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3일 수요일

[범용기 제1권] (107) 조선신학원 발족 - 선계 결혼하고

선계 결혼하고

 

맏딸애 선계가 정신여고를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어떤 기관에 취직하든지 결혼하든지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대로 징발되 가기 때문이다. 어떤 공장사무실에 취직이라고 했다. 그애는 비교적 잘생겼고 한참 예뻐질 연령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직장 그만 두었어요한다. 이유인즉 주인이라는 젊은 사람의 눈치가 이상해서 일찌감치 그만두는 게 안전할 것 같아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속히 결혼시키기로 했다. 그 당시 내 큰 조카(利鏞)가 하르빈 합작사(合作社)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하르빈 의대에 재학 중인 신영희를 좋게 보고 선계신랑감으로 점찍어 두었다 한다. 신영희는 내가 간도 은진중학교에서 가르친 학생이고 나도 그의 진실한 성격과 신앙을 알고 있었고 머리도 총명해서 언제나 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사위감으로 생각해본 일은 없었다. 큰조카는 하르빈서 오래 사귀는 중에 그만하면 만점이라고 추천해 왔다. 좋다고 나는 그를 도농에 불렀다. 그가 하르빈 의대를 졸업하고 공주령에서 공의로 있을 때였다.

아예 결혼하러 온 것이다.

선계는 초대면이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둘이 자유로 교제할 수 있도록 일부러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신영희는 우리 집 건넌방에서 유하게 했다. 아내 말에 의하면 신영희가 온, 첫날 저녁에 선계는 엄마와 함께 신영희 방에 들어가 인사하고 처음 만나봅니다만, 저에 대한 첫 인상이 어떠십니까? 아예 싫으시면 여기서 솔직하게 말씀하세요. 그리면 저도 말씀드릴께요하더라는 것이다.

마음에 듭니다하고 신영희가 대답하자 선계도 저도 그랬습니다. 연분인가 보아요하더라는 것이다. 이건 내가 학교에서 오자마자 아내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그게 약혼이었다. 나는 교제할 기간을 한 달가량 잡고, 다음에 의사를 물으려 했었는데 벌써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 온 김에 결혼식을 올리고 갈 적에 데리고 가라고 했다.

첫 딸이라, 이부자리며 입을 의복 몇 벌이라도 해주어 보내려고 무던히 애썼다.

솜을 살 수가 없어서 하용, 춘우, 그리고 나 넷이 한강 건너 송파 어느 농가, 장로 집에 몰래 가서 씨 뽑지 않은 목화 뭉치를 사가지고 밤을 타서 도농까지 온다. 몇 번을 그렇게 했다.

아내는 씨앗을 뽑고 솜틀집에서 솜편을 만든다.

천을 살 수도 없다. 일본 부인들 입는 하부다에[1] 등속을 일본 선생에게 부탁해서 겨우 몇 필 샀다. 그걸로 이부자리 겉을 씌웠다. 도농교회에서 김영주 목사 주례로 식을 올렸다. 신랑은 걸어갔고 신부는 가마를 탔다.

가마는 하용 조카, 재한 종제, 이춘우, 그리고 동리 청년들이 번갈아 메웠다.

피로연은 춘우가 찹쌀 한가마 사와서 인절미만은 풍성했다. 신랑 신부는 한 달인가 집에 있다가 둘이서 만주 공주령으로 갔다.


[각주]

  1. 하부다에(habutae) - 일본 특유의 견직물의 하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