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5일 월요일

[범용기 제4권] (57) 군정독재에서의 김대중은… - 巨人(거인)의 주먹

巨人(거인)의 주먹

 

1963년 제네바에서 열린 교회와 사회 세계대회때였다. 때는 마침 월남전쟁 하반기였다. 삼거풀처럼 얼키고 맺혀서 장본인인 불란서도 손들고 물러난 월남 문제를 미국이 넘겨받은 무렵이었다.

미국은 초강대국이니까 꼬마 나라들은 슬슬 길줄만 알고 쉽사리 맡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묘하게도 초강대국으로 자처하는 또 하나의 나라 소련이 있어 나도 대국이다하고 대든다. 뿐만 아니라, 이쪽저쪽 다 깔보며, 이쪽저쪽 다 이용해 먹으려는 중국이 있어서 일은 그렇게 수월하지 않았다.

허긴, 중국도 생트집하는, 억지 야로[1]는 아니었다. 월남혁명운동에 20년래 140억불을 썼다니까, 그리고 소련도 40억불을 밀어 넣었으니 되는 대로 되라할 처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런데 비교할 수 없는, “숱한 젊은이들의 생명과 어마어마한 예산과 군수물자와 현대무기를 남쪽 월남에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곤경에 몰려 초조해졌다. 아예 북쪽을 부수자! 그래서 미국은 북폭을 시작했다. 이 소식이 제네바 세계대회에 전달됐다.

중남미와 아프리카 대표들은 대부분이 젊은이들이었는데 거의 미치다시피 미국을 욕한다. 체면이고 예의고 없다.

개회 첫날은 살풍경[2] 그대로였다. 미국 교회 대표들은 수효도 많았고 그 대회 비용은 거의 미국 교회가 부담했고 소련에서는 소정의 회비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처지였다.

미국 대표들은 돈 내고 욕먹으러 온 셈이었다. 그런데 한마디 답변도 변명도 없었다. 그리고 욕하는 젊은 대표들을 진심으로 존경해 주는 것 같았다.

미국도 욕만 먹을 처지는 아니잖느냐? 왜 말이 없느냐?” 했더니 미국 대표의 말 - “그 정도의 욕 갖고는 안돼요. 훨씬 지독한 욕을 먹어야지요!” 한다. “‘북월남정글속으로 기어 남침하는 거나 남월남이 공중으로 날아 북폭하는 거나 피장파장인데 왜 북쪽만 갖고 야단이냐?”는 한마디 변호는 한국 대표가 해줬을 뿐이었다.

사석에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 “너무 힘이 세고 자이언트’(거인)가 되며는 불편해요. 꼬마들이 달라붙어 주먹질하고 몽둥이질한다고 해서 한 대 갈겼다간 살인이 될 거고, 어른이 애기와 일대일로 자부락치게[3] 싸운다는 것도 쑥스럽고 그들이 그랬자 미국을 때려눕힐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있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니 실컷 분풀이하게끔 놔두는 게 수란 말이오!”

그런 우월감이 밉살스럽기는 하지만 사실, “힘비기로 말한다면 원자탄 한 두 개면 알아볼 판인데 문제나 될 거냐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카아터는 얻어맞기만 하면서 너무 찍소리도 못해 쫓겨나고 레이건은 큰 소리 뻥치니 당선됐다고 한다.

거인일수록 주먹은 삼가야 한다. 그러나 주먹을 안쓰고도 위신은 서야 거인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닐까?


[각주]

  1. 야로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무슨 일을 꾸미는 속내나 수작을 속되게 이르는 말
  2. 살풍경(殺風景) - 아주 보잘것없이 메마르고 스산한 풍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불화나 분쟁에서 비롯된 냉랭하고 긴장된 분위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살기를 띤 무시무시한 광경
  3. 자부락대다 실없이 자꾸 건드려 괴롭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