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범용기 제5권] (89) 요꼬하마에 - 금각사와 히에이산

[범용기 제5] (89) 요꼬하마에 - 금각사와 히에이산

 

48() - 안개 속에 잠긴 도성이다.

1:00PM에 나중남 목사와 함께, 양형춘 목사 Drive로 금각사와 히에이 ()” 방면으로 간다.

도중에서 Baptist 종합병원에 입원중인 최중식 목사를 심방하고 침대 가에 서서 기도드리고 히에이 ()’에 출발했다.

금각사는 귀에 익숙한 명소다. 방랑객의 탐승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장이다.

금각사의 본래 이름은 녹원사(鹿苑寺)란다. ‘경호지’(鏡湖)는 못 가운데 지은 호화한 별장으로 보인다. ()의 모습은 아니다. 사실 내력을 캐보면 이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백 50년 전 서원사공(西園寺公)[1] 가문의 私有(사유) 별장이었는데 1977[2] 아시강가(足利) 3대 장군 요시미츠’(義滿)[3] 공이 서원사(西園寺) 가문으로부터 양도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4]

요시미츠(義滿) 공은 거기에 봉황용지(鳳龍池)를 만들고 장군직에서 은퇴하자 유유자적하는 별저로 쓴 것이었다. 그가 선()불교에 열심이었던 관계로 임제선종(臨濟禪) 도장으로 제공했었다. 그가 별세한 다음에 후수미(後水尾)[5] 천황의 칙령(飭令)으로 성 관세음보살을 안치하여 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몽창국사를 권청(勸請)하여 개조(開祖)로 삼았다.

첫 층은 침전(寢殿), 둘째 층은 무사들 위한 조음동(潮音洞), 마감 셋째 층은 선종불전(佛殿), 지붕용 마루 두 끝에 금동제 봉황이 앉아 있다. 정원 경내(境內)14만 평방미터라니까 약 43천 평이고, 경호지(鏡湖池)는 약 66백 평방미터고 못 가운데는 제일 큰 아시하라(芦原)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섬들이 배치되었는데 그 돌들이 제각기 다른 종류라서 적송석(赤松) 적산석(赤山), 구산팔해석(九山八海) 등등이란다.

우리도 그 섬 돌들이 빛깔이며 성분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었지만, 이렇게 딴 이름을 갖고 있다는 데는 놀랐었다. 더군다나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모나코 나라 그레이스 켈리[6]와 그의 남편인 [7]이 구경 오는 시간과 일치되는 날이어서 임금님 행차라는 것과 당시의 명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미모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군중들과 카메라 기자들이 몰려다니는 바람에 우리는 안에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동행한 김재술 장로의 녹음기가 붙은 무비 카메라는 성공적으로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나도 몇 장면을 내 카메라에 넣었다. ‘그레이스는 나이와는 달리 역시 미인이었다.

우리는 뒤 언덕 숲속을 걸었다. 은하천(銀河), 암하수(岩下水), 용문폭(龍門瀑) 그리고 안민택(安民宅)이라는 차 한잔 마시고 길을 돌렸다. 은각사(銀閣寺)도 눈에 띄인다. 금각사는 금박을 칠해서 온통 금빛이었지만 은각사(銀閣寺)는 비슷한 모습이고 크기도 비슷한데 초가집이어서 은처럼 빛나는 게 아니었다. 그 언저리에 조그만씩한 승방(僧房)이 많다.

우리는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양형춘 목사는 히에이산() 꼭대기까지 치달린다. 전망대에서 경도 전경을 한눈에 다 보았고 산 너머의 비와꼬(琵琶湖)[8] 전경과 대진시(大津市)도 한꺼번에 보았다.

시간관계로 연력사, 서탑 등등은 과문불입으로 실례를 했다. 그러나 왔던 김에 비와꼬 호수 가에 내려가자고 내가 조르는 바람에 내리 몰아 호반 호텔 7층에서 늦은 점심, 호반에서 사진 찍고 귀로를 달렸다. 내려가 보며는 호수라기 보다 바다란 느낌이었고 수평선도 제법 바다와 하늘의 입맞춤이었다. 나는 수유리 한국신학대학 설계도를 오오미 형제단원인 한국인 건축기사가 무료로 설계해 준 것 때문에 비파호와도 인연과 친근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 본부가 비파호반에 있었기 때문이다.

동행한 나중남 목사는 역대 한일관계의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보아야 할 데를 못 보여 주는 유감을 차 안에서 설명해 주었다.

호수는 검은 장막에 덮인다.

어둠은 모든 명승(名勝)을 검은 보자기에 싸갖고 달아난다.

Hotel 7층에서 저녁 먹고 곧 떠나 경도에로 달렸다.

6:00PM에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에는 한국어로 개학식이 있어서 조마조마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들 학교지만, 어른 한국어 학교도 있었다. 한국 2, 3세만이 아니라 일본인도 섞여 있다.

한국에 발전하려는 일본인들이다.

나는 말씀에 생명이 있다”(요한복음 1:1)를 제목으로 강연인지, 설교인지, 개강 Speech인지, 이 모든 것을 겸한 두리 벙벙한 강연(?)을 시도했다.

용어는 일어만으로 족했다.

 

[각주]

  1. 사이온지 긴쓰네(西園寺公経)는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 전기의 공경이다.
  2. 1397년의 오기
  3.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満, 1358~1408, 재위 : 1368~1394)는 일본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이다. 봉호는 일본국왕(日本国). 부친은 2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라(足利義詮), 모친은 기노 요시코(紀良子)이다. 남북조의 분열을 통일하고 유력 슈고 다이묘의 세력을 억제하여 막부의 권력을 확립시켰으며, 긴카쿠지(金閣寺)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로쿠온지(鹿苑寺)를 세워 기타야마 문화(北山文化)를 개화시켰다. 쇼군의 직위에서 물러난 이후엔 출가하였으나, 여전히 배후에서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요시미쓰는 쇼군의 저택을 무로마치(室町)로 옮겼기 때문에 무로마치도노(室町殿)라고도 불리기도 하였다. 이것이 뒤에 아시카가 가문의 쇼군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호칭으로 정착하여, 정청을 겸한 쇼군 저택은 후의 역사용어로서 무로마치 막부, 아시카가 쇼군이 통치한 시대는 무로마치 시대라고 불리게 되었다.
  4. 로쿠온지((鹿苑寺)는 본디 사이온지 긴쓰네의 별장으로 키타야마다이(北山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후 1397년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은퇴 후 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현재의 정자를 짓고 관련 시설들을 만들었다. 이후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죽자,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이 건물을 린자이 학파의 선불교 사찰로 그 용도를 바꾸었다. 이후 오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사찰과 함께 정자와 모든 건물들이 전소되어 버렸고, 이후 복원되었다.
  5. 고미즈노오 천황(後水尾天皇, 1596~1680)은 일본의 제108대 천황(재위 1611-1629)이다. 에도막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딸을 황후로 맞이하였다. 호칭의 유래는 56대 천황 세이와 천황(清和天皇)의 별칭인 미즈노오노미카도(水尾帝)에서 따왔다. 1611년부터 1629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대리청정하였다.
  6. 그레이스 퍼트리샤 켈리(Grace Patricia Kelly, 1929~1982)는 미국의 배우이며 모나코의 대공 레니에 3세의 대공비(大公妃)이다. 1950, 20세의 나이로 연기를 처음 시작한 후 그녀는 뉴욕에서 연극과 생방송드라마에 출연하였다. 195310, 모감보를 통해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1954,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회상 속의 연인을 비롯해 5개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였으며, 골든 글로브상을 탔다. 26살에 연예계 은퇴를 하고 모나코로 가게 된 그녀는 모나코 공녀 카롤린과 알베르 대공, 그리고 스테파니 공주를 낳았다. 또한 그녀는 미국 시민권과 모나코 시민권을 둘 다 유지했다. 1982913, 자동차를 운전하던 도중 갑작스런 발작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당했고, 다음날 사망했다. 차에 같이 타고 있던 그녀의 딸 스테파니 공주는 살아남았다. 19996월 미국 영화 연구소가 선정한 미국영화의 전설적인 50명의 배우 중 한사람으로 선정되었다.
  7. 레니에 3(Rainier III de Monaco, 1923~2005)는 모나코의 대공(Prince)이다. 프랑스 귀족 폴리냑 가문 출신 피에르 드 폴리냑과 루이 2세의 딸 샤를로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우자는 미국의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이다. 1949년 외조부 루이 2세로부터 왕위를 승계하였고, 2005년까지 재임했으며 아들인 알베르 2세가 그의 왕위를 이었다.
  8. 비화호 - 시가현에 있는 일본 최대의 호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