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9일 월요일

[범용기 제5권] (111) 요꼬하마에 - 8순 賀宴(하연)과 범용기 제1권 출판기념

[범용기 제5] (111) 요꼬하마에 - 8賀宴(하연)과 범용기 제1권 출판기념

 

111() - 장공 80회 생일잔치와 범용기1권 출판기념회가 연합교회 친교실에서 개최된다.

80회 생일 하연은 집안 자녀들이 차렸는데 음식은 퍼피엣 System으로 해서 부근 양식집에서 맡아했고 출판기념은 한신동창들의 주최로 진행됐다. 300명 출석이었다.

내게 대한 Appriciation은 과분했다.

공개된 연회가 끝난 다음에 집안 식구들만이 Apt. 내방에 모여 얘기하고 사진 찍고 밤 10시쯤 산회했다.

막내 식구들만이 서울에 마치 인질’(人質)같이 남아서 피차 서운했다.

113() - 경동교회 강원용 목사가 Toronto에 내방하여 내 방에 왔다. 반가운 해후(邂逅).

오늘은 나의 건강관리에 대한 구체안을 자세하게 제공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전우림 장로가 공항에서부터 줄곧 안내했다. 오늘도 전 장로가 길잡이었다.

114() - 예정대로 강원룡 목사가 이상철 안내로 내 방에 찾아왔다. 군부의 부조화, 전 정권의 Deadlock, 경제부진, 악순한 우려 등이 현존한 상태다.

여기서도 다 듣고 말하는 얘기지만 직접 본국의 지성인으로서의 증언이라는데 무게가 있다.

7년 후의 정권이양이 확약됐는데, 그것이 민정이양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군인정치가 당분간은 불가피한 한국의 현실이어서 대결 일변도보다 접촉과 대화를 통해서 보다 나은 방향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 아닐까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저쪽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도 이쪽에서 이용당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사실 그가 수락한 자문위원자체가 이용당한 가짜감투가 아닐까?

115() - 김문조 선생이 나를 극진하게 아껴주신다. 누차의 방문과 전화로 나의 건강을 걱정한다. 오늘도 전화로 문안했다.

117() - 김문조, 김정근, 김병숙, 경용과 그 식구가 각기 선물을 갖고 내방했다.

1124() - 최홍희 장군과 선우학원[1] 박사 동행하여 내 방에 방문했다. 1시간 담화했다.

민중신문 기사와 선우학원의 신문사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관계에서 나의 언질을 얻기 위한 계획적 방문인 것 같았다. 이 관계는 79년도 범용기에 자세한 기록을 남겼기에 여기서는 약한다.

1125() - 3:15PM 이 목사 동행 Doctors Hospital에 갔다.

4:15PM 주치의 Dr. R. Kim을 만났다. 진단한 결과는 이러했다.

간염은 그만해 있고 배에 물이나 가스가 차는 증세는 없어졌다.

배 하부에 말랑말랑한 주머니가 생겼는데 탈장이라고 본다. 배 약한 부분에 장이 내리밀어서 그 부분이 늘어진 것이니 의약품점에서 탈장대를 사다가 동여매야 한다. 탈장부분이 굳어지고 고정되면 수술해야 한다.

여러 가지 약 화제를 타갔고 나오다가 의약품 기구점에서 알맞게 만든 탈장대를 주문했다. 하복부의 생김새에 Adjust 시켜 만들 모양이다. 양복점에서 주문자에 맞도록 재봉하기 위해 척수 재듯 한다.

1127에 이 목사와 같이 가서 찾아왔다. 거북한 감각도 없고 아주 효과적이다. 얼마든지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튼튼하다.

 

[각주]

  1. 1. 선우학원(鮮于學源, 1918~2015) - 평양 숭인상업, 동경 아오야마대 신학부를 졸업한 뒤 1938년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 전임강사, <코리아헤럴드> 주필을 지냈으며,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몸담았다. 2003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민주유공자로 초청되어 3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2016년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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