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7일 일요일

[범용기 제3권] (255) 범용기 제3권을 엮고서

범용기 제3권을 엮고서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나 논할 것 없이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다. 중국이 동양에서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건들어지지지 않는 아무도 멸시할 수 없는 거대한 나라로 지축에 뿌리 박은 것은 6천년 때, “기록을 갖고 있는 나라기 때문이다. 그 기록이 왕조사(王朝史)만이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친 깊은 바다 같은 풍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四庫全書”(사고전서)[1]만 겉으로 볼 기회도 가져보지 못했지만, 그 문헌의 목록만 훑어보는 것 만으로도 한 사람의 평생을 요할 것이라고 한다. 놀라운 건조물을 남긴 민족도 있다. 그러나 기록이 수반하지 않은 건조물은 역사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아메리카 인디안의 잉카문명이란 것이 신비로 남아 있지만, 기록이 없으니 자랑도 없다.

우리나라 역사도 그렇다. 단군 千年(천년), 기자 천년이라지만 우리로서의 기록이 없다. 적어도 2천년은 공백이다. Black. 위만 조선도 제대로의 기록이랄 수 없다.

삼국시대의 중 일연[2]이 비로소 우리 민족 국가로서의 기록을 쓰기 시작했고[3], 김부식[4]친중국적인 기록을 썼다고 한다.

기록은 반드시 위대한 작품이 아니라도 좋다. 위인전기 아닌 한 범인[5]의 삶의 기록이라도 무방하다. “위인의 기록은 얼마 쓰여져 있지만, 그것도 공적인 영웅적인 사건 기록에 국한된 것이 거의 전부라 하겠다.

그러나 그런 공적인 사건보다도 그 사건 뒤에 움직인 Personal한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 그리고 그 Personal한 것 뒤에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더 두려운 역사를 그린다.

김구 선생은 白凡逸志를 남겼기 때문에 우리는 그이를 좀 더 진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서재필 박사는 자신의 자서전을 남겼기에 더 친근하게 모실 수 있게 된다.

長空범용기는 첫권 머리말에서 고백한대로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초라한 삶기록한 것 뿐이다. 영웅적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기록이다. 한 가지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나를 나 되게 한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싶다고 할 수는 있겠다.

3도 그런 각도에서 용납해 주면 고맙겠다. 대를 이어 건투하는 한국민주화 운동에 전진하는 동지들에게 축복있기를 빈다.

1982除後 長空


[각주]

  1. 사고전서(四庫全書) - 중국 청나라 건륭 황제의 명으로 편집된 중국 최대의 총서. 1772(건륭 37)년에 편찬을 시작하여 1782(건륭 47)년에 완성되었으며 궁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서적 외에 전국의 민간에 소장된 서적을 전국에서 골라 모아서 경(), (), (), ()의 네 부문으로 나누었다. 모두 3,50379,337권을 수록했다. 7()를 작성하여 여러 서고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2. 일연(一然, 1206~1289) - 고려 충렬왕 때 <삼국유사>를 편찬한 고려의 승려. 경주의 속현이던 장산군(章山郡,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아버지 김언필(金彦弼)과 어머니 이씨(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견명, 자는 회연, 호는 무극, 목암으로 최씨 무인정권과 밀접한 유대를 가지고 있던 정안의 초청으로 남해 정림사에 머물면서 남해분사에서의 작업에 참가하게 됐다. 원종 2년 명에 따라 선월사에 머물면서 지눌의 법맥을 계승했다. 중앙정계와 관련을 맺은 후 이를 배경으로 가지산문의 재건에 힘썼다. 충렬왕 3년 명에 따라 운문사에 머무르면서 <<삼국유사>>의 집필에 착수했다.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불교신앙을 표방하는 저술을 찬술했으며, 선과 교를 막론하고 많은 불교 서적을 편수했다
  3. 일연이 삼국시대의 스님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삼국시대에 대한 저술을 의미한다.
  4. 김부식(金富軾, 1075-1151) - 신라왕실의 후예로 증조부 위영이 신라가 망할 무렵 고려 태조에게 귀의, 경주지방의 행정을 담당하는 주장이 되었다. 그의 가문이 중앙정계에 진출한 것은 아버지 좌간의대부 근 때부터였다. 그는 고려 중기 정계에서 활약한 부필ㆍ부일의 동생이며, 부의의 형이다. 이들은 모두 과거에 합격하여 중앙관료로 진출했다. 본관은 경주. 자는 입지, 호는 뇌천. 고려 문종 때 서경 천도를 주장한 묘청의 난을 진압하고 삼국사기를 편찬한 고려의 문신. 자는 입지, 호는 뇌천으로 인종 4년 이자겸이 제거된 뒤 경주세력의 대표로서 여러 직위에 올랐다. 이후 정권을 장악한 경주계통 문신귀족의 역사적 정통성 확보를 위해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이외에도 20여 권의 문집이 있다고 전해지나 존재하지는 않는다. 늙어서는 개성 주위에 관란사를 원찰로 세워 불교를 수행하기도 했다.
  5. 범인(凡人) - 평범한 사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