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5일 월요일

[범용기 제4권] (58) 군정독재에서의 김대중은… - “삼손”의 正氣(정기)

삼손正氣(정기)

 

노예였던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에서의 종살이에서 탈출, 사막을 걸어 가나안에 들어오긴 했지만 아직 왕도 없고 왕국도 없어, 지방마다 본주민들 속에 섞여, “부족자치로 겨우 민족의 Identity를 지탱해 가던 소위 사사시대때 일이다.

삼손이란 하늘이 낸 역사(力士)가 있었다. 그는 20년 동안 지방의 사사”(Judge)로 지내면서 力士다운 일화를 동화책 삽화처럼 그려가며 살았다.

그는 솔직하고 단순하며 그러면서도 유머도 제법 있었다. 원주민 필리스틴[1] 미인들을 좋아하며 동거도 하고 결혼도 해 보고, 그 앙큼한 여성들의 모함에 빠지기도 하고 거짓 사랑에 속기도 하고 무던히 나이브씨름꾼이었다.

밤낮 그에게 얻어맞는 필리스틴 족장들은 이 삼손의 힘의 출처를 알아내려고 미인계를 쓴다. “데릴라라는 창기타입의 미녀는 족히 이 역사의 간장을 녹일 수 있었다.

이 미녀는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울며불며 조른다.

안 대어 주시는 걸 보니 나를 미워하시는 모양인데요. 당신께 미움 받고 살아 뭘 하겠어요! 죽어 버릴테야요.”

엣다. 모르겠다. 머리칼에서 나온다”, “인제 됐다하고 데릴라는 삼손이 자는 틈에 머리칼을 잘랐다.

아닌 게 아니라 삼손은 김빠진 맥주같이 싱거운 고깃덩어리로 변했다.

필리스틴 사람들은 그를 결박했다. 두 눈을 도려내고 가뒀다. 당나귀 대신 연자마[2]를 돌리게도 했다.

필리스틴 족장과 성주들은 이층으로 된 대공회당에 축하 잔치를 열고 위 아래층에 수만 명 모여 삼손의 연기를 구경한다. 삼손은 이방인의 구경거리가 됐다. 삼손은 부끄럽고 노엽고 저지른 잘못이 한스러워 하나님께 떼썼다. “한번만 내게 힘을 돌려 줍소서!”

힘은 돌아온다. 그는 이층 공회당을 떠받친 큰 기둥사이에 섰다. 한 손으로 한 기둥씩 걸머쥐고 냅다 뛰었다. 기둥이 빠지면서 이층집이 와르르 뭉개졌다. 윗층의 성주와 족장들, 아래의 구경꾼과 백성들 모두 치이고 깔리고 납작해지고 죽고해서 단번에 시원스런 복수를 해치웠다.

힘이 머리칼에 감추워 있다. 그 힘이란 이스라엘 민족의 정기다.

어떤 불운이 닥쳐와도 정기는 잃지 말아야 한다.

만주족이 일어나 나라를 세우고 요양에 도읍하고 황제를 일컬었을 때, 그들은 우리나라가 국교를 거부한다고 쳐들어와 소위 병자호란을 일으켰다.[3] 그때 인질로 잡아간 우리의 3의사[4]는 끝까지 칭신[5]을 거부하고 온갖 유혹을 마다하고 정기가를 지어 외우며, 지지고 볶고 삶고 비틀고 꺾고, 껍질 벗기고 하는 온갖 몹쓸 악형을 견디어가며 죽기까지 절개를 지켰다.

문화적으로 나라를 이어받은 정통으로 자처한 고집불통때문이었는지 모르나 어쨌든 그이들의 정기는 별처럼 빛난다. 그런데 요새 들려오는 잡되고 비열한 본국 소문들은 시궁창 오물을 연상시킨다. 민족정기가 김처럼 새버린 것일까? “에 팔리고 자리에 갇히고 하찮은 미끼에 걸리고 이제야말로 삼손의 머리칼이 자라야 하겠다. “삼손은 필리스틴과의 관계에서 종종 실수는 했었지만 이스라엘 선민으로서의 민족정기를 송두리째 팔아먹거나 굴복한 일은 없었다. 그는 마감 순간에 싸움에서 기전[6]의 모든 싸움을 합한 것 보다 더 큰 전과를 거뒀다고 쓰여있다.


[각주]

  1. 블레셋 - 고대 팔레스타인 민족 가운데 하나. 기원전 13세기 말 에게 해에서 팔레스타인의 서쪽 해안으로 침입하여 정착한 비셈계 민족으로 이스라엘 인을 압박하였다.
  2. 연자마(硏子磨) - 돌로 만든 방아의 하나. 둥근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옆으로 세워 얹은 것으로, 이것을 소나 말이 끌어 돌려서 곡식을 찧고 빻는다.
  3. 병자호란은 1636년에 후금에서 청으로 국호를 변경한 여진족이 처들어 온 사건으로 여기에서 언급한 후금을 말한다.
  4. 삼학사(三學士) -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화이를 반대한 주전론을 주장한 평양 서윤(庶尹) 홍익한(洪翼漢), 교리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를 말한다. 이들은 이후 1637년 청나라에 붙잡혀 갔는데, 심양(瀋陽)에서 윤집과 오달제는 서문(西門) 밖에서 처형당하였다. 홍익한은 10일에 이미 처형당했다는 설이 있고, 윤집과 오달제와 함께 처형당했다는 설도 있다.
  5. 칭신(稱臣) - 스스로 친하라고 자처함, 신하로서 임금의 명령에 복종함
  6. 기전(其前) - 지난날 또는 지난날의 어느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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