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6일 월요일

[범용기 제6권] (1) 첫머리에

[범용기 제6] (1) 첫머리에

 

노오트를 뒤져 보면 그때, 그때의 수요에 따라 적어 놓은 초고들이 다듬지 않은 그대로 버려져 있습니다.

설교라기에는 너무 속되고 논문이라기에는 너무 짜임새 없고 감상문이라기에는 너무 윤기가 없는 글들입니다.

그러나 잘났든 못났든 내가 낳은 자식들이기에 쓰레기통에 쑤셔 넣기는 안됐고 불에 사루기에는 너무 잔인해 보이고 해서 설화란 가벼운 제목 밑에 묶어 본 것입니다.

 

이 글들이 체계선 사상이 아님은 두 말 할 것도 없겠습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지꺼린 거짓말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이 글들을 뒷받침할 Footnote 깜도 없습니다. 얼마의 재료를 모았던 것은 서울의 수유리 장막에 두고 왔으니 여기서는 없으나 다름없는 공백입니다.

그것도 그러려니와 80고개 넘은 지도 수년되는 나이에 무슨 Footnote이란 남의 글, “잔반부스러기 줏기도 쑥스럽고 해서 잘되나 못되나 내 기억과 당한 사건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본 것입니다.

 

이 글들은 그리스도를 표적으로 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기독신자라는 Bias[1] 때문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성취의 goal, 또는 행진의 Target을 정하고 일해야 한다는 상식에서 그러한 것입니다. 유학자는 공자님, 불교도는 부처님을 goal로 보며 달리겠지요. 그와 같이 기독교도는 그리스도를 표대로 삼고 다름박질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Bias가 아닌,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상에서 참 인간이면서 참 하느님인 신인격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이가 절대사랑의 실증을 살고, 죽고, 다시 살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살리는 일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현실주의자들은 네가 너무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다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비전이 없으면 백성이 망한다는 것도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나는 펴내는 것뿐이고, 그 반응은 읽는 이들의 자유입니다. 한 날의 수고는 그날로 족한 것입니다. 망언을 용서하십시오.

 

[1983. 長空]

 

[각주]

  1. bias : 편견, 치우친, 편파적인,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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