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8일 월요일

[범용기 제4권] (5) 서장 - 자유라는 것

자유라는 것

 

인간이 자유를 원한다는 것은 인간이 이것 저것 다 갖고 있는데 거기다가 자유까지 곁들어 갖고 싶다는 분수 밖에 욕심이 아니다. 자유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기 위한 존재로서의 원초적인 조건이다. 인간이 자유를 잃으면 주체노릇을 못한다. 자기가 객체화한다. 그래서 힘센 녀석의 종이 되기도 하고 폭력배에게 전당[1] 잡힌 전당포 물건도 된다. 어떤 깡패 두목은 무섭게 독재한다. 그러면서 나는 선의의 독재자다”, “내가 너희를 잘 살게 해 준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차관[2]도 얻어주고 산업도 일으켜서 벼락부자 몇 놈이 생긴다. 가난뱅이가 갑자기 부자되며는, 들떠서 돈 귀한 줄 모른다. 돈 한 푼이 인간들 피의 응고체란 것을 모른다. 그래서 그 돈이 살인, 강도, 탕녀, 잡귀들 바지가락 치마자락에 흘러들거나 아니면 독재자 자신의 도물시장[3]에 바쳐진다. 그래도 워낙 긁어 쌓은 노적가리[4]가 크니까 그 정도로서는 바닥이 안 난다. 나라 재산이 온통 자기 사유물인줄 아는 독재자는 질투를 느낀다.

네 놈이 누구 덕에 부자 됐는데! 독재하려면 돈이 한없이 든단 말야! 이리 좀 가져와!” 몇 억 실어간다. 독재자 버릇은 갈수록 나빠진다. “선의로서는 독재가 안된다. 권력에 중독되고 권력중독은 돈이란 캠풀 주사를 맞아야 한다. 권력중독이나 아편중독이나 마찬가지다. “이놈아 그 주사약, 그 제조공장 할 것 없이 몽땅 갖다 바쳐”, “안 바치면 뺏는다. 안 뺏기려면 죽는다”, “죽이고서 뺏는다.”

그래서 이병철은 삼십분 안에 문화재단이나 문화방송이니 하는 것들을 고스란히 뺏겼다. 독재자가 어떤 녀석을 살지게 잘 먹여 길렀다면 그건 자기가 필요한 경우에 잡아먹기 위한 가축으로서의 사육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한번 자기의 자유를 뺏기면 그 하회는 인간상실인 것이다.

창세기를 읽어보라. 인간은 하나님의 이미지로 지어졌다. 하나님은 자유다. 하나님 위에 앉아서 하나님을 이래라 저래라 할 더 슈퍼한 존재는 없다. 인간이 하나님 형상이라면 인간은 자유다. “자유없이 인간일 수가 없다.

하나님이 주신 인간자유는 그 자유를 갖고 하나님을 반역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순종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의 자유다. 선택의 자유가 그 근원에서 부정됐다면 그건 자유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것은 로버트. 로버트나 콤퓨터가 아무리 영리해도 인간이 만지작거리는 단추며 키이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지 생물은 아니다.

예수가 열두 제자를 택했다. 그 중에는 가룟 유다가 섞여 있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시골 사람이었지만 유다는 도시인으로서의 스마트한 인간이어서 의 값어치를 알고 있었다. 그는 예수를 ” 30에 팔았다. 그런데 예수는 그걸 눈치 챘으면서도 제재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배반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는 유다의 자유선택을 억제하지 않았다.

예수에게 있어서는 인간으로서 반역하는 유다가 기계로서 순종하는 유다보다 더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가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창조주 하나님은 더 큰 경륜으로 그것을 인간 구원의 십자가에 포함시켰다.


[각주]

  1. 전당(典當) -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맡긴 물건을 마음대로 처분하여도 좋다는 조건하에 물건을 담보로 돈을 꾸어 주거나 꾸어 씀
  2. 차관(借款) - 한 나라의 정부나 기업, 은행이 외국 정부나 공적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려 옴
  3. 도물(盜物) - 훔친 물건
  4. 노적가리 곡식 때위를 한데 수북이 쌓아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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