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8일 월요일

[범용기 제4권] (6) 서장 - 원형(Prototype)

원형(Prototype)

 

(1) 인간의 원형

 

인간이 타락했다”, “크리스챤이 타락했다등등의 말을 듣는다. 타락했다는 것은 타락이 이전의 원형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일 것이다. 원형이란 것은 이미 타락한 것들 중에서 비교적 나은 타입의 사람을 골라잡는다는 과정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중국에서 요[1], [2], [3], [4] 등 과거의 성군(聖君)들을 이상화하여 그 과거에 황금 옷을 입히는 일이라든지, 서양 사람들이 미래에 유토피아[5]를 그리면서 그 꿈의 화려한 옷자락 속에 감싸여 감미로운 영탄[6]에 젖는다든지 하는 방향에서 발굴된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도의 차는 있을지 몰라도 인간의 타락태()는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원형은 진짜 원초, 즉 타락 이전에서 찾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놀랍게도 우리는 그것을 창세기 1장에서 발견한다. 하느님이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감에 사람을 만드셨다. “자 이제 우리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를 천지만물의 관리자로 삼자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이다. 하느님 자신은 아니지만 그의 이미지. 이것이 인간의 원형이다. 하느님을 닮은 존재다. 하느님은 범죄자가 아니다. 인간도 죄인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죽지 않으신다. 인간도 죽어야 할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인간도 영의 질서에 속해 있다. 하느님은 계시의 필요에 따라 몸으로 나타나신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 공간의 제약에 예속된 몸이 아니다. 그것은 영의 몸이다. 인간의 몸도 그 원형에 있어서 영의 몸이다. 역사 안에서 살다가도 어느 기간 지나면 죽음을 거치지 않고 하늘의 질서에 승화하는 몸이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되기 위한 원초적인 조건인 자유를 자기의 육적 동물적인 자연질서에 바쳤다. 그래서 그는 영의 질서에서 자연 질서의 신진대사법칙에로 떨어졌다. 이것을 성서에서 타락”(Fall)이라 했다.

원형에서 추락됐다는 말이다.

[1980. 4. 23.]

 

(2) 크리스챤의 원형

 

크리스챤이 타락했다고들 한다. 그것 역시 크리스챤으로서의 원형에서 미끄러져 추락했다는 뜻일 것이다. 따라서 크리스챤이 크리스챤격을 회복한다는 것은 그 원형을 되찾고 터전삼아 삶을 재건해 가는 것을 말함일 것이다.

그 원형이 어떤 것이냐? 원래 크리스챤이라는 이름은 초대 교회(사도 시대)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붙은 별명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때 거기 교인들이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서 어느 누구에게나 만날 때 인사말부터 그리스도의 평안을 묻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했기 때문에 저것들은 그리스도쟁이다하고 놀려댔던 것이 신자들의 자랑스런 이름으로 정립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수가 메시아 즉 그리스도란 것을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인 즉 크리스챤이다. 따라서 크리스챤이란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뜻이 된다. 그들의 제일차 충성 대상은 그리스도다. 우리의 삶이란 엄숙한 결단과 선택의 연속인데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크리스챤의 결단이어야 한단 말이다. 크리스챤이 세상에서 대접받을 때에는 결단 이전에 벌써 이 별명을 자랑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챤이 푸대접 받고 숨잖으면 생존마저 약속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문제가 아주 달라진다. 이때에는 목숨 걸고 결단하며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크리스챤의 탄생고라 하겠다. 수에 있어서 다수를 기대할 수도 물론 없다. 영원한 마이너리티가 그들의 운명이며 동시에 사명이다. 가령 우리의 현존사회 구조 속에서 획득욕, 지배욕, 명예욕 등등을 비웃어 버리고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의 옳으심을 증언하기 위해서 가정의 보금자리 대신에 감옥을 택하고 자유여행 대신에 연행을 택하고 고관[7] 대신에 죄수됨을 택한다면 그것은 초대 로마교인들이 카타콤[8]을 택한 것보다 더 어려운 선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형()인 경우, 원형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심판할 것이다.

[1980. 5.]

 

(3) KOREA의 원형

 

일전 어떤 모임에서 Korea를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대하여 논의가 구구하였다. “민족명에 있어서도 일치를 보기가 어려웠다. Korea를 한국, 조선, 고려 등등으로 불러봐도 각기 제 나름대로의 표딱지가 붙어서 개운치가 않다.

민족 이름으로서도 한국민족, 조선민족, 고려민족, 백의민족, 단군겨레, 배달민족 등등이 난립되어 얼른 골라잡기 어려웠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지만 외세에 붙어 심부름 한 기록이 너무 역력하기 때문에 께름한[9] 뒷맛이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고려는 그보다 훨씬 깔끔한 통일왕국이었기에 우리는 통일된 나라의 국호를 고려로 해도 좋다는 생각들도 있었다. Korea란 말도 고려란 데서 나온 것이기에 Korea를 고려로 번역하면 자연스러운 뉘앙스기도 하다. 그러나 Korea원형으로 좌정하기에는 너무 조무래기 판도다. 함경북도에도 손이 안 미쳤으니 말이다. 우리는 Greater Korea를 판도의 원형으로 금그려야 한다. 그래서 고구려 전성시대의 판도를 원형으로 제시하는 분도 있었다. 그것은 한반도와 만주와 연해주를 포함하는 우리 국토였기 때문이다. 민족 이름으로서는 배달민족이 제일 무난하다는 결론이었다.

어쨌든 우리가 손바닥만한 남한 또는 북한에 갇혀서 조무래기 민족으로 오그러질 수는 없다. 실현성이야 있던 없던, Greater Korea를 우리 마음의 판도 안에 간직하고 그것을 염원한다는 것은 우리의 외향성을 자래우는[10] 데 영양소가 될 것이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북미주를 비롯하여 중남미, 중동, 동남아, 시베리아, 아프리카, 아라비아, 남양군도 세계 어디에나 못갈 데 없고, 못 살 데 없다는 뱃장으로 세계사 창조에 동참하는 세계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계적이고 그 정신이 세계 역사 조성의 이 되고 활력소가 되고 빛, 누룩, 소금이 됐다는 사실을 건등으로 봐 넘기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KoreaKorea의 타락형이다.

[1980. 5. 5.]


[각주]

  1. () - BC 24세기경에 활동한 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제왕. 정식 이름은 당제요(唐帝堯). 고대 황금기를 다스렸으며, 공자에 의해 덕·정의(正義) 및 이타적인 희생의 영원한 본보기로 찬양되었다. 그와 떼어놓을 수 없는 사람으로 순()이 있는데, 그는 요의 후계자로서 요의 두 딸과 결혼했다.
  2. () - 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상의 성왕. 정식 이름은 우제순(虞帝舜). BC 23세기경에 고대 황금시대의 제왕으로서, 공자는 그를 완전함과 찬연히 빛나는 덕의 상징으로 칭송했다. 요는 자기의 아들을 제쳐놓고 순을 새로운 통치자로 선택했다. 또한 그에게 두 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주어 결혼시켰다.
  3. () -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인 하나라의 시조라고 전해지는 전설상의 인물. 홍수를 다스려 나라를 구했다고 한다. 그의 탄생에 관한 많은 전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순 임금이 곤에게 홍수를 다스리게 하자, 곤은 둑을 쌓기 위해 하늘나라에서 식양이라는 요술 흙을 한 줌 훔쳤는데 이에 노한 상제가 그를 처형했다. 3년 후에 그동안 썩지 않았던 그의 몸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우라는 것이다. 우는 용의 도움으로 몇 년 간 열심히 일한 끝에 바다로 물길을 내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공으로 순에게 왕위를 물려받아 국호를 라 정하고, 중국 전역을 9주로 나누어 공부를 정했다.
  4. () - BC 18세기경에 활동한 중국의 황제. 성탕ㆍ태을이라고도 한다.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상, 즉 은(BC 18~12세기)나라를 세웠다. 역사상 실제 인물인 탕은 신분이 높은 가문의 후예였던 것으로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신화적 인물인 황제의 후예라고 한다.
  5. 유토피아(Utopia) - 이상으로 그리는 가장 완벽하고 평화로운 사회
  6. 영탄(詠嘆) - 마음 깊이 감동하여 탄복함
  7. 고관(高官) - 직위가 높은 관리
  8. 카타콤(catacomb) - 초기 그리스도교 교도의 비밀 지하 공동묘지. 교인들의 매장 장소일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피해 예배를 보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9. 께름하다 무언가 석연치 않아 언짢은 데가 있다.
  10. 북한에서는 기르다키우다에 못지않게 자래우다를 문화어로 널리 사용한다. ‘자래우다자라다에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자래우다자라게 하다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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