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일 월요일

[범용기 제3권] (50) 北美留記 第一年 1974 - 필라델피아 집회

필라델피아 집회

19744

 

이번 길에 필라델피아에서도 강연하고 하루 밤을 김순경[1] 박사댁에서 유숙했다. 청중 가운데는 박 정권에서 보낸 유학생, 친북인사 등이 섞여 있어서 그 성분이 단순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데 신경 써 본 일이 없었고 관심조차 가져본 일이 없다. 나는 내 할 말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위에서도 누차 언급한 대로 그 후의 일은 하느님이 맡으실 것이라 믿는다.

좀 이상한 질문도 있었고 대체세력이 무어냐하는 흔해빠진 질문이 여기서도 나왔다. 미국 한인 학자계의 원로인 김순경 박사가 분격한 어조로, “옳으면 옳다, 그르면 그르다 할 것 뿐이지 대체세력이 옳고 그른 근본윤리를 좌우하느냐? 옳지 못한 세력이면 다 같이 힘을 모아 제거할 것이고 제거된 다음의 일은 국민이 또 다수 의사대로 결정 진행할 것이다.” 했다. 질문은 잠잠해졌다.

김순경 박사는 화학전공으로서 사계의 원로다. 서울대학 교수로 14년간인가 재직하다가 지금은 필라델피아 템풀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노교수다. 그는 한국인 특히 본국의 수난가족 돕기에 열중해서 많은 구호금을 거둬보냈고, 지금도 계속한다. 그는 한국인의 어느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단체생활은 시간능률보다도 낭비가 더 많다는 것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선한 사업에도 실질적으로 한몫 끼이는 데 인색하지는 않았다. UM관계에 있어서도 회원은 아니면서 사업과 재정운동과 데모 등에는 솔선 참여한다. 한인 사회에 말만 많고 실행이 적은 데 대한 의식적인 항거 또는 교육적 심리적 암시랄 수도 있을 것 같다.

필라델피아 집회를 마치고서 다시 와싱톤으로 갔다.


[각주]

  1. 김순경(金舜敬, 1920~2003) - 대한민국 화학자. 생물학자. 학계에서는 이태규 박사와 함께 한국 화학의 아버지로 꼽힌다. 1920년 함경남도 함흥군에서 태어났다. 함흥농업중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응용화학과를 졸업하고 오사카제국대학 화학과에서 유학한 뒤 이태규 교수의 조교로 일했다. 한국 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갔으며, 전쟁 후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대학교 화학과 조교수와 교수로 가르쳤으며(1949~1965), 브라운대학교 방문교수(1962~1966), 루이빌 대학교 화학과 교수(1966~1969), 탬플대학교 화학과 교수(1969~1990), 명예교수(1990~2003)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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