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8일 목요일

[범용기 제5권] (1) 북미유기 제7년(1980년) - 설날과 그 언저리

[범용기 제5] (1) 북미유기 제7(1980) - 설날과 그 언저리

 

198011옛날 중국식으로 말한다면 호지(胡地) 땅이겠지만, 자손들이 옮겨와 뿌리 밖고 대대로 살면 그게 내 땅이다.

오늘은 날이라 일가친척이 다 모인다. 모두 한복차림, 큰절이 의젓하다. 일년에 한번 한국의 뿌리”(Root)를 몸으로 가꾸는 것이다. 적어도 6천년 인연이다.

Edmonton(에드몬톤)의 이재형 박사와 분옥이 세배전화를 걸어왔다.

TV로 아마존강 상류 밀림 속의 원시인 생활상을 보았다. “다큐멘터리. 완전 나부(裸婦)[1]와 나남(裸男)이 서로 부끄러움을 모른다.

낙원생활이랄까? 그러나 마술사와 벽귀무(辟鬼舞)가 지배하는 미신사회는 새 문화의 발전과 창조능력을 마취시킨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의 미신이 그들을 밀림과 장강(長江)에 폐색[2]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높은 윤리를 본질로 하지 않은 원시종교는 그 신봉자를 본래의 원시상태에 유폐시킨다. 종교는 아편이 된다.

그러나 부단히 개혁해 가는 종교는 인간갱신과 사회개혁의 Dynamics가 되어 도덕적 영적으로 향상 전진시키는 창조성을 발휘시킨다.

서울의 관용과 정의, 그리고 손녀 명은이 외롭겠다고 전화를 걸었다. 정희는 교회에 가고 관용이 받는다. 귀에 익은 음성이고 말씨다.

할머니는 모닝싸이드 종합병원에 입원한 대로다.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3] 병원에 방문했다.

링겔병도 치워버렸고 식사도 보통 환자와 같고 위도 별고 없어 며칠 안에 퇴원되리라 한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Thornclliffe(쏜클리프)의 인철ㆍ혜원이 거처하는 애파트[4]에 들렀다.

아이들과 함께 지영이 할머니에게 새배했다. 불란서산 포도주 한잔, 세초[5]도소주[6]로서는 고급이다.

명절 때마다 나는 울적하다. 분출직전의 분화구 같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어쨌든 무언가를 어떻게나 발산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면 상당히 거친 단어들이 불쑥 치민다. 그렇다고 장검을 휘둘으며 결투할 용기도 없다. 한다면 도연명[7]귀거래사”(歸去來辭)[8]나 읊조릴까!

풍류에서 자유를 즐긴다. 그러나 도연명에게는 울타리 밑에 황국(黃菊)이 핀 오막사리[9]이라도 집이란 것이 있었는데 내게는 바람 타고 구름 따라, “방랑할 황야(荒野) 밖에 없다.

신선같이 구름 속 깊은 산에 숨어 살던 옛 은사(隱士)들이 부럽지만, 지금의 정치망 속에는 숨을 고장이 없다.

나는 연묵(硯墨)을 앞에 놓고 글씨를 쓴다.

여러 곳에서 신년 휘호(揮毫)[10]를 청해왔기 때문이다. 설익은 서예라도 그걸 흉내내면 마음 속 사념(邪念)이 사라진다.

”()에 가까운 마음가짐이 된다.

붓끝에서 흘러나오는 ”()[11]妙香(묘향)이 신비하다. 일찍 서도(書道)라도 제대로 닦았더라면! 하고 아쉰 마음이 되기도 한다.

 

[각주]

  1. 나부(裸婦) - 벌거벗은 여자
  2. 폐색(閉塞) - 닫히어 막힘
  3. 문맥상, “할머니가 있는
  4. 아파트
  5. 세초(歲初) - 새해의 처음
  6. 도소주(屠蘇酒) - 도라지, 방풍, 산초, 육계 등을 넣어서 빚은 술. 설날 아침에 차례를 마치고 마시는 찬술로,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한다.
  7. 도연명(陶淵明, 365~427) - 중국 동진(東晉), 송나라 때의 시인. 이름은 잠()이며 자는 연명(淵明) 또는 원량(元亮)이다. 29세에 벼슬길에 올랐으나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41세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 삼아 사임하고 재차 관계(官界)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 관직을 사임하면서 쓴 시()가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이후 향리의 전원에서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63세에 생애를 마쳤다. 그의 시는 사언체(四言體) 9편과 오언체(五言體) 47편이 전해지고 있는데, 따스한 인간미와 고담(古談)의 기풍이 서려 있다.
  8. 중국 진()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의 대표적 작품. 그가 41세 때, 최후의 관직인 팽택현(彭澤縣)의 지사(知事) 자리를 버리고 고향인 시골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이다. 4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마다 다른 각운(脚韻)을 밟고 있다.
  9. 오막살이의 오기
  10. 휘호(揮毫) - 붓을 휘둘러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림
  11. () - 향초의 이름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