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3일 수요일

[범용기 제1권] (57) 미국 3년 - 동경~서울~집

동경~서울~

 

일본 요꼬하마에 내렸다. 짐짝들도 와 있었다. 이삿짐으로 쳐서 관세도 면세다. 경관이 책 궤짝을 조금 뒤지다 말았다. 까다롭게 굴지 않아서 상륙기분이 좋았다.

거리며 포장도로며 상점 등등이 모두 임시 응급시설 같이 보였다. 조제남조(粗製濫造)[1]랄까 - 어쨌든 일본의 신문명이란 몽키비지네스다 하는 인상이 짙었다.

동경 Y의 최승만 총무를 찾아 귀국 인사드리고, 동경 시절 삼년 동안 밀렸던 Y회비와 Y회관 건축기금 약속액 등 깔끔하게 청산했다. 최 총무는 의외라고 놀라는 것 같았다. 나는 회원은 회원 노릇 잘해야 그 회가 건실할 것인데 한국에서는 회원은 회원 임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회장이나 총무에게만 책임을 묻는 잘못이 많다고 술회(述懷)했다.

최 총무는 그때 일맥회 관계로 다소 부대끼는 무렵이었기에 이런 말도 격려가 됐었는지 무척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곧 서울로 향했다. 부산서 동래를 가서 동래교회 조승제 목사님을 만나 귀국 인사했다. 목사관 꼴이 비참했다. 수원 들러 그때 학생으로 있던 현신규 씨를 찾았다. 게시판에 붙은 누구를 학생회장으로 명함, 학교장등등이 몹시 이상스러웠다. 학생회장을 학생들이 뽑지 왜 교장이 임명하느냐 싶었기 때문이다.

서울서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내 청산학원 시절의 맹약한 동지들은 과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울서 김영환 씨, 사리원의 명대혁 씨, 함흥의 박원혁 씨, 그리고 그때 주을에선가 여전도사로 있던 고 김영구 미망인 등을 잠시 역방했다.

 

나는 늙으신 어머니 남은 날을 기약할 수 없는데 여기까지 와 가지고 못뵙게나 된다면 어쩌나 싶었다. 공연히 초조해진다. 곧 함경선을 탔다. 밤늦게 경원읍에 닿았다. 그래도 가면 자정이 지나서야 아오지역이 될데니 차라리 경원읍에서 자고 아침 차로 가는 게 좋겠다 싶어 그리했다. 일본인 사복경찰을 만났지만 내가 하두 자연스레 대하니 멋적어 가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차로 아오지에 내려 창꼴집에까지 갔다. 부모형제, 조카들 그대로의 대가족이다.

그 동안에 아버님도 막내아들 그리우신 정에 기독교에도 맘이 내키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유명한 부흥사가 부흥집회 한다는 때마다 가 보셨다고 한다. 나는 소감이 어떠하셨냐고 여쭤봤다. 진리와 도를 말한다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조폭하고 철없이 떠들기만 하는지 모르겠더라하셨다. 俊兒(준아)그리워 지으신 한 시가 네댓 편 있었는데, 절절하신 심경이 담겨 있었다.


[미국 유학 중 / 송창근 목사와 함께]


[각주]

  1. 조제남조(粗製濫造) - 품질이 낮은 물건을 마구 만들어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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