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3일 수요일

[범용기 제1권] (55) 미국 3년 - 어느 선교사의 편지

어느 선교사의 편지

 

하루는 난데없이 한국의 모 선교사에게서 편지가 왔다. 선교사 편지란 난생 처음이다. 편지 내용이잔즉은 네가 학업을 마쳤으니 귀국해야 할텐데 네 신학로선을 알아야 직장을 소개할 수 있겠기에 편지한다는 것이었다. 네가 근본주의냐? 자유주의? 근본주의라야 취직이 될 것이니 그렇기를 바란다. 속히 알려라……』 하는 내용의 것이었다. 사실 그는 나를 위해 한 이야기겠지만 비위에 거슬렸다. 나는 곧 회답을 보냈다.

 

『……나는 무슨 주의에 내 신앙을 주조(鑄造)할 생각은 없으니 무슨 주의자라고 판박을 수가 없소. 그러나 나는 생동하는 신앙을 은혜의 선물로 받았다고 믿으며 또 그것을 위해서 늘 기도하고 있소. 내가 어느 꼬올[1]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를 목표로 달음질 한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소. 기어코 무슨 주의냐고 한다면 살아계신 그리스도주의라고나 할까? 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경륜대로 써 주시기를 기도할 뿐이며, 또 그렇게 믿고 있소…….

 

그리고서는 편지 거래가 없었다. 얼마 안되어 그 선교사가 안식년으로 귀국, 일부러 나를 찾아, 내 씽글베드에서 같이 하룻밤 지내며 이야기를 했다.[2]

그는 단순한 편인데 모르는 게 탈이랄까? 나는 그를 신학생 그룹에도 소개하여 한국 선교 상황을 보고하게 하고 질의문답 할 기회도 만들었다. 몇 마디 대화로 통로는 막혔다. 학생들은 그가 너무 묵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각주]

  1. 목표, 목적(goal)
  2. 김재준은 회고에서 이 편지를 보낸 선교사의 이름을 밝히진 않았으나, 편지 왕래 후 얼마 안 된 시점에 이 선교사가 안식년으로 귀국(미국)했음을 밝힌 점으로 보아, 윌리엄 데이비스 레이놀즈(William Davis Reynolds, 867-1951, 한국명 李訥瑞)로 추측된다. 한 자료에 의하면 이눌서 선교사는 1917년 평양장로회 신학교 어학 교수 겸 신학지남편집인으로 있었으며, 1931년 봄 안식년으로 渡美하였다가 19324월 초 조선으로 귀국한 바 있다. 고지수, 김재준과 개신교 민주화운동의 기원, 도서출판선인, 2016,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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