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7일 수요일

[범용기 제4권] (93) 野花園餘錄(야화원여록) - 覇道(패도)의 “쌤풀”

覇道(패도)쌤풀

 

진시황의 통일천하이패제패”(以覇制覇)의 더 강한 패도(霸道)였다. 민심이 그를 따르지 않았다. 중국은 대야에 담긴 물이 아니라, 술렁이는 대해(大海). 진시황의 천하바다, ‘연못이 아니었다. 만리장성을 쌓고, 중앙집권을 제도화했지만 바다는 잔잔하지 않았다.

위선[1], 한패공 유방(漢沛公)[2]과 초패왕 항우[3]가 내란경쟁을 벌였다. 누가 먼저 아방궁[4]에 쳐들어 진시황을 암살하느냐가 그들 승갱이[5] 목표였다. 무궁무진한 권모술수다. 우리나라 장기도 그걸 본딴 노름판()이다.

항우도 유방도 학()의 사람은 아니었다. ‘항우()이란 제성명 쓸 줄 알면 된다고 호언한다. 고리타분한 학자들이 싫었던 것이다. 필요한 경우에 불러다 쓰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항우는 천재적인 군인이었다. 힘은 산을 뿌리채 뽑을만하고 기백은 천하를 휩쓸만했다. 싸우면 못이긴 일이 없고 침입해서 쫓겨난 예가 없다. 그런데 그는 보오스기질이 없었다. 자기 과신 때문에 부하를 멸시한다. 유능한 인사를 의심한다.

유방능구렝[6]었다. 모든 일에 무리가 없었다. 반대의견을 들어준다. ‘항우의 진영에서 빠져나온 유능한 장성들을 무조건 환영하여 더 높은 직위에 임명한다. 그는 ‘Battle’에서 항우에게 진다. 그러나 ‘War’에서는 이겼다.

항우는 완전포위를 당했다. 달 밝은 밤이었다. 그는 두 애처를 끼고 단기로 포위망을 뚫어 탈출했다. 고향땅에 가려고 오강가에 왔다. 자기를 포위한 군단에서 회향의 노래가 울려 달밤의 진지를 일렁인다. 그것이 모두 초나라민요였다. ‘항우는 자기 병정에게 포위된 것을 알았다. 그는 마감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力拔山氣蓋世[7]의 노래다. “내 이제 무슨 면목으로 고향에 갈꺼냐?” 그는 칼을 빼어 두 애처를 자르고 타고 온 말 목을 베이고 칼끝을 돌려 자결했다. ‘사면초가[8]란 여기서 나온 말이란다.

중원유방의 손 안에 굴러들었다.

 

[1974]


[각주]

  1. 위선(爲先) - 다른 것에 앞서서
  2. 유방(劉邦) - 중국 한나라 초대 황제(BC 256~BC 195, 재위 BC 206~BC 195)의 본명. 자는 계()이며, 묘호(廟號)는 고조(高祖), 능호는 장릉(長陵)이다. () 땅의 농민 출신으로 진나라 2세 원년인 기원전 209년에 난을 일으켜 패공(沛公)이라 칭하였으며 기원전 206년에 국호를 한()이라 하고 왕이 되어 약 5년여에 걸친 항우와의 초한 전쟁 끝에 기원전 202년 해하성에서의 싸움을 끝으로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였다.
  3. 항우(項羽) - 중국 진()나라 말기의 장수이며 진을 멸망시킨 인물. 이름은 적()이며 자는 우()이다. 기원전 209년에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쳐서 멸한 다음, 옛 초나라의 패왕(覇王)이라 자처했다. 뒤에 유방과 패권을 다투다가 해하(垓下)에서의 전투에서 대패하여 자살했다.
  4. 아방궁(阿房宮) -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위수(渭水)의 남쪽에 세운 호화롭고 거대한 궁전.
  5. 승갱이 - ‘승강이의 방언
  6. 능구렝이 - ‘능구렁이’(파충류 뱀과에 속한 종)의 비표준어
  7.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 힘은 산을 뽑고, 기상은 세상을 덮을 만함
  8. 사면초가(四面楚歌) - 아무에게도 도움이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을 이르는 말. 초나라와 한나라의 싸움에서, 초패왕 항우가 한 고조의 군에 패하여 해하에서 사면이 포위되었을 때, 한나라 군사 쪽에서 들려오는 초의 노래를 듣고, 초나라 군사가 이미 항복한 줄 알고 놀라서 애첩 우미인과 함께 자결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사기(史記)<항우본기(項羽本記)>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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