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일 화요일

[범용기 제3권] (95) 北美留記 第二年 1975 - 와싱톤에

와싱톤에

 

718 와싱톤에로 갔다.

시노트신부와 도날드 프레이저 하원의원 찬하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9A.M.에 공항을 떠나 1:15P.M.에 와싱톤에 내렸다. Holyday Inn 219호실에 들었다. 김응창 민통부의장, 이근팔 사무국장, 강영채[1] 박사 등이 호텔에 찾아왔다. 그들은 시국담과 와싱톤에서 겪은 사건들, “민통에서 해온 로비활동 등에 대하여 새벽 2시까지 얘기했다.

나는 홍성빈 댁에 유숙하기로 했다. “귀진이도 집에 있어서 반겨준다.

두 자녀 ”()”()이 어느새 소년, 소녀로 자랐다.

720() - 성하의 더운 날씨.

홍성빈 부부, “”, “금자까지 온 식구가 Rehobott 해수욕장에 갔다. 텐트, 접는 의자, 욕복, 점심 등 금자가 부지런히 마련했다. 맨발은 모래에 덴다. 바닷물은 빙수같이 차고.

 

바다에 잠근 알몸

백사에 뉘여

하늘과 바다

얕고 짙은 푸름을 본다.

햇볕 따가와도

바람 시원하오.

창파에 씻은 발

모래에 묻소.

 

이것은 장공이 그때, 모래 위에 쓴 구절이다.


[각주]

  1. 강영채 박사는 1953년 미국 유학의 길에 올라 영문학을 공부하고 훈민정음 28자로 글로벌 발음기호를 만들어 세계화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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