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낙엽
김익선 목사 장남 ‘경휘’ 군이 21세로, 토론토대학 1학년에서 저 세상에 갔다. ‘위암’이라니 의약부도의 암실(暗室)이라 하겠다.
“一年始有一年春
百歲曾 無百歲人”
“해마다 처음에 한해 봄은 있어도
백세에 일찍 백세 산 사람은 없었다.”
결국 백년도 못 다 가서 다 같이 가는 것이라는 체념의 ‘시’다. 그러나 때로는 체념할 수 없는 ‘비극’이 있다. 가을 첫 서리 단풍이 타오르고 황금빛 숲이 Royal Mantle을 휘날릴 때, 시름없이 지는 낙엽이라면 몰라도 아직 싱싱하게 푸른 기름도는 잎사귀가 광풍에 찢겨 떨어져 길바닥에 몸부림친다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슬픔이다. 그러길래 “자녀는 죽어 어머니 가슴에 묻힌다”는 속담이 생겼다. 일제시대 이상재 옹은 70노인이었지만 청, 장년 어린이까지도 진짜 ‘동무’로 친하게 지내셨다. 그러나 ‘장공’은 그렇지 못하다. ‘경휘’ 군도 나를 ‘친구’ 또는 ‘동무’라고 느꼈을 것 같지 않고 나도 경휘 군과 마주 앉아 터놓고 얘기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마감 날에 경휘 군의 손잡고 기도했을 때, 그의 반응이 어떠했을까? 나로서는 짐작이 안 간다. ‘경휘’는 그날 밤 새벽 다섯 시 반에, 숨겨뒀던 힘을 다 뽑아 죽음과 격투했다. 그러나 죽음이 이겼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1] -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도 ‘죽음’ 앞에서 체념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싸웠다. 그리고 잤다. 그리고 졌다. 짐으로써 이겼다.
‘경휘’도 그랬다. 그는 삶과 죽음의 ‘심연’에 몸을 잠갔다. 그리고 다시 떠올랐다. 그는 20을 갓 넘은 푸른 낙엽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시간과 영원을 몸으로 끼어 않았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란 ‘고백’의 마감 ‘시’를 남겼다. 최후 심판의 날, 영의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는다. 죽음은 삶의 세미콜론(Semi colon)[2]이요, 피리오드(Period)가 아니다.
[1982. 6]
[각주]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אלי אלי למה עזבתני (히브리어)
- 마태복음 27장 46절과 마가복음 15장 34절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가상칠언 중 하나
- 가로쓰기에서 사용하는 쉼표의 하나로 문장 부호인 ‘;’의 이름. 주로 예를 들어 설명하거나 설명을 추가하여 덧붙이는 경우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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