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싱톤에
7월 18일 – 와싱톤에로 갔다.
“시노트” 신부와 도날드 프레이저 하원의원 찬하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9A.M.에 공항을 떠나 1:15P.M.에 와싱톤에 내렸다. Holyday Inn 219호실에 들었다. 김응창 민통부의장, 이근팔 사무국장, 강영채[1] 박사 등이 호텔에 찾아왔다. 그들은 시국담과 와싱톤에서 겪은 사건들, “민통”에서 해온 “로비” 활동 등에 대하여 새벽 2시까지 얘기했다.
나는 홍성빈 댁에 유숙하기로 했다. “귀진”이도 집에 있어서 반겨준다.
두 자녀 “심”(深)과 “원”(源)이 어느새 소년, 소녀로 자랐다.
7월 20일(일) - 성하의 더운 날씨.
홍성빈 부부, “심”과 “원”, “금자”까지 온 식구가 Rehobott 해수욕장에 갔다. 텐트, 접는 의자, 욕복, 점심 등 금자가 부지런히 마련했다. 맨발은 모래에 덴다. 바닷물은 빙수같이 차고.
바다에 잠근 알몸
백사에 뉘여
하늘과 바다
얕고 짙은 푸름을 본다.
햇볕 따가와도
바람 시원하오.
창파에 씻은 발
모래에 묻소.
이것은 장공이 그때, 모래 위에 쓴 구절이다.
[각주]
- 강영채 박사는 1953년 미국 유학의 길에 올라 영문학을 공부하고 훈민정음 28자로 글로벌 발음기호를 만들어 세계화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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