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4일 수요일

[낙수] 學窓餘祿(학창여록) - 뿍맨 運動(운동)과 그 批判(비판)

뿍맨 運動(운동)과 그 批判(비판)

 

신학지남171, 1935. 1.
장공김재준저작전집(5)한국신학대학출판부, 1971, 1, 62~75.
김재준전집(18)한신대학출판부, 1992, 1, 4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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緖言(서언)

輓近(만근)[1] 基督敎界(기독교계)에 있어서 世界的(세계적)으로 그 感化(감화)를 미친 問題(문제)二大(2) 運動(운동)이 있으니 하나는 獨逸(독일)中心(중심)으로 한 칼ㆍ빠-트의 神學運動(신학운동)이오 하나는 英米(영미)中心(중심)으로 한 푸랭크ㆍ뿍맨[2]所謂(소위) 옥스포-드ㆍ그룹 運動(운동)[3]이 그것이다. 世界(세계)基督敎界(기독교계)沈滯(침체)한지 오래니만치 이 運動(운동)들은 萬人(만인)期待(기대) 가운데 急速(급속)發展(발전)을 보이고 있다. -트의 神學運動(신학운동) 같은 것은 우리 朝鮮(조선) 같이 比較的(비교적) 單純(단순)하고 統制(통제)正統神學(정통신학)을 가지고 있는 敎會(교회)에서는 ()物論(물론)에 올닐 必要(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所謂(소위) 옥스포-드ㆍ그룹 運動(운동)에 있어서는 이것이 實際(실제) 信者生活(신자생활)에 새 方面(방면)展開(전개)시키는 것이니만치 捨短取長(사단취장)[4]하여서 他山(타산)()을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意味(의미)에서 그 大略(대략)輪廓(윤곽)紹介(소개)함과 同時(동시)에 그 ()發展相(발전상)을 다시 深査批判(심사비판)하여서 實際(실제) 牧會(목회)參考(참고)()코저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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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名(명명)

運動(운동)英國(영국)에서는 옥스포-드ㆍ그룹 運動(운동)이라 하고 米國(미국)에서는 뿍맨主義(주의) () 初代基督信徒友愛團(초대기독교신도우애단, First Century Christian Fellow-ship)이라 부른다. 距今(거금)[5] 百年前(백년전)에 키불[6]-[7] ()宗敎的(종교적) 巨人(거인)輩出(배출)하여 옥스포-大學(대학)中心(중심)으로 所謂(소위) 옥스포-運動(운동)[8]이란 偉大(위대)宗敎復興運動(종교부흥운동)을 이르킨 일이 있음은 우리의 익히 아는 바이다. () 百年(백년)을 지낸 오늘 宗敎(종교)靈驗(영험)이 여이고 敎會(교회)는 자못 生氣(생기)를 잃은 ()이 있어 民心(민심)은 다시 心靈(심령)飢渴(기갈)을 느끼자 自然(자연)히 저 有名(유명)宗敎運動(종교운동)發祥地(발상지)인 옥스포-드를 처다보며 그 盤石(반석)에서 샘물 솟아 흐르기를 期待(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에 마침 米國人(미국인) 뿍맨이 歷史(역사)깊은 大學(대학)에 와서 生新(생신)氣分(기분)을 가지고 學生(학생), 敎授(교수) 其他(기타) 上流社會(상류사회)人士(인사)들에게 偉大(위대)信仰的(신앙적) 感化(감화)를 끼처 그 結果(결과)로 이 運動(운동)()아푸리까 가나다 等地(등지)에까지 퍼지였기 때문에 남다른 期待(기대)를 가지고 이 大學(대학)을 처다보던 英人(영인)들은 이에 百年前(백년전)의 옥스포-運動(운동)聯想(연상)하며 이 運動(운동)을 옥스포-드 그룹 運動(운동)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運動(운동)淵源(연원)歷史的(역사적)으로 正確(정확)히 따진다면 米國人(미국인) 뿍맨이 英國(영국)의 옥스포-大學(대학)에 가서 ()을 세운 것이오 옥스포-大學(대학) 自體(자체)가 이 運動(운동) 發祥地(발상지)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이 運動(운동)옥스포-드ㆍ그룹 運動(운동)이라 이름하는이 보다는 뿍맨이즘(뿍맨主義(주의))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妥當(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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뿍맨의 宗敎經驗(종교경험)

뿍맨의 主義(주의), () 뿍맨 運動(운동)이란 것은 曾前(증전)[9]米國(미국) 펜실베니아() 루터宗派(종파) 牧師(목사)로도 있었고 또 一時(일시)基督敎靑年會(기독교청년회) 總務(총무)로도 勤務(근무)하던 푸랭크ㆍ뿍맨(Rev. Frank Buchman)이란 이의 個人的(개인적) 宗敎經驗(종교경험)()하여 誕生(탄생)하였고 또 發展(발전)한 것이니만치 우리는 爲先(위선) 푸랭크ㆍ뿍맨 自身(자신)信仰體驗(신앙체험)을 살필 必要(필요)가 있다. 뿍맨은 ()平凡(평범)한 사람으로 어느 方面(방면)으로 보던지 아주 特出(특출)하다고 할 ()은 없는 人物(인물)이다. 그는 어려서 幼兒洗禮(유아세례)를 받고 基督敎家庭(기독교가정)에서 자라나 成年(성년)()하매 ()에 따라 堅信禮(견신례)를 받은 順調(순조)롭고 平凡(평범)信仰生活(신앙생활)을 이어 왔었다. 다만 그가 敎役者(교역자) 되기로 作定(작정)하고 準備(준비)하는 동안 좀 남달니 有名(유명)敎役者(교역자) 되려는 壯圖(장도)[10]가 있었던 것만은 事實(사실)이다. 自期(자기)[11]하는 바가 크니만치 그에 ()自己(자기)不適任(부적임)痛感(통감)하며 스사로 煩悶(번민)한 적이 또한 많었던 것은 勿論(물론)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同窓(동창) ()가 그를 ()하여 利己的(이기적) 野心家(야심가)라고 公公然(공공연)하게 攻擊(공격)한 일이 있었다. 이때 그는 憤然(분연)히 이러나 내가 實生活(실생활)로서 이를 反證(반증)하여 그를 부끄럽게 하겠다 하고 그때부터 깊이 決心(결심)한 바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남들이 다 싫여버린 第一(제일) 어려운 敎會(교회)를 맡어보게 된 것이다. 그를 請聘(청빙)한 교회의 請聘書(청빙서)는 자못 奇拔(기발)한 것이여서 俸給問題一切(일절) 未定(미정)이외다하는 文句(문구)明記(명기)되여 있었다. 建物(건물)도 없는 敎會(교회)로서 獻金額(헌금액)銅錢(동전)大部分(대부분) 總額(총액) 十七弗(17) 넘는 때가 없었으니 俸給問題未定(봉급문제미정)率直(솔직)告白(고백)임에 틀님없다. 그러나 뿍맨은 平素(평소)決定(결정)대로 信仰(신앙)으로의 冒險(모험)()하여 自己(자기)非利己的(비이기적) 生活(생활)實現(실현)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意味(의미)에서 躊躇(주저)없이 이 敎會(교회)請聘(청빙)受諾(수락)하였다. 그는 아무데도 곁눈 팔지 않고 熱心(열심)을 품어 敎會(교회)를 섬기였다. 그러는 ()에 누가 自己(자기)新築(신축)한 거릿집 한 채를 敎會(교회) 建物(건물)提供(제공)하였으므로 그는 이 집을 總本營(총본영) 삼어 家庭訪問(가정방문)個人傳道(개인전도)全力(전력)을 다하였다. 貧弱(빈약)敎會(교회)는 날로 자라 얼마 ()에는 ()牧者(목자)敎會(교회)라는 稱號(칭호)를 듣는 有數(유수)大敎會(대교회)發展(발전)되었다. 그는 이에 敎會(교회)附屬事業(부속사업)擴張(확장)시켜 一種(일종)靑年寄宿舍(청년기숙사)經營(경영) 하였는데 이것이 넓히 펴저 靑年寄宿舍組合(청년기숙사조합)까지 成立(성립)되고 나중에는 純基督敎的(순기독교적) 社會舘(사회관)確立(확립)됨에 이르렀다. 그 동안 그는 이 靑年(청년)들과 同居同宿(동거동숙)期會(기회)를 많이지어 여기서 靑年(청년)壯年(장년)取扱(취급)하는 妙方(묘방)[12]을 얻었다. 그러나 이렇게 事業(사업)擴張(확장)됨에 따러 그 經營(경영)統制(통제)가 또한 複雜多端(복잡다단)하게 되였으므로 이를 ()하여 敎役者及(교역자급) 平信徒(평신도)組織(조직)委員會(위원회)가 생기게 되여 經營方法(경영방법) 一切(일절)은 왼통 委員會(위원회)의 손에 옮기여지게 되였다. 午年間(5년간) 이렇게 經營(경영)해 오는 () 한번은 豫算問題(예산문제)事業家側(실업가측)과 뿍맨과 意見(의견)相衝(상충)되여 結局(결국) 事業家側(사업가측) 委員(위원)命令(명령)絶對(절대) 順服(순복)하지 않으면 안될 形勢(형세)에 이르렀다. 뿍맨은 이 無理(무리)壓迫(압박)不肯(불긍)[13]하여 斷然(단연)辭任(사임)하고 一種(일종)怨恨(원한)을 품은 채 放浪(방랑)生活(생활)로 옮기였다. 그는 歐羅巴(구라파) 各地(각지)巡遊(순유)[14]하고 英國(영국)으로 돌아와 켙윅에 가서 一小敎會會集(일소교회회집)參席(참석)하였다. 그의 마음 가운데는 아직까지도 鬱憤(울분)怨恨(원한)이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적은 敎會(교회)에 들어가 앉아있는 동안 그는 그의 心靈(심령)一變(일변)시키는 偉大(위대)信仰(신앙)體驗(체험)을 맛보게 된 것이다. 이제 뿍맨 自身(자신)經驗談(경험담)을 그대로 紹介(소개)하려 한다. 적은 村敎會(촌교회), 午後(오후)特別(특별) 集會(집회)였다. 集會(집회)에서 이야기하는 이는 한 無名(무명)婦人(부인)! 거기에는 雄辯術(웅변술)說敎學(설교학)도 없었다. 다만 單純(단순)하고 眞摯(진지)座談式(좌담식) 이야기였으며 聽衆(청중)은 나(뿍맨)까지 넣어서 十七名(17)이었다. 婦人(부인)은 그리스도의 十字架(십자가)()하여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이때부터 알고 있던 敎理(교리), 우리 敎會(교회)가 다 믿고 나도 늘 배와 온 敎理(교리)였다. 그러나 이것이 이날 나에게 한 偉大(위대)事實(사실)()하여졌다. 나는 이 적은 敎會(교회)에 들어갈 때 分裂(분열)心理(심리), 傲慢(오만), 利己(이기), 惡意(악의)를 가득 품고 있었었다. 말하자면 基督敎(기독교) 敎職者(교직자)로서의 資格喪失者(자격상실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날 이 婦人(부인)單純(단순)談話(담화)는 나에게 十字架(십자가)事實(사실)로 나타내 보였다. 나는 忽然(홀연)十字架(십자가)에 못박힌 이의 痛烈(통렬)心魂(심혼)에 그대로 부다치는 幻像(환상)을 보았다. 처다보는 ()의 낯에는 無限(무한)苦痛(고통)이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큰 深淵(심연)()와 나 自身(자신)과의 사이에 가로 막혀 있음을 깨다랐다. 幻像(환상)은 그 뿐이였다. 그러나 이때 나는 心神(심신)一種(일종)震動(진동)을 느끼였으며 强烈(강렬)生命(생명)波濤(파도)突然(돌연)히 내 머리에 뒤덮이는 것 같았으며 얼마 ()에는 眩惑的(현혹적)偉大(위대)靈的(영적) 振興感(진흥감)全身(전신)充滿(충만)하였다. 인저는 意志分裂(의지분열)(), 打算(타산)[15], 論爭(논쟁)(), 抑鬱無情(억울무정)()雲散霧消(운산무소)[16]되고 마렀다. 瞬間(순간) 나에게는 全部(전부)를 받들어 들이랴는 決心(결심)과 함께 强烈(강렬)感情(감정)의 물결이 지금껏 隔離(격리)되였던 靈的(영적) 生命(생명)의 바다로부터 내 마음 가운데로 波濤(파도)처 들어옴을 느끼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 있는 間隙(간극)을 채와 그 結果(결과)로 새 힘이 넘치는 새 生活(생활)을 맛보게 되였으므로 나는 이 經驗(경험)을 어서 ()히 다른 이들에게 난화주구싶다는 慾望(욕망)에 불타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곧 이때껏 내가 惡意(악의)를 품고 있던 米國(미국)委員(위원) 六人(6)에게 편지로 이 經驗(경험)을 알리는 同時(동시)十字架(십자가) 아래에 선 나는 내 () 밖에 다른 것 생각할 수 없음을 告白(고백)하였다. 편지마다 榮光(영광)()十字架(십자가)를 보면은云云(운운)의 아이작ㆍ왓즈의 詩句(시구)를 쓰고 그 아래다가 나는 當身(당신)께 대하여 惡意(악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지금 나는 悔改(회개)합니다. 容赦(용사)[17]해 주십시오. 그만 끄칩니다. () () () 푸랭크 敬具(경구)[18]라 하였다. 이 편지에 ()하여 아무에게도 回答(회답)은 안왔었다. 그러나 ()에 알아본 바에 ()하면 그들은 이 편지를 읽고 많은 感銘(감명)을 받었다고 한다. ()에 나는 米國(미국)에 돌아와서 聖誕節(성탄절) 때에 길가에서 생각잖은 ()에 그때 나를 第一(제일) 못견디게 굴던 번대머리 委員(위원)을 만났다. 나는 반갑게 가장 自然(자연)스럽게 메리 크리쓰마쓰하고 人事(인사)하였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한참이나 땅에서 무슨 떨어트린 것이나 찾는 양을 하더니 반갑게 人事(인사)를 하고 내 마음 가운데에 조곰도 꾸부러진 생각이 없음을 事實(사실)로 알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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뿍맨 運動(운동)發展(발전)

뿍맨은 나이보다는 퍽 젊어 보이는 中年(중년)快男兒(쾌남아)로 키는 훨씬 크면서도 묵에있어 보이는 人物(인물)이다. 머리는 언제나 맑음하게 깎고 말숙하게 면도하고 眼鏡(안경) 쓰고 衣服凡節(의복범절)도 틔하나 붙지 않게 한 淸爽快活(청상쾌활)[19]現代的(현대적) 米國人(미국인)風貌(풍모)를 그대로 나타내는 사람이다. 언제나 快活(쾌활)하여 陰鬱(음울)氣分(기분)이 없으며 말소리는 낮으나 힘있고 ()俗語(속어)를 섞어 말할 때에 友情(우정)喜悅(희열)에 넘침을 느끼게 한다. 그는 自己(자기)經驗(경험)을 난호려는 熱情(열정)을 품고 靈導(영도)를 받는대로 사람들에게 體驗談(체험담)을 이야기 하였는데 거기에 큰 感化(감화)가 있어 듣는 사람마다 새 마음을 가지게 되였었다. 聖靈(성령)自己(자기)()하여 막힘없이 役事(역사)하심을 깨달은 그는 곧 이에 使命(사명)을 느끼고 일하러 나섰다. 1915년으로 1919년까지에 그는 印度(인도)極東(극동)으로 巡廻(순회)하면서 이 證言運動(증언운동)()하여 成果(성과)를 얻고 또 이 運動(운동)諸方式(제방식)組織的(조직적)으로 硏究陳述(연구진술)하였다. 1920()1921()英國(영국) 켐부릿지와 옥쓰포-() 大學(대학)에서 經驗(경험)을 난호는 運動(운동)()하였다. 이제 當時(당시) -中學(중학) 敎師(교사)로 있던 (지금은 蘇格蘭(소격란)[20]의 그룹 運動(운동) 指導者(지도자)) 하밀톤 ()參觀實話(참관실화)紹介(소개)하려 한다. 우리는 二週日(2주일)에 한번씩 開催(개최)하는 哲學集會(철학집회)에 이 켐부릿지에 온 米國(미국) 敎授(교수)招待(초대)하였다. 우리는 처음은 몹시 窮塞(궁색)氣分(기분)에 눌리여짐을 느끼였다. 哲學討論(철학토론)이니 만치 다들 몹시 꼬장꼬장한 낯으로 理論(이론)캐기에 눈을 붉히고 있었다. 十一時(11)가 되였다. 푸랭크는 그때까지 아무말 없이 앉아있었다. 그때 座中(좌중)은 프랭크에게 一座(일좌)談話(담화)()하였다. 聽衆(청중) () 九十(90)퍼센트는 豫備將校(예비장교)로 잇는 學生(학생)이오 最高官(최고관)少佐(소좌)였다. 二十一(21), 二歲(2)勇士(용사)로서 다들 有能(유능)()였다. ()에는 競技(경기), 短艇(단정)[21] 選手(선수)大學(대학)牛耳(우이)[22]를 잡고 있는 ()도 몇 사람 있었다. 主日(주일)敎會(교회)出席(출석)하는 이는 極少數(극소수), 거의 없다고 해도 過言(과언)이 아닐만치 少數(소수)였다. 이 군들은 푹은한 팔 椅子(의자)에 푹석 들어 앉어서 卷煙(권연)[23]의 보드러운 煙氣(연기)室內(실내)空氣(공기)香氣(향기)롭게 하며 上級人(상급인)으로서의 점잔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푸랭크가 입을 열때 空氣(공기)一變(일변)하였다. 그는 우리가 여태껏 論議(논의)하던 理論(이론)의 실마리를 자아내여[24] 이곳저곳 ()의를 놓으면서 變化(변화)生活(생활)로 들어간 사람들의 事實談(사실담)을 이야기 하였다. 그 이야기는 抽象的(추상적) 神學的(신학적)인 것이 아니요 우리와 꼭 같은 人生(인생)들의 實際(실제) 變化(변화)한데 ()事實談(사실담)이기 때문에 우리의 興味(흥미)는 곧 이에 쏠리게 되였다. 그가 萬一(만일) 說敎(설교)向上的(향상적) 警告(경고)煩瑣(번쇄)[25]哲學論(철학론)이나를 말했다면 우리는 다들 鼻笑(비소)[26]하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이런 座席(좌석)에서 이런 이야기는 期待(기대) 以外(이외)의 새것, 적어도 新鮮(신선)한 것이었다. 座中(좌중)哲學理論(철학이론) 같은 것은 다 이저버렸다. 돌아올 때 우리는 默默(묵묵)한 가운데 各其(각기) 自己(자기)를 살피어 그 사람 너 어떻게 생각하니?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거기 疑問符(의문부)를 부처두고 거저 버리기에는 너무나 깊은 感銘(감명)을 받었다. () 第一(제일) 默重(묵중)[27]親舊(친구)가 푸랭크를 朝飯(조반)()하자고 하여 그대로 하였다. 우리는 그가 ()靈魂(성혼)은 지금 어떤 形便(형편)에 있습니까?하고 常套的(상투적) 牧師(목사) 냄새를 피우나 하고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그런 말도 안하고 不自然(부자연)스러운 言行(언행)은 조금도 찾지 못하였다. 그는 어떤 未亡人(미망인)의 이야기를 하였다. 未亡人(미망인)이 그에게 ()하여 下女(하녀)가 물건 훔쳐가는 건 어떻게 處置(처치)하면 좋습니까?하고 물었었는데 그의 對答(대답)당신 最近(최근)盜賊(도적)질 하기는 언제였읍니까?하는 것이였다는 이야기. 우리는 異常(이상)하게 各者(각자)()에 눈뜨게 되였다. 이때 켐부릿지에는 벌써 세 사람이 改心者(개심자)가 있었다. 푸랭크는 이 세 사람을 옥쓰포-드로 데려가다가 우리와 함께 週末(주말)을 지내게 하였다. 이 세 학생은 自己(자기)네의 새로운 心境(심경)을 조금도 꾸미는 것 없이 人情(인정)답고도 自然(자연)스럽게 이야기해 주었다. ()에 한 사람은 럭비 選手(선수)였는데 그는 옥쓰포-드의 學生(학생)들과 어깨를 겼고 네모난 運動場(운동장) 周圍(주위)散策(산책)하며 이야기하였다. 그는 우리가 二年(2) 동안이나 애써서 成就(성취)友誼(우의) 以上(이상)親愛(친애)理解(이해)를 며칠 동안에 이 옥쓰포-學生(학생)들과 난호게 되였다. 그들이 다녀간 ()부터 옥쓰포-드에서는 몇 사람씩 한 덩어리 되여 運動場(운동장)을 이리저리 거니며 이 이야기만 論議(논의)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인저 議論(의론)[28]에 끄치고 말지는 않었다. 無神論者(무신론자), 不可知論者(불가지론자)들의 數人(수인)이 아주 변해버렸다. 이때부터 大學全體(대학전체)에는 一種(일종) 異常(이상)期待(기대)瀰漫(미만)[29]하게 되였다. 云云(운운) 이렇게 風滿樓(풍만루)()으로 靈的(영적) 飽和狀態(포화상태)()한 이 大學(대학)에서는 이때부터 生活改變者(생활개변자)續出(속출)하며 이 學生(학생)들이 各其(각기) 흩어저 가는 곳마다 이 運動(운동)이 일어나서 數年來(수년내) 全世界的(전세계적)으로 問題(문제)된 것이다. 오늘 全世界(전세계) 大都市(대도시)치고서 이 運動(운동)多少(다소) 感化(감화)를 주지 않은 데가 없지마는 ()成功(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데는 南阿(남아)인데 1928()에 옥쓰포-드에서 拳鬪(권투) 主將(주장)으로 있던 學生(학생)同志(동지) 七人(7)과 더부러[30] 小團體(소단체)組織(조직)하여 가지고 主要(주요) 都市(도시)訪問(방문)한데서 이 運動(운동)感觸(감촉)을 보게 된 것이다. () 運動(운동)이 크게 發展(발전)되여서 그 結果(결과)人種差別(인종차별)第一(제일) 苛酷(가혹)南阿(남아)에서도 百餘(백여)英人(영인), 阿人(아인), 印度人(인도인), 和蘭人(화란인) ()一齊(일제) 起立(기립)하여 ()안에서 아무 差別愚劣(차별우열)이 없음을 宣言(선언)하고 絶對友愛(절대우애)宣誓(선서)하는 ()劇的(극적) 場面(장면)까지 보게 되였다. 캐나다에는 1932() 10() 21()에 몬트럴에 上陸(상륙)한 그룹의 一團(일단)으로 말미암어 이 運動(운동)始作(시작)되였다. 그 때의 團員(단원)들은 그야말로 齊齊(제제)[31] 名士(명사)여서 푸랭크ㆍ뿍맨을 비롯하여 월터 윈함 (, Sir Walter Winpham) 뜨루리로- 陸軍中將(육군중장, Vice general Drury Lowe) () 南阿長老敎會(남아장로교회) 總會長(총회장) 맥밀렌 牧師夫妻(목사 부처, Rev. E. Macmillan and Mrs. Macmillan) 실레시아의 본크래몬 (, Frank von Cramon) () 에딘바라의 共産主義(공산주의) 指導者(지도자) 쩨임스ㆍ와트 (, Mr. James Watt) 和蘭(화란)의 본 헥케렌 男爵夫人(남작부인, Baroness Lillan von Heeckeren) ()과 옥스포-드의 男女靑年(남녀청년) 多數(다수)米國(미국)男女(남녀) () () , 五十名(4, 50)多數(다수)였다. 이때에는 벌써 이 運動(운동)이 어느 한 구석에서 되는 일이 아니오 전 世界的(전세계적)으로 큰 衝動(충동)을 준 때 이므로 가나다 總督(총독) 以下(이하) 各新聞社(각신문사) 社會及(회사급) 敎會團體(교회단체)에서 盛大(성대)歡迎(환영)을 하였으며 많은 生活改變者(생활개변자)를 내였서 어떤 出版業者(출판업자)二十五年間(25년간) 關稅脫稅額(관세탈세액) 一萬二千弗(22천불)政府(정부)自白(자백) 納付(납부)한 일 其他(기타) 이 비슷한 일이 많이 수태 생기는 逸話(일화)를 남기게 되었다. 토론토日報(일보)(Toronto Daily Mail)記事(기사)三百餘名(3백여명)敎役者(교역자), 十數名(수십명)國會議員(국회의원), 二十餘名(20여명)第一類(제일류) 財界名士(재계명사)를 비롯하여 數千(수천)의 토론토 市民(시민)當然(당연) 킹 에드와-호텔 上層集會室(상층집회실)雲集(운집)하였다. 터처 놓을 수 있는 隣室(린실)[32]은 다 헤쳤으나 곧 立錐(입추)餘地(여지)가 없게 되고 길 건너便(), 센트 쩨임스 敎堂(교당)을 열어 거기에도 瞬息間(순식간)()어구까지 차고 넘치였다. 그리하여 未曾有(미증유)大會衆(대회중)이 모여서 세()에 난호인 그룹()들의 새 生活(생활) 찾은 單純(단순)한 이야기를 傾聽(경청)하였다. 云云(운운)한 것을 보면 그 盛況(성황)이였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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뿍맨 運動(운동)內容(내용)

저들은 神學(신학)()하지 않으며 理論(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오직 生活(생활)로 하여금 모든 것을 辨證(변증)하게 한다. 그러므로 뿍맨 運動(운동)正當(정당)하게 理解(이해)함에는 무엇보다도 그네들의 生活(생활)을 살필 수 밖에 他途(타도)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뿍맨主義(주의) 團圓(단원)들은 어떤 規範(규범) ()에서 어떤 方式(방식)生活(생활)을 하는가. 저들은 事事件件(사사건건)初代敎會(초대교회)模倣(모방)하므로 그 理想(이상)을 삼는다. 저들은 爲先(위선) 하나님의 뜻에 絶對服從(절대복종)하겠다는 態度(태도)로 그 生活(생활)始作(시작)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첫째로는 성경에 씨여있는 敎訓(교훈)과 우리의 生活相(생활상)對照(대조)해 봄으로 ()하여 우리 生活(생활)指導(지도)하시는 하나님의 大體(대체)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나 現代(현대)複雜多端(복잡다단)生活(생활)에 있어서는 不期(부기)[33]事變(사변), 善惡(선악) 어느 것이라고도 미리 斷定(단정)할 수 없는 일, 우리의 理性(이성)으로서 判斷(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事件(사건)無數(무수)이 닥쳐오는 것이다. 이런 때에는 不得已(부득이) 하나님의 特別(특별)하신 黙示(묵시)를 기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初代敎會(초대교회)에 있어서 빌립이 曠野(광야)에 나아가 구스 女王(여왕)宦官(환관)을 만난 것이라던지 바울이 아시아 ()로 가지 못하고 마게도니아로 가게된 것 같은 것이 다 特別黙示(특별묵시)()한 것이다. 特別黙示(특별묵시)는 지금에 있어서도 하나님 앞에 自己(자기)를 아주 내여놓고 그에게 絶對(절대) 服從(복종)하려는 態度(태도)를 가진 信者(신자)에게는 조금도 例外(예외)없이 나타난다. 이것이 뿍맨團員(단원)들의 信仰(신앙)이오 또 體驗(체험)이다. 이리하여 저들은 每日(매일) 아침 또는 무슨 必要(필요)事件(사건)이 있을 때마다 靜思(정사)[34]時間(시간)(Quiet hour)을 가진다. 저들은 聖經(성경)을 읽고 祈禱(기도)하고 手帖(수첩)鉛筆(연필)을 들고서 靈導(영도)(Guidance)를 기다린다. 오늘 누구를 찾어볼 것인가? 무슨 일할 것인가? 이 일은 어떻게 判斷(판단)할 것인가? ()()하여 靈導(영도)를 기대려 받는대로 手帖(수첩)記錄(기록)해 가지고 곧 實行(실행)한다. 그러나 다만 이런 것 만에 置重(집중)한다면 結局(결국) 異敎的(이교적) 神秘主義(신비주의)()을 밟음에 지나지 못할 것이므로 저들은 論理的(윤리적) 要素(요소)高調(고조)하여 네 가지 倫理的(윤리적) 標準(표준)을 세워 가지고 自己(자기)良心(양심)點檢(점검)한다. 이 네 가지 標準(표준)이란 것은 所謂(소위) 四絶對(4절대)라는 것으로 絶對正直(절대정직)(Absolute Earnesty) 絶對純潔(절대순결)(Absolute Purity) 絶對非利己(절대비이기)(Absolute Unselfishness) 絶對愛(절대애)(Absolute Love)가 그것이다. () 言思行(언사행)至極純眞(지극순진)하여 꿈임과 거짓이 없게 하며 性的關係(성적관계)金錢關係(금전관계)에 있어서 純潔無垢(순결무구)하게 하며 무슨 事業(사업)에 나설 때나 運動(운동)할 때 利己的(이기적) 野望(야망)을 가지고 하지 말며 모든 사람, 自己(자기)의 원수까지라도 씻은 듯이 容恕(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자는 것이다. [以上(이상) 뿍맨의 宗敎經驗(종교경험) 參照(참조)]

그러면 이 標準(표준)에 비추어 보아 거리낌이 있으면 어찌할까? 이에 우리는 ()直面(직면)하게 된다. 都會(도회)(), 異敎徒間(이교도간)(), 基督敎徒間(기독교도간)(), 銀行(은행), 會社(사회), 工場(공장), 家庭(가정), 敎壇(교단), 大學(대학), 神學校(신학교), 가는 곳마다 ()는 그 魔手(마수)를 벌려 움켜잡고 있다. ()至極狡猾(지극교활)하여 생각지 못한 틈으로 새여 들어 온다. 說敎家(설교가)는 이를 攻擊(공격)하면서 自己(자기)는 이를 征服(정복)하지 못함이 (). 異敎徒(이교도)享樂(향락)의 잔과 함께 ()를 마신다. 크리스챤은 이를 보고 苦笑(고소)[35]하며 公公然(공공연)하게 叱責(질책)하는 것이 (). ()()하여 賢明(현명)忠告(충고)를 줄 수 있는 이는 ()히 드물다. 이를 征服(정복)하는 이 方略(방략)[36]을 보여주는 이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寥寥(요요)[37]하다. ()! ()에서 解放(해방)되는 程度(정도)解放(해방)되려는 慾求(욕구)正比例(정비례)한다. 하나님을 思慕(사모)하는 생각이 ()하기 때문에 ()暴君(폭군)을 모셔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萬一(만일) 全心靈(전심령)을 받들어 正義(정의)渴望(갈망)한다면 ()忽然(홀연)히 그 자취를 감출 것이다하고 프랭크는 말하였다. 그리하여 프랭크는 ()를 미워하라」 「()를 버리라하고 忠告(충고)한다. ()에서 이 運動團圓(운동단원)들이 ()重要視(중요시)하여 힘써 實行(실행)하는 것은 公席(공석)에서 ()告白(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을 實行(실행)함에는 莫大(막대)勇氣(용기)()한다. 그러나 實行(실행)만 하면 ()를 이기는 데에 가장 큰 效果(효과)를 나타낸다. 爲先(위선) ()를 다시는 짓지 않으려는 決心(결심)念頭(염두)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 그것은 ()를 또 다시 짓는다면 또 다시 그 不愉快(불유쾌)告白(고백)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을 두려워 함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他人(타인)警告(경고)하는 것이 된다. 셋째로는 良心(양심)解放(해방)을 받고 淸潔(청결)해짐을 느끼며 平和(평화)喜悅(희열)을 맛보게 된다. 勿論(물론) 罪自體(죄자체)는 그리스도의 十字架(십자가)()하여 淨潔(정결)함을 얻은 것이지마는. 이런 信仰(신앙)우에서 저들은 日常生活(일상생활) () ()()한 때에는 하나님 앞에 悔改(회개)할 뿐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自白(자백)하고야 마음 놓는다. ()自白(자백)할 뿐 아니라 自己(자기)罪過(죄과)로 말미아마 ()받은 相對方(상대방)()하여 그 罪過(죄과)賠償(배상)해야 할 것을 主張(주장)한다. ()容恕(용서)함은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이나 損害(손해)賠償(배상)하는 것은 悔改(회개)()義務(의무). 悔改(회개)稅吏(세리) 사캐오가 토색한 것이 있으면 四倍(4)로 하여 갑겠나이다 한 것이라던지 남에게 罪犯(죄범)한 것이 있으면 그 物件(물건) 代價(대가)五分之一(오분지일)을 더 ()하여 그에게 주어 賠償(배상)하라 한 民數記(민수기) 56, 7, 規例(규례)라던지가 다 이를 가르침이다. 이에 ()하여 프랭크는 自己(자기)의 쓰린, 그러나 기쁜 經驗(경험)을 이야기 한 것이 있다. 中國(중국)에서도 가장 景勝(경승)[38]()揚子江岸(양자강안) 어느 谿谷(계곡)() 中國(중국) 外交官(외교관)의 집에서 열닌 宗敎的(종교적) 家庭集會(가정집회)列席(열석)[39]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이 景勝(경승)()의서 靈肉(영육) 아울러 喜悅(희열)平和(평화)에 잠겨서 이틀을 지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나는 ()不愉快(불유쾌)해지며 辨償(변상)」 「辨償(변상)」 「辨償(변상)하는 생각이 소용도리 치고 있었다. 암만 이 생각을 물니치려고 애써도 漸漸(점점) 더해지며 아주 못견디게 되였다. 事件(사건)() 鐵道會社(철도회사)割引券(할인권) 使用(사용)()한 것이었는데 나는 不正當(부정당)하게 特權(특권)獲得(획득) 使用(사용)한 것이였다. 金額(금액)을 따져가지고 辨償(변상)하려 하였으나 그 會社(회사)副總裁(부총재)하고는 여러번 會食(회식)까지 하고 또 尊敬(존경)받는 處地(처지)인데 그가 이것을 알면 내 面目(면목)이 무어란 말인가. 차라리 匿名(익명)의 편지와 함께 돈을 보내지 하고 편지쓰기 始作(시작)하였다. 그러나 편지 써보았자 조곰도 良心(양심)滿足(만족)이 없었다. 에라 할수 없다. 하고 赤裸裸(적나라)하게 告白(고백)의 편지를 써서 내 이름을 똑똑하게 署名(서명)한 다음에 小切手(소절수)[40]와 함께 부치고야 마음이 편안하였다. 이제 이것을 이 中國(중국) 外交官(외교관)과 및 面目(면목)生命(생명)으로 아는 모든 中國(중국) 紳士(신사)들 앞에서 所謂(소위) 靈的(영적) 指導者(지도자)推仰(추앙)을 받는 내가 참아 告白(고백)할 수가 있나! 하고 얼마 躊躇(주저)하다가 ()命令(명령)인지라 結局(결국) 大勇氣(대용기)를 내여 이것을 그들 앞에 告白(고백)하였다. 告白(고백)은 그 座中(좌중)異樣(이양)[41]感化(감화)를 일으켰다. ()으로 療養(요양)왔던 () 中國人(중국인)自己(자기)預金(예금) 全部(전부)를 털어내여 ()不當取得(부당취득)한 것을 淸算(청산)하고 悔改(회개)實蹟(실적)을 나타내였다. 中國(중국)에 와서 敎鞭(교편)잡고 있는 () 瑞典婦人(서전부인)[42]本國(본국)에서 僞證事件(위증사건)으로 말매암어 避身(피신)하여 이리 왔었는데 이때에 그 關係(관계)全部(전부) 바로잡고 새 生活(생활)노 옴기였다. ()에도 이런 實例(실례)數三(수삼)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云云(운운) 이런 經驗(경험)으로 보아 賠償(배상)實行(실행)至大(지대)壓力(압력)을 가지고 自己(자기)와 다른 이를 그리스도에게로 밀어가는 것임을 疑心(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經路(경로)를 밟어 저들은 ()生活(생활)에서 떠나 새 生命(생명)躍動(약동)을 느끼는 새 生活(생활)노 들어간다. 이것을 저들은 改變(개변)生活(생활)(Changed Life)이라고 부른다. 改變(개변)生活(생활)() 新生(신생)體驗(체험)한 사람은 혼자서만 즐길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이 事實(사실)을 난화줄 義務(의무)가 있다. 이것을 分給(분급)(Sharing)[43]이라 한다. 이것은 恩惠(은혜)받은 것은 간증하는 것이니 이 團員(단원)事業(사업)의 가장 重要(중요)部分(부분)이다. 저들은 몇 사람() 小旅行團(소여행단)組織(조직)해 가지고 聖靈(성령)引導(인도)하는 대로 이리 저리 이 나라 저 나라 一所不住(일소불주)巡禮者(순례자) 生活(생활)을 하며 가는 곳마다 私的(사적) 談話(담화) 家庭集會(가정집회)(House Party)를 연다. 사람들은 ()한 동무의 집에 이야기 하러 모혀오는 氣分(기분)으로 所定(소정)의 호텔이나 私家(사가)에 모혀온다. 그러면 거긔서는 무슨 順序(순서)를 짜가지고 ()대로 莊重(장중)하게 儀式的(의식적) 禮拜(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거저[44] 通商(통상) 때와 같이 談笑(담소) 話樂(화락)하며 團員中(단원중) 누구나 조용히 靜思(정사)時間(시간)()하여 靈導(영도)를 받는대로 自己(자기)經驗談(경험담) 또는 다른 同志(동지)改變(개변)生活(생활)事實(사실) 그대로 이야기한다. 이어서 두서너 사람이 各其(각기) 같은 方式(방식)實驗談(실험담)을 이야기하고 무슨 묻는 것이 있으면 아주 純直率直(순직솔직)하게 友情(우정)을 가지고 彼此應答(피차응답), 거긔에는 雄辯術(웅변술)訓練(훈련)說敎(설교)도 없고 秋毫之末(추호지말)[45]을 갈라내는 理論(이론)도 없다. 거저 터쳐놓고 座談(좌담)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自然(자연)異常(이상)感化力(감화력)이 있어 參與(참여)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대로 黙過(묵과)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그들의 經驗(경험)난호는方式(방식)이며 이 일을 ()하여 聖神(성신)은 많은 사람의 生活(생활)改變(개변)하는 까닭에 저들은 이런 團員(단원)들을 生活改變者(생활개변자)(Life Changer)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複雜(복잡)社會(사회)에 있어서 다만 個人(개인) 個人(개인)生活(생활)() 社會道德(사회도덕)順應(순응)하도록 改變(개변)하므로 ()하여 ()全的(전적)으로 새 世紀(세기)齎來(재래)[46]할 수 있을가 또는 以上(이상)에 말한바 四絶對(4절대)라는 倫理的(윤리적) 標準(표준)社會制度(사회제도)全的(전적)으로 改善(개선)하기 ()에는 實行(실행) 不可能(불가능)이 아닌가? 하는 疑問(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저들의 社會生活(사회생활) 規範(규범)은 무엇인가? 저들은 獨特(독특)社會學(사회학)이나 社會的(사회적) 計劃(계획)을 세운 것이 없다. 저들의 말에 ()한다면 繁榮(번영)人生最高(인생최고)價値(가치)라고 생각한다거나 ()例外(예외)없이 道德的(도덕적)이오 ()必然的(필연적)으로 ()이란다거나 하는 現代(현대)二大(2) 潮流(조류)는 둘다 基督敎的(기독교적)이 아니다. 福音(복음)에 가르친 것은 簡單(간단) 明瞭(명료)하여 오낄데가[47] 없다. () -物件(물건)은 왼통 다 하나님께 ()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聖慮(성려)[48] 聖旨(성지)[49]()하여 하나님의 財産(재산)을 오직 그 나라와 ()()하여 賢明(현명)處理(처리)할 것이다. 이것은 理論(이론)으로서는 아모 새맛이 없는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實踐(실천)하는 데서 生命(생명)이 넘치는 새 맛이 난다. 우리가 다 自己(자기)의 있는 자리에서 聖旨(성지)()받아 이것을 實踐(실천)한다면 지금까지의 煩瑣(번쇄)[50]社會學的(사회학적) 理論(이론) 社會的(사회적) 計劃(계획)은 말없이 成就(성취)하고 말 것이라 한다. 그러고 이 團員(단원)들은 事業(사업)을 할 때 돈 때문에 사람에게 몬저[51] 가서 ()드는 일을 하지 않는다. 手中(수중)一分錢(일분전) 없을 때에도 信仰(신앙)祈禱(기도)로 이 일을 冒險(모험)한다. 저들은 이 冒險(모험)을 해서 ()께 버림받은 일이 없노라고 늘 證據(증거)한다. 團員(단원)들은 또한 境遇(경우)에 따라 生活費(생활비)를 서로 分擔(분담)한다. 靈驗(영험)을 난호는 때와 같은 心念(심념)으로 生活費(생활비)도 난호아 진다. 저들은 自己(자기)네가 一大(일대) 靈的(영적) 家族(가족)()한 것을 늘 意識(의식)하고 한 사람이 괴로우면 全體(전체)가 괴로움을 如實(여실)히 느끼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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뿍맨 運動(운동)()批判(비판)

나는 以上(이상)에서 가장 同情(동정)있는 態度(태도)로 뿍맨 運動(운동)全貌(전모)紹介(소개)한 줄 믿는다. 그러나 이 運動(운동)批判(비판)餘地(여지) 없으리만치 完全無缺(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1) 우선 저들은 너무 方法論(방법론)에 치우친 ()이 있다. 저들의 重要團員中(중요단원중) ()의 말이 方法(방법)使命(사명)이요 使命(사명)方法(방법)이다라고 斷言(단언)하였다. 그리하여 저들의 ()하는 方法(방법)이 아니고는 하나님께서 그 役事(역사)를 하시지 못할 것 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各人各色(각인각색)으로 사람은 個性(개성)이 다르다. 그러므로 ()께로 나아오는 길도 千千萬(천천만) 갈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큰 機械(기계)를 가지고 多量生産(다량생산)을 하시는 이가 아니다. 우리는 다 그의 手工品(수공품)이다. 어떤 사람은 뿍맨이 닦은 길로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엣 길노도 올 수 있고 새 길로 혼자 허덕이며 올 수도 있는 것이다. 2) 너무 主觀的(주관적)이다. 저들의 所謂(소위) 靈導(영도)라는 것은 勿論(물론) 可能(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靈導(영도)()께서 特別(특별)重大(중대)使命(사명)을 나리우실 때에 나타내시는 것이오 日常生活(일상생활)細細(세세)한 일은 우리의 智慧(지혜)에 맡기시는 것이다. 우리의 智慧(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우리 智慧(지혜)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코 하나님께서 干涉(간섭)하시지 않으실 줄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智慧(지혜)聖別(성별)하여 ()께 밭이고 그 最善(최선)을 다하도록 努力(노력)할 것이다. 그러다가 아모리[52] 하여도 智慧(지혜)가 및이지 않는 境遇(경우)에는 하나님의 黙示(묵시)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줄 안다. 그런데 이 그릅 사람들은 勿論(물론) 이런 信念(신념)에서 出發(출발)은 했을 것이나 事實(사실)에 있어서 너무 主觀(주관)으로 흘너간다. 스노-(James H. Snowden) 博士(박사)의 글에 보면 푸랭크는 郵票(우표) 한 장을 사도 靈導(영도)를 기다려서 산다고 했으니 이것이 () 酷評(혹평)일는지 모르나 그들의 所謂(소위) 靈導(영도)에는 이런 種類(종류)의 것이 大部分(대부분)이다. 牧師(목사)每日(매일) 아침 오늘은 누구누구의 집을 訪問(방문)하오리까?하고 하나님께 엿주어 靈導(영도)를 얻은 다음에 訪問(방문)하고 누구에게 가서는 무슨 말 하오리까? 하고 靈導(영도)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主觀的(주관적)이며 그 所謂(소위) 靈導(영도)라는 것은 自己(자기) 投影(투영)誤認(오인)이 되여 結局(결국)은 하나님의 거륵한 交際(교제)冒瀆(모독)하는데 이르기 쉬운 것이다. 勿論(물론) 團員(단원)多部分(다부분)上類階級(상류계급)名士(명사)들이니만치 理智(이지)가 이미 높은 程度(정도)發達(발달)되였으니까 이런 危險(위험)에서 ()할 수도 있을 것이나 無智(무지)庶民(서민)에게는 至極危險(지극위험)方法(방법)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3) 信仰的(신앙적) 道德的(도덕적) 驕慢(교만)에 빠지기 쉽다. 正直(정직), 純潔(순결), 非利己(비이기), ()四絶對(4절대)를 그 道德的(도덕적) 標準(표준)으로 세우는 것과 그것을 참으로 所有(소유)하는 것과는 딴 問題(문제)이다. 그런데 저들은 이것을 저들이 이미 所有(소유)한 것 같이 생각하여 無意識中(무의식중)自慢(자만)에 빠진다. 現今(현금)에 가나다에서는 겨우 聯合(연합)敎會(교회)가 이 그룹 運動(운동)으로 말미암아 內的(내적) 分裂(분열)이 생겨서 적잔은 頭痛(두통)을 느끼고 있다 한다. 自己(자기)네 그룹에 들지 않으면 牧師(목사)長老(장로)고 할 것 없이 다 非基督敎人(비기독교인)같이 생각하며 排擊(배격)하는 ()不少(불소)[53]하며 信仰的(신앙적) 驕慢(교만)에 빠지는 ()가 많다 한다. 그러므로 윌손 敎授(교수)(Douglas J. Wilson)四絶對(4절대)만으로 不足(부족)하니 또 한가지 絶對(절대) () 絶對謙卑(절대겸비)(Absolute Humility)를 더하여야 하겠다고 까지 말하였다. 4) 神學(신학)度外視(도외시) 함은 不健全(불건전)하다 - 저들은 敎會生長(교회생장)歷史(역사)를 잘못 認識(인식)하였다. 저들은 初代敎會(초대교회)와 웨슬레 復興時代(부흥시대)敎會(교회)만을 眼中(안중)에 두고 다른 時代(시대)敎會史(교회사)無視(무시)한다. 그러나 初代敎會(초대교회)潑潑(발발)生命(생명)第二(2), 三世紀(3세기)輩出(배출)卓越(탁월)神學者(신학자)들이 理論的(이론적)으로 整頓(정돈)하고 擁護(옹호)하지 않았던들 그 生命(생명)()히 자리잡힌 바를 물뭀을[54] 따라 흘렀을는지가 疑問(의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던지 全的(전적)으로 公平(공평)하게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神學(신학)理論(이론)으로 사람을 救援(구원)하지 않는다한 저들의 말은 치우친 말이다. 神學(신학)은 언제나 運動(운동)脊髓(척수)여서 生命(생명)이 없는 것 같으나 굳게 뻐처 全身(전신)()탕하는 役割(역할)을 하는 것이다. 感情(감정)만을 主唱(주창)하면 無骨虫(무골충)이 되기 쉽고 無批判的(무비판적) 神秘主義(신비주의)에 흐르기도 쉬운 것이다. ()自己(자기)經驗(경험)置重(치중)하는 運動(운동)確乎(확호)神學體系(신학체계)를 가진 ()에게서만 그 健全(건전) 堅實(견실)效果(효과)期待(기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神學校(신학교) 敎授(교수) 밴ㆍ틸(Van Til) 博士(박사)가 아홉가지 論點(논점)을 들어 餘地(여지)없이 이 運動(운동)排擊(배격)한 것도 그 主要點(주요점)이 여기 있다. 5) 公衆(공중) 앞에서 ()告白(고백)하는 것은 ()히 삼갈 일이다. 이것은 어떤 때에는 ()을 세우는 도움이 되나 흔히는 敎會(교회)에 큰 弊害(폐해)를 끼치는 것이다. 敎會史(교회사)에 나타난 經驗(경험)으로 볼지라도 初代敎會(초대교회)에서 이 方式(방식)을 썼었으나 차츰 建德(건덕)보다도 ()끼치는 일이 많으므로 主後(주후) 450() 法王(법왕) 레오 一世(1)書面(서면)으로 써서 神父(신부)認可(인가)를 맡은 것이 아니면 公衆(공중)앞에서 告白(고백)하지 못하게 發令(발령)하였고 그것도 가진 毁謗(훼방)批評(비평)의 씨를 뿌리는 까닭의 1215()에는 敎會(교회)에서 公衆告白(공중고백)全然禁止(전연금지)하고 一年(일년)에 한번식 私的(사적) 告白(고백)義務的(의무적)으로 實行(실행)하게 한 것이다. ()히 그 告白(고백)性的關係(성적관계)의 것인 때에는 그 弊害(폐해)莫大(막대)하다. 그런데 이 團員(단원)들의 告白中(고백중)에도 性的關係(성적관계)의 것이 많아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곰 참아 머리를 들 수 없을 만치 창피스럽게 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 푸린스톤 大學內(대학내)에서 이 運動(운동)指導(지도)하던 한 幹部學生(간부학생)證言(증언)한 바이다. 우리는 個人(개인)으로 찾어가서 잘못한 것을 謝罪(사죄)義務(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반듯이 公席(공석)에서 發表(발표)必要(필요)는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懺悔(참회)의 마음으로 告白(고백)한다는 것보다 自己(자기)告白(고백)罪過(죄과) 있음을 자랑하는 態度(태도)로 뻔뻔스럽게 구는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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뿍맨 運動(운동)心理的(심리적) 技巧(기교)

뿍맨은 現代人(현대인), ()知識階級(지식계급)心理(심리)를 가장 잘 捕捉(포착)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1) 그는 現代(현대)知識層(지식층)엣 사람들이 뷰-(Views - 評論(평론))보다도 뉴스(News - 消息(소식))를 좋아하는 줄 알었다. 新聞(신문)을 읽어도 消息欄(소식란)부터 보고 論說欄(논설란)은 맨 나종에 보던지 아주 안보던지 하는 것이 現代人(현대인)心理狀態(심리상태). 그러므로 뿍맨은 說敎(설교)를 그만두고 實際談(실제담)() 消息(소식)()한다. 2) 實際談(실제담) ()에서도 ()히 어떤 個人(개인)人格(인격)關係(관계)된 일 듯기를 무척 좋아 하는 것이 現代人(현대인)이다. () 私的事件(사적 사건, Personal affairs)을 좋아한다. 어듸서 火災(화재)가 났다거나 큰 물이 졌다거나 하는 消息(소식)보다도 崔某(최모) 李某(이모)의 어떤 個人的(개인적) 事件(사건)에 더욱 興味(흥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뿍맨은 李某(이모), 金某(김모), ()全國的(전국적) ()全世界的(전세계적)으로 有名(유명)한 이들, 英國貴族(영국귀족), 敎授(교수), 學生(학생)이라도 옥쓰포-學生(학생)들의 個人的(개인적), 私生活(사생활)의 가장 깊이 감초인 데를 털어내여 이야기하게 한다. 3) 理論(이론)보다도 生活(생활)- 生活(생활)()하여 知識(지식), 生活(생활)로 네 信仰(신앙)立證(입증)하라하는 것이 現代人(현대인)의 부르짖음이다. 그러므로 그는 될수 있는대로 理論(이론)()하고 實生活(실생활)을 보이려 한다. 그러므로 生活(생활) 改變者(개변자)」 「改變(개변) 生活(생활)() 言必稱(언필칭)[55] 生活(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4) 그는 現代(현대) 靑年(청년)들이 基督靑年(기독청년)들까지도 무슨 ()이니 무슨 ()이니 무슨 主義(주의)이니 하는 紙上(지상)空論(공론)에 실증낸 것을 보았다. ()基督敎界(기독교계)에 있어서도 根本主義(근본주의)現代主義(현대주의)社會的(사회적) 福音(복음)이니 하고 너무들 理論(이론)熱中(열중)해 왔기에 인저 다들 실()낸 것을 그는 잘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神學(신학)을 말하지 않고 敎派(종파)를 캐지안는 代身(대신), 一種(일종) 神秘(신비)靈驗(영험)高潮(고조)한다. 5) 그는 現代靑年(현대청년)이 무었에든지 抑壓(억압) ()하기를 실혀하며 ()儀式的(의식적) 宗敎(종교)反感(반감) 가지는 것을 아는 同時(동시)에 툭 틔여놓고 작란하는 뿌릿지(카드 노름)나 여긔서 말하면 麻雀(마작)같은 노름판에 모히기를 좋아하는 줄 안다. 그러므로 그는 敎會堂(교회당)에 오라고 廣告(광고)하는 代身(대신)-(家庭會談(가정회담))에 오라고 한다. 오면 禮拜堂(예배당)에 온 것처럼 不自然(부자연)스럽거나 서먹서먹한 氣分(기분)이 없고 다들 이야기하고 웃고 하여 自然(자연)히 마음에 맞아서 쉽게 感動(감동)된다. 6) 現代(현대)知識層(지식층)에서는 洗鍊(세련)感情(감정)을 가진 까닭에 聖潔敎會式(성결교회식)으로 손펵치고 뛰놀면서 群衆心理(군중심리)利用(이용)하여 感情(감정)煽動(선동)식이는 데에 反感(반감)을 가지고 野俗視(야속시)[56]하는 줄을 그는 잘 안다. 그러므로 그는 조곰이라도 煽動的(선동적) 演說(연설)이나 不自然(부자연)言行(언행)을 하지 안는다. 고요히 흐르는 요단()물에 沐浴(목욕)식히려는것이 그의 뜻인 것 같다. 7) 그는 時代(시대)를 따라서는 묵은 理想(이상)을 새 말(())에 담어서 새 理想(이상)을 만드는 功效(공효)[57]利用(이용)하였다. 그리하여 祈禱(기도)瞑想(명상)代身(대신)靜思(정사)時間(시간), 靈感(영감)代身(대신)靈導(영도)」 「悔改(회개)代身(대신)生活改變(생활개변)」 「新生(신생)代身(대신)改變(개변)生活(생활)傳道(전도) 代身(대신)分給(분급)」 「傳道者(전도자)代身(대신)生活(생활) 改變者(개변자)()을 써서 事實(사실)은 오래오래 묵은 理想(이상)이지마는 淸新(청신)한 맛을 가지게 한다.

이런 ()으로 보아 그는 智慧(지혜)있는 ()임을 알겠다. 바울의 所謂(소위) 律法(율법)있는 ()에게는 律法(율법)있는 () 같이 하고 律法(율법)없는 ()에게는 律法(율법)없는 ()갓치하여한 사람이라도 더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게 하겠다고 애썼노라는 것이 곧 이런 것이엇을 것이다. 스탄레-ㆍ죤스(Stanley Jones)의 이른바 不可避(불가피)事件(사건)福音化(복음화)하라(Evangelize the inevitable)는 것이 또한 이것을 意味(의미)한 것이다. 가나다 聯合敎會(연합교회) 會員(회원)이오 神經病(신경병)心理解剖學(심리해부학)專門家(전문가)인 스티분슨(C. H. Stevenson M.D.) 博士(박사)는 뿍맨 自身(자신)心理狀態(심리상태)解剖(해부)하여 그 不健全(불건전)部分(부분)을 여섯 가지로 指摘(지적)論文(논문)을 캐나다 聯合敎會(연합교회) 機關紙(기관지)뉴 아옽룩(The New Outlook)發表(발표)하였다. 너무 酷評(혹평)인 것 같으나 專門家(전문가)가 아닌 우리로서는 可否(가부)를 말하기 어려우므로 그만둔다. 그러나 以上(이상)에 말한 心理學的(심리학적) 技巧(기교)單純(단순)技巧(기교)에만 끝친 것이 아니고 潑潑(발발)靈的(영적) 生命(생명)이 그 技巧(기교)技巧(기교)인줄도 모르게 하는 데에 이 運動(운동)生命(생명)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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뿍맨 運動(운동)特殊(특수)價値(가치)

人生(인생)機械化(기계화)가 날로 ()해가고 末梢神經(말초신경)만 쟌뜩 銳敏(예민)해저가는 現代人(현대인)에게 이러한 靈的(영적) 運動(운동)이 있음을 哀心(애심)[58]으로 感謝(감사)안할 수 없는 일이다. 運動(운동)成敗(성패)今後(금후)天國運動(천국운동)至大(지대)關係(관계)가 있을 것이므로 예수의 나라와 그 ()思慕(사모)하고 사랑하는 ()로서는 누구나 이 運動(운동)成功(성공)을 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意味(의미)에서 나는 이 運動(운동)을 길게 紹介(소개)한 것이며 이 意味(의미)에서 또한 그 短點(단점)指摘(지적)한 것이다. 이제 나는 우리 敎會(교회)가 이 運動(운동)에서 ()히 배워야 할 (), 運動(운동) 自體(자체)特殊(특수)價値(가치)라고 볼만한 ()을 몇 가지 들고저 한다. 1) 저들이 絶對(절대) 神意(신의)服從(복종)하려는 態度(태도)() 앞에서 고요히 기대리는 아츰[59] 祈禱(기도). 우리 敎役者(교역자)가 날마다 그날의 生活(생활)始作(시작)하기 ()에 참으로 고요히 白紙(백지)와 같은 心靈(심령)을 가지고 30() 乃至(내지) 時間(시간) ()의 손가락이 그우에 움즉이기를 기대린다면 그 敎役者(교역자), 敎會(교회)에는 오래지 않어서 靈的(영적) 奇蹟(기적)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敎役者(교역자)들의 모힘에서 또한 그렇게하면 彼此(피차) 새로운 友愛(우애)가 생길 것을 疑心(의심)하지 않는다. 2) 個人傳道(개인전도)信者間(신자간)友愛(우애, Fellowship). 우리 敎會(교회)는 차츰 集會(집회)는 있으나 友愛(우애)는 없어진다. 거충으로 모히나 속으로 갈라지고 입으로 말하나 行實(행실)에 나타나지 안는다. 個人接觸(개인접촉)으로 말미암는 傳道(전도)必要(필요)는 우리 朝鮮(조선) 敎會(교회)에서 累累(누누)說明(설명)하는 바이므로 더 말하지 않으나 그 技巧(기교)에 있어서는 ()히 이 그룹의 方式(방식)에서 參照(참조)할 바가 많은 줄 안다. 3) 生活(생활)에 나타나는 悔改(회개)의 열매다. 生活(생활)信仰(신앙)의 열매다. 열매 없는 나무는 버혀버릴 것이다. ()히 저들의 辨償(변상)하려는 心情(심정)은 거룩한 祝福(축복)을 받기에 不足(부족)함이 없는 열매다. 그리고 權謀術數(권모술수)를 떠난 天眞(천진)言行思(언행사)聖神(성신)의 열매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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뿍맨 運動(운동)展望(전망)

나는 이 運動(운동)聖靈(성령)役事(역사)이심을 疑心(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以上(이상)指摘(지적)諸短點(제단점)不健全(불건전)()에 늘 留意(유의)하여 反省(반성), 自警(자경)[60]하지 않으면 얼마 아니하여 惡魔(악마)詭計(궤계)에 빠져서 敎會(교회)에 많은 혼단을 이르키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謙遜(겸손)하게 自己(자기)들의 特殊(특수)使命(사명)에만 全力(전력)을 다하고 남을 폄론하지 않으며 다른 길노 ()께 나아가는 ()臆志(억지)로 끄러오려고 하지 않고 어디까지던지 敎會(교회)奉仕(봉사)하려는 푸랜시스 敎團(교단)과 같은 團體(단체)가 된다면 우리 敎會(교회)는 이 運動(운동)으로 말미암어 큰 祝福(축복)을 받을 줄 믿는다. 말로는 神學(신학)超越(초월)하고 宗派(종파)超越(초월)한다 하지만 저히가 줄곳 저히의 方式(방식)만을 固執(고집)하는 때에는 結局(결국) 宗派(종파)하나 생기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니 그렇지 않어도 分裂(분열)頭痛(두통) 알른 新敎派(신교파)에서 그리 祥瑞(상서)로운 일이라 볼 수 없는 것이다. 가나다 聯合敎會(연합교회) 機關紙(기관지)-아옽룩主筆(주필) 크라이톤(W. B. Creighton) 博士(박사)最初(최초)부터 이 運動(운동)危險性(위험성)()하여 警告(경고)하였으며 最近(최근)에 와서 가나다의 () 宗派(종파)에서 代表(대표) 三十名(30)을 뽑아 特別委員會(특별위원회)組織(조직)해 가지고 敎理的(교리적), 倫理的(윤리적), 心理學的(심리학적), 敎會治理的(교회치리적), 四方面(4방면)으로 細密(세밀)調査(조사) 硏究(연구)하여 그 不健全(불건전)()一一(일일)指摘(지적)함과 同時(동시)에 그 讚賞(찬상)[61]()을 또한 公平(공평)하게 紹介(소개)하여 單行本(단행본)으로 發表(발표)하였다하나 記者(기자)는 아직 얻어 읽지 못하고 이글 쓰게 된 것을 遺憾(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컨대 우리는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判斷(판단)하는 것이 原則(원칙)임을 믿는 바 지금까지의 이 運動(운동)으로 보아 좋은 열매가 ()한 열매보다 훨신 더 많음을 事實(사실)認定(인정) 안할 수 없는 以上(이상), 運動(운동)發展(발전)完熟(완숙)祈願(기원)함과 同時(동시)에 나 自身(자신)恩惠(은혜)받은 바를 感謝(감사)안할 수 없는 것이다.


[각주]

  1. 輓近(만근) - 몇 해 전부터 최근까지의 동안
  2. 프랭크 북맨(Frank N. D. Buchman, 1876~1961)
  3. 옥스퍼드 그룹 운동 1921년부터 영국의 옥스퍼드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전파된 종교 각성 운동. 절대 정직ㆍ무사(無私)ㆍ순결ㆍ사랑을 목표로 하여 종교적 각성을 촉구하였으며, 1938년 이후 엠아르에이(MRA)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4. 捨短取長(사단취장) - 길고 짧은 것을 가려서 격식에 맞춘다는 뜻으로,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을 취함을 이르는 말.
  5. 距今(거금) - 시간을 나타내는 말 앞에 쓰여,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어느 때까지의 시간을 나타내는 말
  6. 존 케블(John Keble, 1792~1866) - 옥스퍼드 운동의 지도자 중 한 사람, 옥스퍼드 케블 칼리지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7.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0) -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이자 옥스퍼드 운동의 주역
  8. 1833년에서 1845년까지 옥스퍼드 성직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영국 교회의 신앙 부흥 및 교회 개역 운동
  9. 曾前(증전) - 일찍이 지나간 때
  10. 壯圖(장도) - 크게 도모하는 계획이나 포부
  11. 自期(자기) - 어떤 일을 마음 속에 스스로 기약함
  12. 妙方(묘방) - 기묘한 방법, 신묘하고 효험이 뛰어난 처방
  13. 不肯(불긍) - 요구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음, 즐겨 하고자 하지 않음
  14. 巡遊(순유) -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며 놂
  15. 打算(타산) - 이해관계를 따져 계산함
  16. 雲散霧消(운산무소) - 구름처럼 흩어지고 안개처럼 사라진다는 뜻으로, 의심과 근심 따위가 깨끗이 사라짐을 이르는 말
  17. 容赦(용사) - 용서하여 놓아줌
  18. 敬具(경구) - ‘삼가 아룁니다는 뜻으로, 한문투의 편지 끝에 쓰는 말
  19. 淸爽(청상) - 깨끗하고 시원하다
  20. 蘇格蘭(소격란) - 스코틀랜드
  21. 短艇(단정) - 작은 배
  22. 牛耳(우이) - 어떤 목적이나 행동등을 같이하는 무리의 우두머리를 빗대어 이르는 말
  23. 卷煙(권연) - 궐련(종이로 말아 놓은 담배)의 원래 말
  24. 자아내다 끄집어서 우러나게 하다
  25. 煩瑣(번쇄)하다 갈피가 복잡하고 어수선하다
  26. 鼻笑(비소) - 콧소리를 내어 빈정거리듯이 웃음
  27. 默重(묵중)하다 제법 무거운 느낌이 있다, 말수가 적고 신중하다
  28. 議論(의론) - 서로 자신의 의견을 내세워 토의하고 논쟁함
  29. 瀰漫(미만) - 가득차다, 자욱하다, 널리퍼지다
  30. 더부러 - ‘더불어의 비표준어
  31. 齊齊(제제) - 엄숙하다, 가지런하다
  32. 隣室(린실) - 이웃방
  33. 不期(부기) - 뜻밖에, 의외에, 상상외에
  34. 靜思(정사) - 고요히 생각함
  35. 苦笑(고소) - 뜻밖의 일에 어이가 없거나 마지못해 짓는 웃음
  36. 方略(방략) - 어떤 일을 꾀하고 행하여 이루기 위한 방법과 계략
  37. 寥寥(요요)하다 고요하고 쓸쓸하다
  38. 景勝(경승) - 산이나 물 따위 자연의 모습이 아름다움
  39. 列席(열석) - 자리에 죽 벌여서 앉음, 식장이나 회의장 따위에 참석함
  40. 小切手(소절수) - 은행에 당좌 예금을 가진 사람이 소지인에게 일정한 금액을 줄 것을 은행 따위에 위탁하는 유가 증권
  41. 異樣(이양) - 모양이 다름
  42. 瑞典(서전) - 스웨덴
  43. 分給(분급) - 각자에게 몫에 따라 나누어줌, 몇 차례로 나누어서 지급함
  44. 거저 - ‘그저의 방언
  45. 秋毫之末(추호지말) - ‘가을철에 털갈이하여 가늘어진 짐승의 털끝이라는 뜻으로 매우 가는 것을 이르는 말
  46. 齎來(재래) - 어떠한 결과를 가져옴
  47. 1971년판 장공김재준저작전집에 의하면 어길데가
  48. 聖慮(성려) - 임금의 염려를 높여 이르는 말
  49. 聖旨(성지) - 임금의 뜻
  50. 煩瑣(번쇄) - 너저분하고 자질구레함
  51. 몬저 - ‘먼저의 방언
  52. 아모리 - ‘아무리의 방언
  53. 不少(불소)하다 적지 아니하다
  54. 1971년판 장공김재준저작전집에 의하면 물길을
  55. 言必稱(언필칭) - 말을 할 때면 항상 일컫기를
  56. 野俗(야속) - 상스럽고 천한 풍속
  57. 功效(공효) - 어떤 일을 한 뒤에 돌아오는 좋은 결과
  58. 哀心(애심) - 애달픈 마음
  59. 아츰 - ‘아침의 방언
  60. 自警(자경) - 스스로 경계하여 조심함
  61. 讚賞(찬상) - 훌륭하고 아름답게 여기여 칭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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