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1일 목요일

[범용기 제4권] (26)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목사의 심정 (1)

목사의 심정 (1)

 

목사는 그리스도이라는 교회를 전업(全業)으로 봉사한다. “전업이란 말은 부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목사의 심정은 그대로 그리스도의 심정이어야 할 것이다.

목사의 전공 학문은 신학이다. 신학적으로는 Specialist여야 한다. 신학의 분야는 넓고 깊다. 그러므로 너무 속성”(速成)을 노려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평생을 학도로 지내야 한다.

목사는 실업인이 아니다. “을 탐해서는 안된다. 언제든지 결단의 길목에 설 때에는 그리스도냐 맘몬이냐의 양자택일의 유혹에 직면한다. 그 순간의 선택은 “Either or”“Both and”가 아니다.

목사는 기술자다. 지금은 기술학적 시대다. 그러므로 목회도 기술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목회상담학, 교회치료법, 교회법전, Liturgics[1], 노인학, 사회학, 국제관계, 정치와 교회, 세계교회협의회와 개교회, 개교회와 상회 관계, 등등에 능숙해야 한다. 그래서 변천하는 세계와 함께 언제나 성실한 지도자로 앞장서야 한다.

목사는 권위주의여서는 안된다. 다만 신앙과 행위에 흠잡힐데 없으면 된다. 교회 기관 안에서도 유명하다는 목사가 있다. 고관들도 그를 상대로 얽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한번 높은 벼슬아치를 만나 너ㆍ나 하여 통사정할 수 있고 그 덕택에 안되던 일도 되어나온다면 그때부터 목사 자신이 고관이 된 기분에 놀아난다. 그래서 시시한 천민들은 상대하길 꺼린다. “내 그래봐도 뭔데, A Somebody인데! 그 따위 것들과 섞일 거냐?” 말하자면 도도해진다. 스스로를 Dignity[2]한다. 아이들 말로 하면 잰다”.[3] 그때부터 그는 권위주의자요 섬기는 자 아니게 된다.

목사는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어려운 사람,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 외로운 사람, 문제 인간 모두 위로하고 격려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팔팔한데, 저이는 바보같이 비실비실해! 제가 제 몸 건사도 못하면서 뭐 큰 소리만 치면 되는 줄 아나?” 이래서는 안된단 말이다.

무엇보다도 목사는 시인이어야 한다. “시인은 결코 자기를 속이지 못한다.

시에는 타산이 없다. 목사는 적어도 시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고 그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문학을 좋아해야 한다.

미술 애호도 목사에 대한 불가피한 요청이다. 목사가 서도[4]나 그림이나 동양목화나 서양화나 간에 영영 거들떠볼 의욕도 갖지 않고 쓴 오이 보듯 경멸한다면 그는 그리스도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시혼(詩魂)이 가슴에서 처럼 넘쳐흐르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목사는 다른 종교나 종파를 독단적으로 혐오하거나 잘라버리거나 냉소해서는 안된다. 전 우주 만물이 한 생명공동체안에 있다. “전 인간과 문화는 우주적 사랑의 보편왕국이른바 역사 안의 하느님 나라기 때문이다.

목사는 이 우주적 사랑공동체의 일꾼이요, 월급 받고 고용된 삯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사의 심정기존 바운더리를 넘어서는 데서 고귀하다.

 

[1981. 6. 19]


[각주]

  1. Liturgics 예배학, 전례학, 전례론
  2. Dignity 존엄, 품위, 자존감, 위엄, 품격
  3. 재다 으스대어 뽐내거나 뻐기다
  4. 서도(書道) - 글씨를 쓰는 올바른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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