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3일 수요일

[범용기 제1권] (56) 미국 3년 - 귀로에

귀로에

 

나는 몇 권 되지도 않는 책을 궤짝에 넣고 시시한 것들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짐짝은 철도 화물로 부쳤다.

 

하루는 기숙사에 Charles Le Roy라는 젊은 친구가 나를 찾아왔었다고 문지기가 전해준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다음날 또 온댔기에 기다렸다. 그는 펜실베니아 대학 상과를 졸업하고 생명보험에서 일하는 연합장로교회 청년인데 집은 시내에서 꽤 떨어져 있고 훨씬 먼 교외 농촌에 약혼녀가 있지만 아직은 미혼이어서 그는 부모와 같이 있는 처지였다. 그는 불계(佛系)로서 사교 의욕이 강한 독신자였다.

외국 학생과 친교를 맺고 싶어서 두루 알아봤는데 웨스턴 신학교에서 네 이름을 대 주더라는 것이다.

그는 만나자마자 같이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한다.

그 집에서 저녁 대접받고 약혼녀 있는 농촌 동네에 가서 한 이십 명 모이는 작은 교회 노인 목사도 만나 인사했다.

그 다음에는 자기 애인을 소개하고 셋이 같은 친교를 맺자고 했다. 그의 애인의 오빠도 그 농촌 사람인데 그도 자기 약혼녀와 연애 중이었다. 그들도 이 친교에 끼어들었다. 틈만 나면 그들이 나를 데리고 나가 같이 지냈다. 그 작은 교회에서 설교도 몇 번 했다.

 

내가 귀국해야 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은 내 여비 마련에 협력하기로 했다. 그들은 시내 제일 큰 연합장로교회 목사에게 교섭하여 주일 본 예배에서 내게 한국과 한국교회 사정을 이야기하게 했다. 그리고 일종의 위기인 것 같으니 나 같은 사람도 여기 그대로 있을 수 없어서 여비만 되면 돌아갈 작정이라고 말하게 했다. 목사가 미리 당회원과 짜고 즉석헌금을 시켰다. 백 불 가량 나와서 태평양은 건널 것 같았다.

대륙횡단 기차 값도 그만큼 드는 데 턱이 없다.

 

마침 웨스턴 신학교 졸업반 학생 둘이 하기휴가에 웨스트로 여행한다고 50불짜리 폐차를 사서 둘이 교대하여 운전하고 뒤에 나를 태워 상항[1]까지 운반해 준다고 했다. 내 할 일은 까스 피워 아침 식사 준비하는 일이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함께 김삿갓 여행을 떠났다. 구경할 데가 있다면 여기저기 곁길로 빠진다. 네부라스까, 네바다, 와이오밍 등 사막지대를 달린다. 마침 주일이라, 리노에 들러, 예배하고 사창가를 찾다가 성공 못하고, 쏠틀레익 호반에서도 하룻밤 잤다. 고원지대 방목장(放牧場) 목사 집에서도 자보고 거기 교회에서 한국인선보이고 한국 이야기도 하고 황석공원(Yellow Stone Park)에 올라가 나흘 돌아다니며 채 아물지 못한 지각(地殼)의 부글거리는 광경도 보고 Old Faithful의 삼백 척 치솟는 열탕(熱湯) 구경도 하고, 곰의 생태에 대한 강의도 듣고 했다. 나흘 지나 그들과 함께 상항 바닷가까지 내려와서 호젓한 길가에 셋이 꿇어 앉아 기도하고 작별 - 그들은 동으로, 나는 서로 - 상항의 좁은 해협은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구실을 한 셈이다.

 

나는 상항에서 곧장 배에 올랐다. 일본의 지지부마루라는 만톤급 새 여객선이었다. 내게도 독립된 캐빈이 주어졌다. 음식도 대우도 좋았다. 하와이 내려 관광버스로 두 시간 돌았다. YMCA, 한인교회 등에도 들렀다. 뒷산 절벽 위까지 돌아왔다. 밀어올리는 바람 때문에 정사(情死)[2]가 안된다고 할 만큼 치솟는 바람이 거세다.

 

배에 오를 때, 여러분이 향수꽃 목걸이를 걸어준다. 덕분에 역한 뱃냄새가 향기로 담뿍해진다. 선실은 열흘 동안 만향원(萬香園) 같았다. 태평양은 이번에도 태평이다. 물결 한번 설레지 않았다. 뜨는 해, 지는 해가 유난스레 하늘을 태운다.


[각주]

  1. 상항(桑港) - San Francisco
  2. 정사(情死) - 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함께 자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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