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8일 일요일

[범용기 제5권] (106) 요꼬하마에 - 오가는 친구들

[범용기 제5] (106) 요꼬하마에 - 오가는 친구들

 

825() - LA의 이하전, 김성락[1], 토론토의 최홍희[2] 장군 등이 전화 또는 편지로 문병한다.

경동교회 학생반에서 자라난 현 고대교수 김용기 박사가 내방하여 투시적인 시국비판과 숨은 뉴우스를 전해준다.

이 목사 집에 유숙했다.

 

[각주]

  1. 김성락(金聖樂, 1904~1989) - 장로교 목사. 교육가. 신학자. 평남 평양에서 김선두 목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1924년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수료(21)했다. 그동안 평양 숭의여자중학교 교원에 재직한 바 있는 그는 1927년 미국에 유학하여 미주리주 파크빌에 있는 파크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28년 뉴저지주의 프린스턴신학원을 수료했다. 이어 예일대학에서 수학하고 1930년에 텍사스의 달라스복음신학교에서 신학박사(Th.D.) 학위 그리고 1931년 켄터키주 루이스빌신학교에서 철학박사(Ph.D.)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귀국 후 평양신학교 교수, 평양 신암(新岩)교회 목사 그리고 숭실대학 교목과 교수로 봉직했다. 1937년에 다시 도미한 그는 로스앤젤레스교회(예장)에 부임하여 20여년간 담임하였다. 그동안 1944년 사우스 캐롤라이나대학교 강사와 1957년 미국주재 한국인교회연합회장직을 역임했으며 1958년 귀국하여 숭실대학장으로 봉직했다. 1981년과 1982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에게 북한에 교회를 세울 것을 권고하였다. 1980년대 김일성은 그의 아버지 김형직이 김성락 목사와 평양 숭실학교 동문이라는 점에서 그를 자주 초청했었다고 한다.
  2. 최홍희(崔泓熙, 1918~2002) - 함경북도 명천군 출생. 국제태권도연맹이 주장하는 태권도의 창시자이다. 일본 주오 대학 법학과 1학년에 재학중이던 1944년 징용되어 평양의 42부대에서 근무하였다. 그는 조선 학병을 중심으로 전국 반일동맹 조직을 도모했다가 검거되어 6년형을 선고받아 평양 형무소에서 수감되었고 해방과 함께 풀려났다. 1959년에 대한태권도협회를 창립하였다. 1961년 박정희와 쿠데타를 논의하였으나 쿠데타 성공 후 소외되었다. 1966년 국제태권도연맹(ITF)를 창립하고 총재로 취임하였다. 1972년 캐나다로 망명한 후 유신체제 반대 운동을 펼쳤고 북한을 몇 차례 방문하였다. 2002년 평양에서 사망하고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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