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7일 수요일

[범용기 제4권] (86) 野花園餘錄(야화원여록) - 夢見先親(몽견선친)

夢見先親(몽견선친)

 

1981629일 새벽의 꿈이다. 옛날부터 晝思夜夢(주사야몽)이라 하여 낮에 생각하던 것이 밤에 꿈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의 독립성이나 확실성은 인정되지 않았다. ‘알맹이없는 공론꿈같은 얘기라고 한다. “空想的(공상적)平和主義者(평화주의자)”妄想的(망상적)軍拡論者(군확론자)”를 공격하는 요새 사람들의 악담(惡談)거리로도 인용된다. 현실주의자의 눈에 비친 이상론자도 같은 단어에 걸린다. 어쨌든, 꿈 얘기는 실없는 얘기와 동의어다. 그래서 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서에서 보면 이 하나님의 계시로()로 쓰여지는 경우도 있다. 아브라함의 얘기에도 나오지만, ‘아기 예수탄생설화도피등등에서 주의 사자가 에 요셉에게 나타나”(마태 2:13) 등등하는 구절이 여기저기 있다. 그런 은 잊어지지 않는다. 잊을 수 없는 꿈에는 뭔가 예표’(豫表)가 품겨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서론이 길어져서 미안하다.

이제 629일 새벽의 꿈을 계속 얘기하련다.

 

내가 자란 창꼴집 앞 시냇물이 불어서 어지간한 같이 됐는데 저쪽 언덕에 선친께서 서 계셨다. 나는 큰 바위 밑이 물에 패여서 새파랗게 깊은 물함정같이 된 그 가장자리 얕은 여울을 돌맹이에서 돌맹이에로 조심조심 건너 뛰어 저쪽 언덕 선친 계신 고장에까지 갔다. 선친의 안색은 그리 해피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말씀하셨다.

네가 보고싶어서 왔다. 이제 너를 봤으니 나는 간다!” 그리고서는 훨훨 옷자락을 날리면서 어디론가 가신다.

 

나는 급성간염으로 누워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이런 이 내게는 예표적인 인상을 남긴다. 죽지는 않을 거란 예표라고 해두자.

비슷한 예표적인 인상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꿈이 아직도 둘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말기 서울에서 쫓겨 도농에서 지낼 때였다. 큰소리치던 일본이 발악하며 몸부림치던 초기였다. 꿈에 나는 내가 산 1,500평 감자밭 가운데 호미놓고 서 있었다. 갑작스레 일본천황(소화)과 독일의 히틀러가 나 있는 고장에 오더니 나를 부둥켜안고 운다. “우리와 우리나라는 이제 어쩌란 말이요!” 하며 통곡한다. 나는 그들을 껴안고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일본도 독일도 그리 낙심하지 마시오격려해 보냈다. ‘소화는 나와 나이가 동갑이고, ‘히틀러는 훨씬 아래다.

 

또 하나는 625 몇 달 전에 이다. 나는 전농동 어느 언덕바지[1] 높은 곳에 서 있었다. 서울 시내를 바라봤다. 갑작스레 밀려든 싯벌건 진탕물이 서울을 흙탕물 호수로 만들었다. 남산 꼭대기가 약간 머리를 치밀었을 뿐이다. 그런데 얼마 서 있는 동안에 흙탕물은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개천, 논 도랑 할 것 없이 물이 흐를 수 있는 물곬[2]에는 어디서나 흙탕물이 곤두박질하며 빠져나간다. 길이 나타나고 논, 밭도 집도 물속에서 얼굴들고 나온다. 나는 나타난 길을 걸어 서울에 들어간다. 목이 마른다. 간데마다 흙탕물곬이니 은 한량없이 많다. 그러나 마실 물은 없다. 더러운 죽음시즙’(屍汁)[3]이다. 마실 수 있는 은 역시 남산 약수터 바위틈에서 한방울씩 졸졸 흘러내리는 맑고 단 약수다. 그것이 생명샘이다. 나는 625 동란이 끝난 오랜 후일에사 이것이 이북남침에 대한 예표였구나 했다. 그리고 공산주의와 기독교를 비겨보며 뭔가 사명같은 걸 느끼기도 했다.

 

또 하나는 625 동란 직후 일이다. 교수사택들 짓기 전에 나는 학교 구내에 헐리다 남은 오막살이 초가집에 먼저 와 있었다. 수십 년 전부터 고질인 이질이 심해져서 [4]가 걸레짜듯 뒤틀린다. 난도질 하는 것 같다. 그 도수가 점점 잦아진다.

 

하루는, 역시 비전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집 앞 행길 복판에 거지상여 같은 사람 키 절반만큼 높이의 담가(擔架)[5]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내가 누워있었다. 그런데 어떤 여인이 내 옆을 지나 골짜기 절당께로 간다. 그의 낯은 아주 무표정이고, 시체같이 검푸르다. 그는 내 얼굴에 지극히 의례적키스를 하고서는 나를 떠나 제갈데로 갔다. 나는 , 저것이 죽음의 여신이구나!” 하고 직감했다. “죽음의 여신이 작별키스하고 갔으니 나는 그의 포로가 아니다. 그의 길동무도 아니다하고 혼자 생각했다. 그것도 잊지 못할 예표로서의 꿈이었다.

 

[1981. 6. 30]


[각주]

  1. 언덕바지 언덕의 꼭대기
  2. 물곬 한 방향으로 트여 물이 빠져나가는 길
  3. 시즙(屍汁) - 송장이 썩어서 흐르는 물
  4. - ‘창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
  5. 담가(擔架) 천 따위의 양쪽 끝에 긴 채를 대어 앞 뒤에서 두 사람이 맞들고 다니도록 만든,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실어나르는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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