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일 화요일

[범용기 제3권] (96) 北美留記 第二年 1975 - Frasser 하원 의원과 Sinnott 신부 찬하

Frasser 하원 의원과 Sinnott 신부 찬하

 

821 내일 민통뺑퀏 순서를 강영채 박사와 타협했다.

722 오늘 저녁에, “민통주최로 황후(Empress)라는 중국식당에서 프레이저 국회의원과 시노트 신부의 한국 인권옹호에 대한 노고와 공헌을 찬양하는 모임을 갖게 된 것이다.

김응창 부의장 사회, 안병국 목사 기도, 그리고 내가 개회사에 이어 시노트 신부를 소개, 이어서 시노트 신부의 연설이 있었다. 다음으로 강영채 박사가 프레이저 의원을 소개하고 프레이저가 연설한다.

한국민주운동에 대한 나의 정열을 갈수록 치열할 것이며, KCIA의 미국내 활동에 대한 조사는 이제 첫 시작에 불과하다. 몇해 걸리든지 철저히 파헤칠 작정이다.고 증언했다. “디너는 일인당 20불인데, 한인, 백인이 빼꾹찼다.

오늘의 용어는 모두 영어로 시종했다.

찬하회는 성공적이었다고들 기뻐했다.

723 상원에 가서 험프리 상원의원의 Korea Hearing을 방청했다. 시노트 신부와 톰손 박사(변호사로서 미국 N.C.C. 회장)가 증언했다. “한국인권문제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만은 험프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말솜씨가 쉽게 흘러서 임기응변의 선수라 미덥잖다는 평이었다. 전규홍[1] 박사 말 - “험프리는 말이 바람같아서 지나간 다음에 먼지만 남는다

724 목요일이어서 시노트 신부는 한국 대사관과 한국 영사관 앞에서 목요기도회를 갖자고 했다. 홍성빈, 이근팔, 부성내 부부, 장성남 등이 나와 함께 동참했다.

대사관은 문이 잠겨 있었다. 문 밖에 서서 찬송하고 기도했다. 그 거리는 각국 대사관이 줄지어 서 있기에 모두 길 건너 이층 베란다에 나와 보고 있었다. 연방경관 7, 8명이 나타나 해산을 요청했다. 그 거리는 데모못하는 거리란다.


[각주]

  1. 전규홍(全奎弘, 1906~2001) - 평양 출신으로 일본 도쿄 주오 대학 법학과, 미국 콜로라도주 센좀 대학교 법문학 석사, 미국 시카고시 로욜라 대학교 법학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광복 후 미군정에서 특별검찰청장, 법무부 차관을 역임하였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초대 국회사무총장, 총무처장관, 동국대학교 대학원장 겸 부총장, 주 서독 대사를 역임하였다. 1963년 미국 대통령 관저 앞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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