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와 북지사변
만주사변[1]이 터지고 일본 군벌의 북지[2] 침략이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동양의 풍운이 급변했다. 이승만 박사는 N.B.C. 전국 방송망을 통하여 『한국 독립의 때는 왔습니다. 모든 한국 동포는 궐기하시오』 하고 연설하셨다. 나도 들었다.
그 무렵, 미국에서는 『린드벍』 첫 애기 실종사건으로 신문 제1면이 메꿔지던 때였는데 일본의 북지진격 보도와 함께 『린드벍』 사건은 간데없고 전면이 일본 공격으로 칠해졌다. 만주사변으로 일본이 멈추었더라면 미국 여론은 거의 『무사통과』였을지 모른다. 특히 미국이 국제연맹 회원국이 아니었다는 것 때문에 미국 없는 『국제연맹의 약체성』을 드러내는 좋은 실례로 사용되기도 했다. 나는 『뉴욕타임즈 썬데이 에디션』 만주사변 특집을 읽으면서 동양에 쏟아질 소낙비를 내 피부에 감촉했다.
어쨌든 나가 봐야 하겠다고 맘먹고 여비가 생기기를 기다렸다. 아직도 방학기간이다.
[각주]
- 만주사변(滿洲事變) - 1931년 9월 일본군이 중국 둥베이 지방을 침략한 전쟁
- 북지(北支) - 중국의 북부 지방. 허베이성(河北省), 산시성(山西省), 톈진(天津), 네이멍구 자치구(內蒙古 自治區) 등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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