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일 월요일

[범용기 제3권] (28) 1974. 1. 8 긴급조치 - 정체불명의 손님

정체불명의 손님

 

하루는 교회관계를 맡았노라는 치안국 요원이 찾아와서 교회사찰을 맡으래서 나왔습니다만, 저는 교회가 뭔지 전혀 모릅니다. 어떻허면 좋을지 좀 가르쳐 주세요한다.

교회를 사찰하노라고 애쓰지 말고 교회는 교회대로 가만 두는 게 제일 좋은 정책이겠지. 사찰이니 간섭이니 통제니 하는 쓸데없는 일을 왜 만들어 갖고 고생하는 거요했다.

교회가 정부를 이러니 저러니 비판하니까 못 본체 할 수가 없잖아요?” 한다.

교회가 정부시책을 비판하는 것은 교회의 본직에 속하는 한 부분이니까 않할 수 없지요. 정부에서는 그 비판을 듣고 자기를 반성하고 좋은 충고는 받아들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정부 입장을 솔직하게 해명해서 양해를 구하고 하면 되지 않겠소?” 했다.

그는 또 말했다.

교회 기관에는 총회, 노회, 지교회 등이 제도화해 있긴 한 것 같은데,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통하는 지시나 명령 계통이 확립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업신여겨서랄까, 어느 말단 목사에게라도 손을 대면, 전체 교회가 벌떼처럼 일어납니다. 그래서 암만해도 모르겠다고 한 것입니다.”

글세, 그러니까 괜히 벌집을 쑤시지 말란 말이 아니오?” 해서 돌려보낸 일이 있다.

 

하루는 나갔다 들어오니 마루방 모새기[1]에 어떤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들어오자 그는 일어서 최경례[2]를 하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존함은 오래전부터 들어모시고 있습니다.”

저는 박 정권 타도를 위한 방대한 비밀조직체 사람입니다”, “말을 암만 했자 소용있습니까?”, “죽여버려야지요”, “그래서 김 박사님에게도 비밀로 알려드리고 격려를 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나는 조용하게 말했다.

그런 조직이 있고 그런 계획이 있다면 그런 일을 생면부지의 나 같은 사람에게 알릴 필요가 어디 있겠오!”

무얼하든 그것은 당신들 자유니까, 나는 옳다 그르다 말하지 않겠오. 그러나 나는 나대로 내 길을 갈테니까 내 걱정은 마시오. 나는 그런 폭력 행동에는 흥미도 없고, 해결도 없다고 생각하오. 위정자가 잘못하면 충고하고 잘하면 칭찬하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 정부가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실천해 준다면 협력도 할 생각이오. 내게 있어서 정부전복 같은 음모는 당치도 않은 얘기오!”

그는 일어서며 혼잣말같이 한마디 한다.

김 박사님 보기와는 다른데요. 순진한 것 같은데 걸려들진 않는구려!”


[각주]

  1. 아마도 모서리인 듯
  2. 최경례(最敬禮) - 가장 공경하는 뜻으로 정중하게 경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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