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3일 수요일

[범용기 제1권] (110) 조선신학원 발족 - 해방의 기쁜 소식

해방의 기쁜 소식

 

나는 아직도 도농에 있다.

1945814일이다. 긴급방송이라면서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담화가 발표되었다. 이 농촌에도 들려온다.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숨을 모아 맥없이 말하고 있다. 일본이 항복하면 한국은 의례 독립하는 거라고 나는 다짐했다.

동리 사람들이 남녀노소 모두 통장네 집 앞 타작마당에 모였다. 나더러 이야기해 달라고 한다. 나는 이제사 애국지사 독립운동자들의 염원을 하나님이 들어주셨다고 신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느 노인 한분이 이번에는 진짜 독립이 될까요?하고 묻는다. 지금 생각하면 함축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독립은 되는데 당분간 미, , , 소 네 나라 합동위원회에서 그 업무를 감시 추진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동안에 서울 소식을 전달하는 연락원이 계속 있었기에 나는 대략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건국이념

 

그리고 하루 들어 앉아 한 크리스찬이 본 건국이념이란 글을 썼다. 주로 칼빈 신학에 근거한 것이었고 카이퍼칼비니즘을 참고했다. 급해마자서 퇴고할 사이도 없었다.

그래도 거기서 권위문제부터 다룬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나라의 권위가 정부 수반에 있느냐? 국민에게 있느냐 하는 것인데 나는 어느 편에서도 궁극적인 권위를 주장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나라권세영광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고 인간은 그분의 스튜워드며 그의 앞에 충성해야 할 책임적인 일 것뿐이라는 것이다.

 

맏딸 사위 들어오고

 

해방된 몇 일 후였던가 나는 시내로 들어가려고 도농 정거장엘 가는 중이었다.

정거장 바루[1] 못 미쳐 논둑길에서 맏딸 선계를 만났다. 혼자 허주레한 피난 보따리를 이고 주춤거리며 오는 것이었다. 도농서 신영희 의사와 결혼하고 만주 공주령에 따라가 살던 아이다. 소련군이 공주령에 진격한데서 신의사가 혼자서라도 먼저 가래서 떠나왔다는 것이다.

그때 공주령 살던 일본인들이 부녀자를 먼저 동만주 간도 방면으로 피난시키는 틈에 끼어 같은 기차를 탈 수 있었다고 한다. 자기도 그 일행과 같이 갈 작정이었지만 안동현 가까이서 갑자기 서울갈 생각이 나더라는 것이다. 그들 일행은 행동을 같이하자고 했었지만 자기는 거부하고 혼자 이렇게 왔노라 했다.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나는 감사했다. 동만주쪽으로 간 일본인 부인들은 소련군에게 유린, 강간, 강제수용 됐다가 많이들 죽고, 남은 부대는 시베리아로 강제수용됐다고 들었다.

두주일 후엔가 신영희 의사도 왔다. 공주령에서 얼마 가산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그건 철없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 동리 중국인들이 집집마다 덮쳐 약탈하고 인민재판에서 죽이고 불지르고 하는 바람에 손댈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자기는 그들에게 인심 잃은 일이 없었기에 아는 사람들의 증언으로 인민재판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도 공산당에게 간 데마다 걸렸었지만, 용케 빠져 나올 기회가 마련되더라고 한다.


[각주]

  1. 바루 - ‘바로의 비표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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