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6일 목요일

[십자군 제1권 제1호](1937년 5월호) 독서편감(讀經片感) - 전영택

[십자군 제1권 제1](19375월호) 독서편감(讀經片感) - 전영택

 


독서편감(讀經片感)

전영택(田榮澤, 1894~1968)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길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아들이 될수 있을가 우리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로라고 할수 있을가. 오직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야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바지의 아들이 되리라(마태 43)

 

형제로 더브러 원수를 지어 서로 미워하는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이 될수 있을가. 형제가 형제로 더브러 눈을 흘기고 싸우면서 하느님 아부지라고 불으지 말라.

 





예수를 따르는 길

 

예수를 믿는 것이 쉬운 줄 알고 아모 각오와 결심이 없이 달려들어 내가 예수를 따르겠노라고 하지 말자. 남과 같이 뜻뜻이 평안이 자고 배불리 먹어가면서 예수를 따러 뷸라는 것은 큰 잘못이다. 하물며 더구나 큰 집에 침대에 양식에 거드러거리면서 해뷸라는 것이랴 예수를 따를랴면 편안이 잠도 못자고 배골고 그리고 아바지 어머니와 처자의 일은 잊어버리고 내버려야 한다.

 

한 서기관이 예수께 나아와서 선생님이어 어데로 가시던지 저는 쫓이리이다예수 일아사대 여호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하셨다. (마태 18 10)

 

제자중에 또 하나이 갈아대 주여 나를 용납하야 몬저 가서 부친을 사장하게 하여 주옵소서하니, 주 갈아사대 죽은 자로 저히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쫓이라하셨다.

 

죽은 자나 죽을 자나 거진 같은 것이다. 죽은 자는 육이다. 썩을 육의 일은 죽은 자가 할 일이다. 생명 있는 자가 할 일이 아니다. 썩은 일을 위하야 사는 자는 죽은 자다. (마태 21 22)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일은, 내가 할 일을 다 마처놓고 할 일은 못된다. 내 할 일을 집어던지고 할 일이다.

 


처음 마음

 

누구든지 너히를 영접지 아니하거나 너이말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집이나 성이나 떠날적에 너이 발의 몬지를 떠러버리라(마태 10) 하신 것은 아모리 생각해도 예라 이놈의 집에서 묻은 몬지도 더럽다하면서 성이나서 터러버리고 오라고 하시는 뜻은 아닐 것 같다.

 

들어갈 때와 같이 깨끗한 마음으로 나오지, 좋지 못한 감정 곧 분노와 저주의 마음으로 나오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은 다 터러버리고 처음 들어가든 때 같은 좋은 망므으로 나오라는 것일 것이다.

 

사람이 끝끝내 처음마음을 가지기가 어렵다.

 



율법과 사랑

 

요새 우리 교계에서는 너머도 의식, 교리, 헌법을 치중하고 인간의 실정은 도라보지 아니한다. 율법과 교리만 치중하야, 이단이니, 계명을 범하느니 하고 사랑은 없는 것이 꼭 옛날 바리새 교인 같다고 볼 수 있다.

 

안식에 예수 밀밭새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시장하야 이삭을 갈라먹더니 바리새교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기를 선생님의 제자가 안식에 합당치못한 일을 합니다하거늘 예수 갈아사대 나는 자비함을 기뻐하고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로세아 )하신 뜻을 너이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태 十二 1-8)

 

요새 사람들이 마태복음이라도 잘 읽었드면 걸핏하면 사람을 정죄하랴고 하지 아니할 것이다.

 





악하고 음난한 세대

 

주께서 천국 복음을 가라치시기와 병자를 고쳐주시기에 많은 이적도 보이셨고 성심성력을 다하시고 무진 애를 쓰셨다.

 

그래도 서기관과 바리새교인중에서 누가 말하되 선생님이어 우리가 이적을 보고저 하나이다하니 예수 대답하사대 악하고 음난한 세대가 이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이적밖에는 뵈일 것이 없나니라(마태 十二 38 99 十六4)

 

예레미야는 그때 세대 사람의 마음을 비하야 반석이라 하였다. 오늘날의 인간은 완악한 정도가 반석 이상이니 강철이라고 할가 어름덩이라고 할가(마태 十三 14 15을 보라)

 

이렇게 완악한 인간에게도 만일 히망이 있다면 보여줄 것이 있다면 죽는 것이오 땅속에 들어가 썩어지는 일이 있을 뿐이다.

 

너히가 듣기는 들어도 도모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모니 아지 못하는 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해저서 귀가 막히고 눈이 감겼으니...한 것은 또한 오늘날의 인간의 정래를 말한 것이 아닐까. 그들은 누구의 피를 보아야 누가 썩어져서 냄새나는 것이나 보아야 좀 움직임이 있을는지?

 



무서운 시기

 

시기는 무섭다. 시기는 예로부터 많은 의인의 피를 흘렸고 의인중의 의인인 예수의 피를 흘렸다.

 

그 사람들이 시기하야 예수를 잡아 온줄 앎이러라(마태 二十七 18)

 

- 인생들아 세례 요한의 마음을 배우고 사도 바울의 마음을 배우자.

 

세례 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할지니라(요한 30) 하였고, 바울이 고린도 교인에게 한 말슴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히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히는 강하고 너히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야...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때같으리라(고전 10 13)

 

[십자군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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