 미디안의 凱旋(개선)과 같은 大勝利(대승리)가 올 것을 豫言(예언)하였다(9:15). ? 한 아이 理想王(이상왕)誕生(탄생)할 것인 까닭에! 計劃(계획)을 세우는 데 ()驚異(경이)할 만한 智慧(지혜), 計劃(계획)執行(집행)하는 데 ()勇士(용사)와 같은 權能(권능), 掠奪物(약탈물)分配者(분배자), 勝利(승리) ()平和王(평화왕)이실 理想(이상)王者(왕자)出生(출생)하겠기 때문에 大勝利(대승리)豫言(예언)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임마누엘誕生(탄생)()豫言(예언)과 이번 理想王(이상왕)誕生(탄생)()豫言(예언)과는 어떠한 關係(관계)가 있는 것인가?

이 아이歷史的(역사적) 人物(인물)인가 想像(상상)人物(인물)인가 하는데 ()하여서 많은 問題(문제)가 있으나 이 豫言(예언)當時(당시)歷史的(역사적) 記錄(기록)이 아닌 以上(이상) 아이當時(당시)에 있은 歷史的(역사적) 人物(인물)이 아님이 分明(분명)하다. 그런()로 여기 있는 完全形(완전형) 動詞(동사) -래드(났다-()-), 니탠(주섰다) ()過去(과거)意味(의미)하는 完了形(완료형)이 아니오 所謂(소위) 豫言的(예언적) 完了形(완료형)(Perfect of Prophecy)임에 틀림 없는 줄 안다. () 아이當時(당시)에 이미 있는 歷史的(역사적) 人物(인물)이 아니라 將次(장차) 豫言(예언) ()人物(인물)이란 말이다. 그러면 이 아이가 이() 임마누엘同一(동일) 人物(인물)인가 하는데 ()해서는 學者(학자)大多數(대다수)否便(부편)[20]으로 간다. 理由(이유)임마누엘誕生期(탄생기)는 아씨리아의 勢力(세력)이 팔네스틴에 나타남과 () 同時代(동시대)일 것이라 하였음에 不拘(불구)하고 이 理想王(이상왕)인 아이의 誕生(탄생)北王國(북왕국)이 이미 荒廢(황폐)한 얼마 ()에 있을 것이라고 한 까닭이다.

그러나 많은 學徒(학도)들은 너무나 外面(외면)에 나타난 記錄(기록)拘泥(구니)[21]하고 이사야의 本心(본심)()同情的(동정적) 統察(통찰)不足(부족)하지 않은가 한다. 豫言(예언)들에 있어서 事件(사건)發生(발생)正確(정확)時日(시일)을 말하려는 것이 ()코 이사야의 本心(본심)이 아니였던 것이다. 그의 豫言(예언)主旨(주지)임마누엘豫言(예언)에서나 이번 豫言(예언)에 있어서나 理想的(이상적) 王者(왕자)出現(출현)()信仰(신앙)으로 一貫(일관)된 것이었다.

그가 임마누엘豫言(예언)宣布(선포)() 北王國(북왕국)都城(도성)荒廢(황폐)하고 百姓(백성)은 죽엄의 그늘에서 울고 있으며 유다는 依然(의연)悖逆(패역)하고 아하즈 ()()한 대로 있었다. 이런 쓰린 情景(정경)이 이사야로 하여금 더 깊히 임마누엘屬性(속성)事業(사업)()하야 沈思(침사)[22]케 하였을 것이며, 따라서 이 有名(유명)네 이름 王者(왕자)()啓示(계시)를 받게 된 것인가 한다. () 네 이름 王者(왕자)임마누엘根本(근본) 品格(품격)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게시다에서 發展(발전)된 것으로 이 두 豫言(예언)同一(동일) 系統(계통)有機的(유기적) 展開(전개)임을 疑心(의심)하지 않는 바이다.

이사야가 아마 이 理想王(이상왕) 임마누엘出現(출현)은 스리아 이스라엘 聯合軍(연합군)侵略(침략) 事變(사변) 直後(직후)이리라고 期待(기대)하였는 줄 안다. 그러나 이것이 實現(실현)되지 않은 때 그는 理想王(이상왕)出現(출현)이란 根本信仰(근본신앙)만은 ()치 않고 다만 그 出現(출현)時期(시기)遲延(지연)된다고 믿게 됨에 따라 그 時期(시기)北王國(북왕국)滅亡(멸망) ()로 밀리게 된 줄 안다. 이런 信仰(신앙) 形便(형편)初代(초대) 敎人(교인)()에서의 예수 再臨(재림) 期待(기대)에서도 볼 수 있으며, 지금도 우리 信者(신자) ()에서 種種(종종) 이와 같은 經驗(경험)을 하는 것이다.

 

豫言(예언)成就(성취)

 

모든 豫言(예언)硏究(연구)함에는 두 가지 態度(태도)가 있다. 하나는 그 當時(당시)歷史(역사)豫言者(예언자) 自身(자신)個性(개성)背景(배경)으로 한 人間性(인간성)硏究(연구)中心點(중심점)으로 삼고 이를 ()하야 하나님의 徑輪(경륜)時代的(시대적) 한 토막을 엿보려 함이오 또 하나는 아주 하나님 便()에 서서 모든 豫言(예언)純目的論的(순목적론적)으로 硏究(연구)하는 것이다. 豫言(예언)을 참으로 理解(이해)함에는 두 가지 方面(방면)具備(구비)하여야 할 것이다. 豫言(예언)成就(성취)理解(이해)함은 ()人力(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豫言者(예언자) 自身(자신)自己(자기)豫言(예언)한 것을 참된 意味(의미)에서 理解(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오직 하나님께서 自己(자기)目的(목적)하신 대로 成就(성취)하신 다음에 그 成就(성취)로 말미암어 啓蒙(계몽)된 우리의 理性(이성)의 빛을 다시 옛날 豫言(예언)反照(반조)[23]하는 때 비로소 渙然氷釋(환연빙석)[24]()에 이르는 것이다. 이제 임마누엘」 「理想王(이상왕)誕生(탄생), 제불논[25], 납달니[26], 갈닐니[27] 地方(지방)에 비최이는 偉大(위대)黎明(여명) ()을 본 이사야 自身(자신)도 이것이 700餘年後(여년후)誕生(탄생)할 예수 그리스도에 ()豫言(예언)인 것과, 또 그로 말미암어서만 成就(성취)될 것이였음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그리스도의 人格(인격)事業(사업)接觸(접촉)()에 다시 이 例言(예언)回顧(회고)한다면, 이사야 自身(자신)馬太福音(마태복음) 記者(기자)와 함께 또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智慧(지혜)讚嘆(찬탄)하며 그리스도만이 참으로 메시아이심을 다시 한번 宣布(선포)할 것이다.


[각주]

  1. 개역개정에서는 웃시야로 표기되어 있음
  2. 거륵 - ‘거룩의 옛말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개역개정, 이사야 6:3)
  4. 狎近(압근) - 버릇없이 어른에게 바싹 다가붙음
  5.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모두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개역개정, 이사야 9:12)
  6. 시리아를 말함
  7. 디글랏 빌레셀’, 열왕기하 1519절에는 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8.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개역개정, 이사야 7:13)
  9.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개역개정, 이사야 7:14)
  10. 리브가를 말함
  11. 스가랴를 말함
  12. 히스기야를 말함
  13. 이스마엘을 말함
  14. 所以然(소이연) - 그러하게 된 까닭
  15.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개역개정, 이사야 7:8~9)
  16.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개역개정, 이사야 7:15~16)
  17.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그것들이 내는 젖이 많으므로 엉긴 젖을 먹을 것이라 그 땅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는 엉긴 젖과 꿀을 먹으리라”(개역개정, 이사야 7:21~22)
  18. 디글랏 빌레셀
  19. 對岸(대안) - 바다나 강 등의 건너편에 있는 언덕이나 기슭
  20. 否便(부편) - 여럿이 모여 토의할 때 표결에 붙인 안건에 대해 반대하는 쪽
  21. 拘泥(구니) - 어떤 일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거나 얽매임
  22. 沈思(침사) - 차분하게 곰곰이 생각함
  23. 反照(반조) - 빛이 되비치다, 반사하다, 석양
  24. 渙然氷釋(환연빙석) - 의심스럽던 것이 얼음 녹듯이 풀려 없어짐
  25. 스불론
  26. 납달리
  27. 갈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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