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쪘다, 말랐다
한 서너 달 전부터 배가 뚱뚱하고 아랫배가 나오고 아랫도리와 발은 팽팽하다. 낯도 어딘가 살이 붙은 것 같았다. 양복저고리 단추가 안 걸리고 양복바지 춤이 번다. 헐렁이던 구두가 작아서 걷기 거북하다.
“요새 신색이 아주 좋아지셨어요! 기쁩니다”, “제발 오래오래 사셔야지요” 하고 다들 좋아한다.
밤 잘 동안엔 발을 높이고 눕는다. 아침에 보면 홀쭉해진다. 일어나 앉으면 또 뚱뚱이다. 겉 모양으로서는 무슨 부유층이나 VIP같다.
그런대로 나는 L.A., 일본, 서독 등지에 두 달 장기여행을 떠났다. 5월초에 돌아온 나는 지쳤달까? 몸 전체가 팽팽할 정도다. 왜 그런지 알아나 보자고 전문의 Dr. R. KIM을 찾았다. 좀 복잡하니 “Doctors Hospital”에 입원하란다. 오만가지 검사가 반복되며 계속된다.
위장에 물이 찼으니 우선 물을 배설해야 한단다. 하룻밤 쉴 새 없이 가스와 물이 폭포가 된다. 아침에는 ‘위’도 ‘아랫배’도 ‘홀쭉’이 됐다.
나는 병상에서 내 손을 본다. 늘어났던 가죽은 늘어난 데로 결이 서서 늦은 가을 애호박처럼 홀쪽하게 까칠다. 가죽 속 핏대는 낙엽의 엽맥같이 드러난다. 몸 어디에도 윤기는 없다. 이제 젊음은 갔다. 아무도 나를 젊달 사람은 없겠다.
병원에서 최종 종합진단을 내렸다.
“위장보다도 간장이 문제란다.” 약 3년 전부터 만성 간염이었는데 지금 급성으로 급변하고 있다고 한다. 간에서 단백질을 만드는데 그 기능이 약해서 단백질의 부족으로 몸이 붓는 것이란다. 나는 혼자 생각했다. ‘아하, 굶은 사람이 마감판에 뚱뚱 부어 죽는 이유도 알만하다’고, 어쨌든 지금 ‘홀쪽’이 됐으니 부엇달 수는 없겠다.
특효약이란 건 없으니 식사조절이나 잘 하란다. 소금은 절대 금물이고 피곤할 정도로 일하지 말고 햇빛 잘 들고 바람 잘 통하고 조용한 방에 계속 누워 쉬라는 것이다. ‘장기전’이라고 다시다시 일러준다. “몸도 자동차 같아서 그때그때 ‘튠업’[1]해야 굴른다”고 Dr. KIM은 대수롭잖게 웃는다. 열흘 만에 퇴원했다.
그래도 80평생을 가족 돌볼 사이도 없이 교회와 사회를 섬기노라다가 지저분하게 널어만 놓고 갈 생각은 없다. 차근차근 정돈해 놓고 가야겠다.
‘민통’이니 ‘유엠’이니 ‘코엘리션’이니 ‘민주동지’니는 몇갑절 유능한 후배들이 맡았으니 자랑스럽다. 한국에 남아 있는 한국신학대학과 ‘기장’과 ‘수난성도’들을 생각하면 눈감고 갈 수 없는 아픔이랄까! 메마른 두 손을 합장한다.
[1981. 5. 28]
[각주]
- tune up – 조정, 준비운동, 조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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