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일 월요일

[범용기 제3권] (29) 北美留記 第一年 1974 - 서울에서의 석달

서울에서의 석달

1974~서울에서

 

1974312일에 서울을 떠났으니 설은 서울서 지냈다. 크리스마스 카아드가 잊지 않고 있노라는 표가 된다면 날 세배는 으로의 친애를 말하는 언어라 하겠다.

 

11() - 이른 아침부터 세배 손님이 붐빈다. 1신학교 김정준 학장과 교수님들, 2기장총회 사무처 직원, 임원들, 3민주수호 청년들, 3선개헌 반대 투위 때 청년들, 그리고 장준하, 김두수 목사, 노준영 사장, 경동교회 부인회원들과 찬양대원들, 성북교회 목사 부부, 집안 친척으로 금호동 식구들과 신촌 식구들 그 밖에도 채 기록 못한 방명들이 수두룩하다. 작은 서재방과 마루방이 앉을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다. 연방 들어오는 손님들 때문에 먼저 온 손님들은 쫓기듯 나간다.

두 살짜리 손녀 명은은 때때옷을 갖춰 입고 손님들께 절하고 세배돈 받는 재미에 무턱대고 절한다. 마감 쯤에는 진력이 났는지 절도 안하고 돈만 달란다. 모두들 귀여워했다.

12() - “수원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3:00PM에 선린형제단[1] 모임이 있었다.

개회 예배에서 설교하고 거기서 잤다.

선린형제단도 세대교체와 함께 규약 갱신 작업이 있어야 하겠다는 중론에 따라 준비위원이 선정됐다. 창설기의 대학생회 신인회들이 중견인물로 등장할 계제였다. 나는 장준하의 삼선개헌 반대 100만인 서명운동에 적극 협력하라고 신인회원들에게 전했다.

Dr. Kang은 몹시 비위가 상한 모양이어서 시종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필하고 Dr. Kang차로 집에 왔다.

15() - 정동 “Italiano 수도원별관에서 Amnesty[2] 신년 축하연이 있어 참석했다. 내게 한국 엠네스티 위원장이라는 직함이 붙어 있었으니 의무적이기도 했다.

6:00PM에는 수유리에 이사해 온 고대교수 박재봉 씨의 Open House Dinner에 초대됐다. 이문영[3] 박사와 오걸[4] 선교사가 초대돼 있었다.

박재봉 교수의 전문분야는 자연과학이다. 그는 3동인으로 끝까지 수고를 같이 했다.

16() - 성암교회에서 설교했다.


[각주]

  1. 선린형제단은 김재준 목사와 강원용 목사 등이 세운 전도조직이었으나 해방전후 시기에 중국 간도 용정 및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던 도중 공산당의 압박으로 월남하여 경동교회 자리에 터를 잡았다. 선린형제단의 별칭으로 야고보전도관이라고 하였는데, 성경의 인물로 신앙의 실천을 강조한 야고보와 같이 행동으로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이다. 창립당시 이 모임은 초교파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지도자 격인 김재준 목사가 장로교 목사인 이유로 장로교 교단에 속하게 된다.
  2. 앰네스티(Amnesty) - 국가 권력에 의하여 투옥, 구금되어 있는 각국의 정치범의 구제를 위한 조직. 민간 유지(有志)에 의한 국제적 구원 조직으로, 1961년에 설립되었으며 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다.
  3. 이문영(李文永, 1927~2014) - 호는 소정(小丁). 서울 출생.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과정에서 31 민주구국선언, YH사건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고려대 교수직을 세 번 해직당했으며 모두 4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2008년 자서전에서, ‘유진오 총장에 대한 평가에서 일제 학병 출정을 독려한 친일파보다 전두환의 국정을 자문한 사람이기에 더 나쁘다고 회고했다.
  4. 조지 오글(George E. Ogle, 1929~2020) - 미연합감리교회 한국 선교사. 미국 필라델피아 출생. 메리빌리대학과 듀크신학대학 졸업후 1955년 내한하여 1957년까지 선교사 인턴쉽 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위스컨신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60년 다시 내한하여 인천 도시산업선교회를 중심으로 한국 근로자의 지위향상과 복지를 위해 활동하였다. 1973년 인혁당 사건을 세간에 폭로하고 목요기도회를 주도하다가 197412월 강제 추방을 당했다. 미국에 간 이후에도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였고 미 의회 청문회에서도 증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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