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7일 수요일

[범용기 제4권] (101) 野花園餘錄(야화원여록) - 갑자기 가신 雲如(운여) 金光業(김광업) 先生(선생) 영전에

갑자기 가신 雲如(운여) 金光業(김광업) 先生(선생) 영전에

 

오늘(1976518) 일찌감치 사무실에 나와, 방금 들어온 신한민보를 읽다가 첫 면을 넘기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럴 수 있을까?”고요.

내게는 나성[1]하면 의례 몇 분 모습이 저절로 떠오르곤 했습니다. 물론 운여[2] 선생이 그중 한 분이셨지요.

지난 수십 년 동안에 네 번 나성에 들렸습니다만, 처음에 두 번은 귀국길에 잠시 들린 것이니까 그야말로 과객이었고 최근 두 번은 민주운동관계였기 때문에 그 때마다 운여 선생을 만났습니다. 온후겸손하시고, 거짓이나 부푼데나 꾸밈이 티끌만큼도 없으신 분이라는 것이 첫인상이었습니다. 다음 번에 뵈올 때는 참되고 착하시고 아름다우신, 동양의 도와 풍류가 몸에 배인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나는 금년 419 계절을 나성에서 지낸 것을 계기로 다시 운여 선생을 만나 하루저녁 차상달[3] 동지 댁에서 자필연묵 四友의 사귐을 즐기며 선생과 더 가까워졌습니다. 언제나 나성에 가면 이 분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내 남은 날의 한 즐거움이고 축복이라고 혼자 흐뭇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도 갑자기 먼저 가셨군요. 너무 서운하고 허전합니다.

몇 해 전 고 김말봉[4] 여사 하관식 때, 어느 이름 높은 시인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바람 따라 구름같이 간 거지하던 것이 기억됩니다. ‘운여는 구름같이 가시겠다는 말이었던가요?

기독교 신앙과 동양의 도와 풍류가 그 몸에 하나되신 사기 없는 인격이 그립습니다.

바로 13일 전에 손수 쓰셔서 옥석에 손수 새겨주신 도장을 꺼내 만지며, 그 동안 써 보내주신 작은 서폭들을 다시 보면서 먼저 가신 운여를 쳐다봅니다. “몸으로 드린 제물이니 하나님이 아실 것입니다.

 

1976518

토론토에서 장공 김재준 드림


[각주]

  1. 나성(羅城) -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있는 도시
  2. 김광업(金廣業, 1906~1976) - 안과의사이자 서예가. 호는 운여(雲如).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20년 평양공립보통학교를 마친 후 상경하여 1927년 경성의학전문학교(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전신)를 졸업하였다. 1928년 경성대학병원에서 의원으로 근무하다 평양으로 귀향하였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54년 부산에서 대명안과를 개원하였다. 이듬해 1955년 부산시 최초의 서예 학원인 동명서화원을 개설하여 부산 서예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7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아들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다가 사망하였다.
  3. 차상달(車相達, 1905~1992) - 충청북도 진천 출생. 경기 고보와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고, U.S.C를 졸업(무역학)하였다. 1929년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1970년 이래 한국 민주화 및 통일운동에 참가하였다. 1983년과 1986년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하여 반한 인사로 낙인찍히기도 하였다.
  4. 김말봉(金末峰, 1901~1962) - 본관은 김해(金海). 본명은 김말봉(金末鳳). 부산 출생.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3년 수료한 뒤 서울에 와 1918년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를 졸업하였다. 그 뒤 황해도 재령(載寧)의 명신학교(明信學校)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1927년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27년 귀국하여 중외일보 기자로 취직, 전상범(全尙範)과 결혼하였다. 1932년 보옥(步玉)이라는 필명으로 중앙일보신춘문예에 망명녀(亡命女)라는 단편소설로 응모,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단하였다. 전상범과 사별한 뒤, 이종하(李鍾河)와 재혼, 부산에 살면서 광복 때까지 작품활동을 중단하였다. 광복 후 서울로 올라와 작품활동을 다시 시작하여 1945카인의 시장(市場)화려한 지옥(地獄)등을 발표하는 한편 사회운동, 즉 공창폐지운동(公娼廢止運動)과 박애원(博愛院) 경영 등의 일을 하였다. 1954년 우리나라 기독교 최초의 여성 장로(長老)가 되었다. 그녀의 사위 금수현은 지휘자 금난새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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