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일 화요일

[범용기 제3권] (64) 北美留記 第一年 1974 - “제3일” 해외 속간 제1호

3해외 속간 제1

 

나는 197410월에 3해외 속간 첫호를 냈다.

연합교회에서 이 목사와 강 비서님, 그리고 뉴코리아 타임스전충림[1] 사장, 정학필 장로 등 여러분이 다같이 자기 일처럼 협력했다. 발송 작업, 특히 반입, 반출은 정학필 장로가 전담했다. 발송을 위한 독자 카아드 정리, 포장, 그 밖의 작업들은 집안 식구들이 합작, 우편국까지는 처와 내가 짐수레를 끌고 밀고 했다.

낮에는 젊은이들이 모두 직장에 나가고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800부를 찍었는데 4년 후인 지금에는 2,000부가 나간다. 비매품이기에 책값은 없다.

그래도 이제는 해외민주운동에 없으면 섭섭할 정도로 애독되는 것 같기도 하다. 동인 송석중[2] 박사, 박하규[3] 박사, 신유길 박사 등이 정기적으로 원고를 보내 줘서 내용은 충실하다는 평이다. 시인 이신애 여사의 긴장완화의 구실을 한다.


[각주]

  1. 전충림(1923~1995) - 중국 용정 출신, 전택문 목사의 아들. 해방 이후 1962년에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토론토에서 한인연합교회를 시작하였고, 1973년부터 뉴코리아타임스’(The New Korea Times)라는 신문을 발행하며 해외에 흩어진 동포들에게 조국의 소식을 전했다. 1979년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해외언론인 대표로 참가하게 되었다. 당시 교회 내에서 의견이 분분했을 때, 김재준 목사는 누군가가 먼저 가야 한다. 그래야 문이 열리지 않겠는가. 공개적으로 정정당당히 가라. 내 나라 내 고향이 아닌가!”라고 격려했다. 평양 방문 이후 교회에 폐를 끼칠까봐 장로직을 내놓았으며, 캐나다에서 선우학원 박사, 김재준 목사, 이승만 목사 등과 상의해서 해외이산가족찾기를 꾸린다.
  2. 송석중 박사는 서강대 전임강사로 있다가 1962년 인디아나 대학에서 언어학 박사과정을 시작하였고 1968년에 마쳤으나 귀국하지 않고 미시간 주립대학 동아시아언어학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3. 박하규 박사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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