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일 월요일

[범용기 제3권] (44) 北美留記 第一年 1974 -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연속선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연속선

 

나는 19693선개헌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때부터 반독재 민주운동에 나섰다. “3선개헌이란 말은 독재선언속말이다. 의복으로 말한다면 “3선개헌이고 독재이다.

물론 나도 반대다. 그러나 성명은 낸 일이 없으며 그럴 기회도 없었다.

나는 기독교인의 정치참여를 주장해 왔었으나 나 자신이 정치Involve[1]된 일은 없었다. 815 해방의 소식을 듣자마자 한 크리스천의 건국이념이란 팜프레트를 낸 일이 있었지만 그것은 정치인들에게 내 나름대로의 나라 세우기이념을 참고재료로 제공하려는 의도였고 나 자신이 직접 그런 정치를 하겠다는 시정연설은 아니었다.

그런데 2term[2]이 거의 끝나려는 무렵에 박정희는 자기가 다시 대통령으로 입후보하기 위하여 헌법을 고친다고 선포했다. 대통령 3선을 헌법으로 합법화하려는 억지 공사였다.

하루는 장준하와 송원영[3]이 수유리 내 장막에 찾아왔다. 3선개헌 반대 운동에 나서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도 물론 3선개헌에는 반대였다. 그러나 공개운동을 일으킨 일은 없었다. 그들은 정치에 숫처녀같은 나에게 Propose[4]를 감행한 셈이었다. 그래서 교제가 시작됐다.

김상돈, 이철승 등이 계주했다. 결국 “3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가 조직되고 내가 위원장이란 직책을 떠메게[5] 됐다. 내가 무슨 정치나 사회 집단의 감투에 야망이 있었다면 몰라도 진정으로 싫다는데 그렇게 됐다는 데는 일종의 신의가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싶어지기도 했다. 왜냐하면 불의에의 항거가 그대로 정의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아니오할 것을 아니오할 용기가 없다거나 아니오할 것을 로 번복하는 것은 가장 비윤리적인 외식이고 비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후부터 한국민주화운동은 나의 본업같이 되었다. 때와 장소를 가릴 여가가 없었다. 아주 생리화했달까! 않하면 나 자신이 괴로와진다.


[각주]

  1. Involve 관련되다, 참여하다, 연루되다, 포함하다
  2. term 임기, 기간
  3. 송원영(宋元英, 1928~1995) - 평남 용강 출신. 서울의 양정고등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광복을 맞아 신탁통치 반대 및 반공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52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54년 경향신문사 기자로 활동하였다. 2공화국의 장면 정권이 출범하면서 장면 국무총리의 공보 비서관이 되었다. 1963년 정치활동이 허용되면서 창당된 국민의당 대변인, 1967년 통합야당 신민당의 대변인이 되었다. 1980년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다가 1985년 해금되어 신한민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12). 1987년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대통령 후보 선정 문제로 김영삼계의 잔류파와 김대중계의 탈당파로 분당될 때 잔류파로 남았다. 1988년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박정희가 재조명되자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5.16 군사정변 세력은) 민주당 정부의 밥상에 숟가락을 들고 가로채 앉은 세력이라며 비판하였다.
  4. Propose 제안하다, 제시하다. 제의하다
  5. 떠메다 쳐들어서 어깨에 걸치거나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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